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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나리오_2) 여판사(1962)

2023-11-25 조회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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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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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K
02........여판사
03........극동흥업주식회사 제작
04........홍은원
05........
06........추식
07........
08........오리지날
09........스탭
제작 : 차태진
기획 : 김영철, 최동권
각본 : 추식
감독 : 홍은원
촬영 : 장환
조명 : 강용신
음악 : 한상기
제작부장 : 이학재

캐스트
허진숙 : 여판사
채사장 : 여판사의 시부, 한국건축공사사장
규식 : 여판사의 남편, 한국건축공사 경리과장
박씨 : 채사장부인
금원 : 채사장딸
허경 : 진숙의 친부 정년퇴직교장
권씨 : 진숙의 친모
원동훈 : 진숙의 애인 의사
오화영 : 채규식의 애인
기철 : 박씨의 전부의 자식
할머니 : 채사장의 모친
순임 : 채사장댁 식모
운당 : 낙암사주지
상좌 : 낙암사 소승
간호원A
간호원B
운전수 : 채사장자가용
윤판사
조사과장
형사
검사
여인
노사원
친구A
친구B
콜튼박사
현장감독
여서기
법정청년
법정여인
방청객 기타 EXTRA 다수
#1 (F.I) 거 리
번화가에서 멀리 동떨어진 거리.
생활에 시달린 피곤한 인간들이 오간다.
큰길에서 꺾어진 자가용 짚차가 판자가게를 들이받아
억망이 된다.
진숙모 권씨 악을 쓰며 달려 나온다.
#2 허경의 방
벽에 결려있는 표창장, 감사장 등.
허경 또하나의 감사장을 사진틀에 끼어 벽에 거는데 진숙이
거든다.
허경 정년퇴직을 당하고 보니 재산이라고는 이것들 하고 너
밖에는 없구나 허허허허.
진숙 저두 재산이 될 수 있어요? 아버지.
허경 장차 판검사가 될 훌륭한 인잰데 재산이 되구말구.
진숙 아버지 퇴직하시기 전에 시험만이라도 합격해야 했을텐데...
허경 옛날로 치면 최고 과건데 그리 쉽게 생각해서는 안되지...
어린이들소리 (E) 큰일 났어요! 자동차가 아주먼네 가게를
드리 받았어요!
어린이들소리 (E) 가게가 다 부셔졌어요!
#3 거 리
채사장은 차에 앉아 있고 권씨 흐트러진 가락국수, 찐빵을 줍는다.
운전수 자 이거나 받고 줍던지 하쇼. 송판 두평 값 하고 목수
한나절 품삯이면 너끈 하죠? 그리고 나머지는 물건 값이고...
권씨 뭣이 어째?
허경 진숙 달려 온다.
진숙 어머니! 어디 다치지 않으셨어요?
권씨 어이구 후... 분해!
허경 거 내가 뭐랬오! 교통방해가 되니 그만두고 딴장사를
하라니까... 거 운전수 양반 차는 다치지 않았오?
운전수 댁의 사정을 봐드리느라고 차는 괜찮습니다. 자 이거
얼른 받으십시요. 우리 사장님이 바쁘신데 가야겠오.
허경 오. 그렇구말구... 돈은 그만두고 어서 가보시요, 조심해
가시요.
진숙 아버지. 돈은 고사하구 도대체 그 태도가 마땅치 않군요.
권씨 옳다. 세상에 사람을 얕봐두 분수가 있지...
허경 거 당신은 좀 가만이 있어요.
채사장 (운전수에게) 돈줬으면 어서가자. 구경군들이 이렇게
모여드는데 창피하게스리...
운전수 발동을 거는데.
권씨 아무리 사장님 아니야 장관나리라두 할말은 좀 해야겠어요.
채사장 여보쇼, 썩은 판자쪽 부서진 것을 그 몇갑절 변상했으면
그만이지. 그래, 나한테 생떼를 쓸 작정이요.
진숙 당신 보기에는 썩은 판자쪽이지만 당당한 건조물이에요.
타인이 점유하고 있는 건조물을 파괴하고 재산상 손해
를 입혔으면 돈보다 앞서 미안하다는 태도라도 있어야
하잖을까요?
채사장 그러니 나더러 어째라는 건가?
진숙 웃는 낯으로 미안하게 됐오. 한마디가 안나오세요?
사회의 공안과 질서를 유지하자면...
허경 얘, 진숙아...
권씨 내버려둬요! 할얘기는 해야지.
채사장 어흠! 알았소. 우리가 실례를 했오. 나는 이런 사람인데
(명함을 내밀며) 내 직업이 건설회사사장이니 지금 곧
우리 회사 사람을 동원해서 복구해 드리겠오.
그리고 그밖의 패해에 대해서도 충분히 보상할 것을
약속하겠오.

#4 산건 공사 사무실
사원A 사장 뱃짱이 누구한테 굽힐 뱃짱이야? 결국 그쪽에서
두 손 바짝 들구 만거지.
사원B 배운건 없지만 인물은 인물이야.
사원A 눈을 찡긋하더니 벌떡 일어서며 공손히 절한다.
박씨가 다가온다.
사원A 사모님 나오십니까?
박씨 거만하게 인사를 받고 사장실쪽으로 간다.
사원B 박씨의 흉내를 내며.
사원B 아마 사장이 쩔쩔매는 상대는 저 여성 뿐일껄!
#5 사장실
여비서 오화영 전화를 받고 있다.
화영 네... 네 알겠어요, 곧 내보내겠어요.
박씨 들어선다.
화영 어마, 아주머니 나오셨어요? 사장님 곧 들어오신대요.
박씨 응.
화영 금원이 학교 갔어요?
박씨 그래... 참 내일인가 한번 너 일하는 것 보러 나오겠다드라.
화영 그래요? 한턱 해야겠어요.
박씨 한턱은 무슨 한턱... 그래 견딜만 하니?
화영 네... 재미있어요. 진작 조를 걸 그랬어요.
박씨 만족한 듯 웃는다.
화영 아이참, 나좀 봐. 사장님 차가 뭐 우동가게를 디리 받았
다나요. 사람을 내보내라구 하시든데...
화영 달려 나간다.
박씨 온 그놈의 운전수 만날 사고야.
#6 허경의 집 (방안)
허경내외와 진숙.
허경 제발 길가에서 그짓은 그만해요.
권씨 앗다 잘됐군요. 그만둘테니 먹고살 방책이나 세워요.
허경 산 입에 거미줄 칠까...
권씨 아니 그걸 말이라고 해요? 그래 쥐꼬리만한 월급도
이제는 구경을 못하게 됐는데 뭘 어떻게 해서 산다는 거요?
(벽의 표창장을 가리키며) 저것만 바라보면 배가 불러요?
허경 하 나참! 이거... 얘, 진숙아. 넌 암만 해도 안되겠다.
너의 어머니가 저야단이니 공부가 되겠니...
내 소갯장을 써줄게 절로 가라. 응... 낙암사에 가서 아주
집엣일은 딱 잊고 공부를 하란말야...
권씨 아니 계집애를 혼자 절로 보내면 어째요!
허경 하 나참! 글쎄 우리 진숙이는 계집애가 아냐! 당신은
이십 여 년을 키우고도 자식의 성격도 모루?
#7 사장실
채사장 들어서며.
채사장 당신 뭣하러 나왔오?
박씨 앗다. 이이는 칠년만의 외출인데 왜 야단이슈.
채사장 용건이 뭐요?
박씨 낼 절에 가야겠어요. 돈하고 차 좀 주세요.
채사장 그 얘길 할려구 일부러 나왔오?
박씨 나왔던 길에 들린거지 뭐요.
채사장 그래 또 무슨 불공이요?
박씨 충주공사를 곧 착공한다면서요? 영감은 내가 나서지 않으면
영 한데라니까.
채사장 그래 알았오, 헌데 그 짚차가 오늘 사고를 냈어.
하며 공연히 싱글벙글.
박씨 사고 내서 퍽이나 좋겠우. 그 운전수 좀 갈아치우지 못해요?
채사장 오늘 사고는 운전수에게 상장을 줘야 될 일이야.
박씨 아니 이이가?
채사장 허허... 고것 참, 그 처녀 날 꼼짝 달싹 못하게 만들었거든.
박씨 처녀? 당신 나이값을 좀 해요.
채사장 거 똑똑하던데 똑똑해.
박씨 여봇!!
박씨의 신경질은 아랑곳 없이 채사장 자못 즐겁다.
(O.L)
#8 산사로 가는 길
진숙이 가방을 들고 힘에 겨워 걸어간다.
다가오는 자가용 짚차. 진숙을 스치고 지나서 멈춘다.
박씨 (짚차문을 열고) 어디까지 가우? 절까지면 여기타고 가요.
이 더운데 무거운걸 들구...
진숙 아이, 감사합니다.
진숙 차에 오르다가 운전수를 보고 놀란다.
진숙 어마?
운전수 웃으며 인사한다.
박씨 아는 사인가?
운전수 어제 그 우동가게 따님입니다.
박씨 유심히 진숙을 본다.
#9 낙암사 앞
짚차 멈추고 내리는 박씨와 진숙.
운당 다가오며 합장.
박씨 운당스님. 안녕하셨읍니까? 불공드릴 상의좀 하려구요...
미쓰. 허라구 했던가? 주지스님이신데 인사하지.
진숙 아, 네, 처음 뵈겠읍니다. 저어... 아버지께서 이것을...
편지를 내민다.
운당 아, 허교장님이... (편지를 뜯어 읽고) 잘 오셨읍니다.
상좌 합장하며 인사.
운당 (상좌에게) 이 손님 저 노전제일 끝방에 모셔라.
우선 들어가 쉬시죠.
진숙 상좌를 따라간다.
#10 노전 방
상좌 진숙을 방으로 안내.
상좌 이방에서 혼자 계셔요?
진숙 혼자 있으면 안되나?
상좌 무서울껄요...
#11 법당 안
음산한 벽화, 불상들.
진숙이 무릎을 꿇고 합장기도.
#12 사장실
금원이 들어선다.
화영 어머. 왔구나.
채사장 넌 또 뭣하러 오니?
금원 누가 아버지 보러 왔나 뭐.
채사장 오늘은 비서두 일이 바뻐.
금원 염려 마세요. 빼돌리지 않을테니.
노크소리와 함께 규식이 들어선다.
규식 너 뭣하러 왔니?
금원 화영아. 우리집 남자들은 뭣하러 왔니가 통일된 인사란다.
규식 서류를 내어놓며.
규식 이건 오늘 꼭 구입해 줘야 될 모양인데요.
금원 아버지 오늘은 절에 꼭 가셔야 해요.
사장 (도장을 찍으며) 바쁘대두.
금원 에... 나중에 엄마한테 치도곤이지 뭐.
규식 (나가며) 계집애 말버릇허구...
#13 낙암사
염불소리와 목탁소리가 울려나온다.
#14 법당 안
운당 염불을 끝낸다.
채사장, 금원 화영 돌아선다.
박씨 마지막 큰절을 하며.
박씨의 소리 나무 대자대비 관세음보살. 그저 이번 공사도 사고
없이 끝나고 돈더미를 싣고 들어오도록 하여주옵
소서, 나무아미타불...
#15 법당 앞
모두 뜰로 내려온다.
채사장 한곳을 바라본다.
#16 칠층탑 근처
진숙이 열심히 책을 보면서 바람을 쏘인다.
#17 법당 앞
채사장 저렇게 공부를 하니 똑똑할 수 밖에...
금원 아버진 저여자 한테 홀딱 반했나봐!
박씨 얘, 넌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금원 에게게! 엄만 괸히 핏대야, 정면으로 질툴하지 왜 날보고
야단야. 그지?
하고 화영에게 눈짓.
채사장 (뒤따르는 운당에게) 저 처녀네 가정을 스님은 잘 아십니까?
운당 네. 알고말고요, 저아가씨의 부친이 아주 훌륭하신 분입니다.
아주 법없이도 살 수 있는 분이죠.
채사장 법없이도 살 수있는 분의 딸이 법학을 공부한다. 허허허...
됐어! 그런데 혹시 약혼은 하지 않았나 모르십니까?
운당 네. 거기까지는...
채사장 스님, 저 처녀를 잘 돌봐주십시요.
운당 네?
채사장 며누리를 삼고싶은 욕심에서 하는 소립니다. 허허허허.
박씨 이이는 왜그리 말이 헤퍼요. 잘알지도 못하면서...
운당 아닙니다. 며누님만 삼으실 수 있다면 더 고를 수 없는
혼처 올시다.
채사장 거 주지스님, 중매 좀 서 주시겠오?
운당 아니, 중이 혼사에 중매를 설 수가... 허허허!
채사장 아, 그런가... 하하하하!
#18 탑 근처
진숙 바위에 걸터앉아 책을 읽고 있다.
(O.L)
#19 절 방
책에 묻혀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진숙.
#20 낙암사 (새벽)
운당이 염불을 외우며 절주변을 돈다.
#21 절 방 (#19와 동일)
진숙 지쳐 책상에 엎으려 자다가 후다닥 잠이 깨어
책을 들여다 본다.
#22 산
동이 트는 산.
아침안개가 자욱하다.
#23 도랑 안
샘가에서 세수하고 심호흡하는 진숙.
#24 절 방
상좌가 아침상을 들고 들어온다.
진숙 (들어서며) 벌써 아침에요?
상좌 저 오늘 시내 나가는데 심부름 없으신가 스님이 여쭈어
보라고 하십니다.
진숙 잘됐네요. 그러잖아도 어떻게나 하던 참인데... 이따가
편지를 써드릴게 집에 들려 책 좀 갖다주실래요?
상좌 책이 저렇게 많은데 또요?
진숙 끄덕이며 숟갈을 들고 눈은 여전히 책으로 간다.
책을 보면서 숟갈질을 하는 진숙.
헛군데로 숟갈이 가고 빈숟갈을 입으로 가져간다.
상좌 하하하하!
(O.L)
#25 산 길
동훈과 상좌 올라간다.
상좌 글쎄... 이렇게 빈숟갈을 입으로 가져 가시잖아요. 판사가
될라면 그렇게 공부를 해야 되나요?
동훈 ...
상좌 아저씨는 의사라면서요? 그럼 두분이 다 삿자가 붙네요.
동훈 삿자?
상좌 아저씨는 의사, 아주머니는 판사 히힛!
동훈 좀 쉬어갈까.
상좌 의사하고 판사하고 누가 더 높아요?
동훈 (댓구없이 딴생각)
#26 절방 앞
동훈과 상좌 들어온다.
상좌 손님 오셨읍니다.
진숙 방문을 연다.
동훈을 보자.
진숙 어머나, 여길 어떻게...
동훈 내가 와서 방해가 되나? 자 명령하신 책!
동훈 빽에서 책과 과자등을 꺼내 마루에 놓는다.
#27 절 앞
한강이 흐르는 절벽.
진숙과 동훈 나란히 앉아 있다.
동훈 진숙인 꼭 판사가 돼야만 되겠어?
진숙 한번 맘먹은 일인데 이제와서 포기할 수 있어요?
동훈 여성은 평범한 주부가 되는 길이 제일 행복하지 않을까?
진숙 어쩌면 그럴런지도 모르죠...
동훈 진숙이... 이런말 하면 웃을지 모르지만 어려서부터의
우리들 사이라는게 형식은 없지만 어느 공약을 내포하고
있었다구 생각되지 않어?
진숙 나두 그렇게 생각은 했어요.
동훈 그럼, 이자리에서 우리 둘만이라도 형식적인 얘기로 발전
시키구 싶은데...
진숙 정식으로 청혼을 한다는거죠?
동훈 ... 헌데 한가지 조건이 있어.
진숙 지금 그 조건을 들을 순 없어요, 여성이 직업을 가졌다구
해서 가정파괴의 위험성이 백% 부수된다고는 할 수
없잖아요.
주부의 노력여하에 달렸다구 생각해요. 동훈씨야말루
좀더 시야를 넓혀 생각해 보실 순 없어요?
동훈 민도가 높은 선진국에서도 어려운 일이야.
진숙 그렇다구 우리까지 후진성을 드러낼 필욘 없잖아요.
인간의 병을 고치는 의사. 사회의 병을 고치는 법관, 뭐가
잘못돼서 합칠 수 없다는 거죠?
동훈 절대루 단념은 못하겠단 말이지.
진숙 절대로!
둘은 말이 끊어져.
(O.L)
#28 절 앞
내려가는 동훈을 배웅하는 진숙과 상좌.
상좌 (합장하며) 안녕히 가세요.
상좌 돌아서 가고 진숙 같이 걷는다.
진숙 시험이나 끝나면 만나겠어요.
동훈 염려말아, 방해하러 오지 않을테니...
동훈 언잖은 기색으로 부지런히 내려간다.
진숙 멀어져 가는 그의 모습에 잠깐 서운한 얼굴.
#29 허경의 집
허경 서투른 솜씨로 만두를 만들고 있다. 그것이 고르지 못하고
점점 커진다.
권씨 (부지런히 들어보며) 아직두 멀었우? 아 아니 무슨
만두를 이렇게! 이래가지고 무슨 이문이 남아요!
허경 아따 우리가 이문을 좀 덜보면 되잖소. 이런 것을 사먹는
사람들이 오죽 하겠오.
권씨 에이, 당신은 하는 소리마다 (심각해지며)... 여보 내 눈치엔
동훈이가 진숙이 문젤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러다 사위감 놓지는거 아닌가 모르겠우.
허경 그런 일에 정이 갈린다면 서로가 인연없는 중생이겠지
하는 수 없잖소.
#30 빠 N
동훈이 친구와 술을 마신다.
친구 못난녀석! 당장 집어쳐... 암탉이 울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동훈 술을 단숨에 들이킨다.
#31 절 방 N
진숙 등잔불 심지를 돋구고 필기를 한다.
의지에 찬 그 또랑또랑한 눈.
(F.O)
#32 (F.I) 허경의 집 마루
미소가 넘쳐흐르는 진숙의 얼굴.
후랫슈가 터지며 사진찍기에 분망한 신문사 사진반.
허경, 권씨 좋아서 어쩔줄 모른다.
권씨 동훈이가 올 만한데 어쩐 일인지 모르겠우.
기자 소감을 한마디...
진숙 기뻐요... 오랜 세월을 두고 불행했던 이나라 여성들의
숙환을 메스로 수술하는 의사 못지 않게 다루고 싶었어요...
진숙의 열열한 입 움직임 위에.
화면밖소리 여판사! 여판사!! 여판사!! 여판사!!!
#33 채사장댁 응접실
채사장 벙글거리면서 신문을 읽고 있는데 금원 들어온다.
금원 아버지, 오늘은 좀 중대한 의논이 있어요.
채사장 그만둬, 네 입에서 중대한 얘기하는 것은 하나도 중대할게
없어. 그 보다 더 이 신문 좀 봐라.
금원 신문 읽으러 들어온게 아니래두요.
채사장 좀 읽어봐. 그때 낙암사에서 공부를 하던 처녀가 고문사법과
에 합격했다고 하잖았니?
금원 피이! 누가 남의 얘기 듣쨌나!
채사장 그애가 판사가 됐어! 그동안 판사시보로 있다가 오늘 판사
발령을 받았다는구나 자, 읽어봐!
금원 일없어요, 그여자 출세한 것과 저의 고민과 무슨 상관이
있어요! 오늘은 결판을 낼테야요.
채사장 저년 애비한테 하는 소리?
금원 여러 소리 하고 싶지 않아요, 피아노 어쩔테에요?
채사장 안돼!
금원 죽어버릴테예요.
채사장 그런 공갈은 한두번 밖에 효과가 없는 법이야.
금원 아버지는 챙피하지도 않으세요?
채사장 뭐가?
금원 대한산건공사 사장 딸이 피아노 한대가 없다는 것이
말예요...
채사장 하나도 창피할 게 없다. 우리집에 그런 사치품이 없다는
것이 되려 자랑스러운 걸...
금원 피아노가 왜 사치품이예요, 여성에겐 필수품이지.
채사장 물건이라는 건 써먹을 수 있을 때 필수품이 되는거야.
너처럼 허영에 들떠서 장식만 해놓면 사치품이지 뭐냐.
금원 누가 장식해 놓겠대요?
채사장 그 어버이만큼 자식을 아는 이는 없는 법이야.
금원 본인이 더 잘알지 부모가 어떻게 알아요.
채사장 너 몇살이지?
금원 스물 한 살이지 몇살이예요. 미성년이 아니란 말예요.
채사장 그럼 네가 너를 인식한 건 몇살이지?
금원 다섯 살두 채 되기 전이죠 뭐.
채사장 그럼 스물 하나에서 다섯을 빼구 너는 16년을 알지만
아버진 너의 21년을 다 알고 있단 말이다.
금원 어마 기가 맥혀! 아버지는 노랭이예요, 노랭이. 24금,
30금 노랭이 노랭이!!
화가 나서 나간다.
채사장 허허허! (신문을 또 들고 읽는다.)
박씨 차를 들고 들어온다.
박씨 어이구. 딸자식 한테 노랭잇 소리를 듣고도 웃기만 하슈...
채사장 당신이 내대신 종아리를 때리쇼. 허허허. 자, 이 신문 좀 보...
할머니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와 테불 위의 찻잔을 본다.
할머니 (채사장에게) 얘야, 난 이런거 안먹었다.
박씨 아이, 어머님은 왜 이방엘 오셔요!
할머니 이런거 안먹어 봤어...
채사장 그럼, 어머니 잡숴 보세요. 자, 허허허허.
채사장이 저어서 주는 차잔을 받아 단숨에 마시며 나가는 할머니.
할머니 아이 달다. 아이 달아...
박씨 당신은 효자규료. 나는 못쓸 년이고...
채사장 무슨 소리야...?
박씨 망녕든 노인네를 그렇게 다루면 못써요. 누군 아까워서
차한잔 안주는 줄 아슈... 요새는 바싹 망녕끼가 더해서
오줌을 안싸나 눈만 뜨면 군것질꺼리만 찾는데...
채사장 사시면 얼마나 더 살겠오? 잡숫고 싶다는 것 싫건 드려요.
그리고 당신한테 중대한 상의를 좀 해야겠는데...
어서 그 신문을 읽고...
박씨 중대한 상의라는 것 먼저 말하세요. 이까짓 신문은
이따가 읽고...
채사장 아냐, 그 신문을 읽어야 얘기가 돼. 그 판사가 된 처녀말야...
박씨 (신문을 보며) 오라. 이 처녀 판사가 됐군요.
#34 병원 마당
진숙이 벤취에 앉아 있다.
동훈이 다가오자 진숙은 후다닥 일어나 기쁜 듯이 손을 내어민다.
진숙 축하해 주시죠?
동훈 암. 축하하구 말구, 내 친구 진숙의 일생소원이 달성됐는데...
진숙 비꼬시는군요. 난 그래두 동훈씨가 진심으로 기뻐해 줄 줄
알았어요.
동훈 일시적인 생각이 아니었단 말야. 다른 사람이 도와줬건
기뻐해줬건 간에 그건 다 진숙일 남의 집 사람으로 알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야. 사과나무에 배 열리기를 바라는,
시간 보낼 일이 답답한 인간들의 취미야. 나는 예전 그대로의
진숙일 사랑했을 뿐이니까... 그러나 어찌 됐던 축하는
해야지...
진숙 그만 둬요. 그렇게 도량 없는 인간에게 축하 받을 필욘
하나두 없어요. 사과나무에 사과 열게하는 취미가 오그라
들어서 능금이나 열리지 말게 하세요!
쏘아부치고 가는 진숙.
(O.L)
#35 허경의 방안 (밤)
법복을 입은 자기 사진이 놓인 테불에서 서류와 육법전서를
뒤저귀는 진숙.
진숙모 권씨는 밀가루 반죽을 한다.
권씨 얘, 그래두 동훈일 달래야지. 네가 그렇게 뾰루퉁하게
굴면 쓰니?
진숙 가만 놔두세요, 능금이나 따먹게.
권씨 능금은 무슨 능금... 제철두 아닌데.
진숙 어머닌 처음 듣는 얘기지만 판사발령 나든 날 그일 찾아가
만났어요.
권씨 그래서?
진숙 그래서 완전히 끊어진거죠, 뭐.
권씨 저런... 난 도무지 모르겠다. 너하는 짓은.
진숙 그러니까 인제 어머니 가만히 좀 계셔요. 지금 중요한
일을 하고 있어요.
권씨 뭔데... 판사가 되구서도 무슨 공부를 그렇게 하니 온.
진숙 사건이 배정 됐어요.
권씨 사건?
진숙 제가 재판을 할 사건이 생겼단 말예요.
권씨 호호호. 정말 네가 판사가 돼서 재판을 하니? 호호호.
허경 외출에서 돌아오는 듯 불쑥 들어서며.
허경 공정한 판결을 내려야 한다. 법관이란 냉정해야 하고
일체의 사심을 가져서는 안된단 말야. 하하하하!

#36 채사장집 내실 N
채사장의 다리를 주므르는 박씨.
채사장 윤판사를 중매 세우면 성사할꺼요.
박씨 당신이 암만 서둘고 그래도 나는 마음이 덜 쏠려요.
채사장 어째서?
박씨 우선 지체가 틀리잖아요. 아무리 당자야 그런 지위에
있다지만, 그래 거리에서 호떡장사 하는 집 딸을 어떻게
며누리로 맞겠우? 체면이 있지...
채사장 (벌떡 일어나며) 뭣이 어쩌구 어째! 지체? 그래 지체를
따져 보자. 난 노가다 십장을 하던 놈야. 보통학교도
못마치고 공사판으로 돌아다니던 놈야!
박씨 아니, 왜 큰소릴...
채사장 당신은 또 어쨌냐 말야?
박씨 좋아요, 맘대루 지꺼리구려. 나는 과부 들병장사로 떠돌아
다니다 공사판 십장한테 후취로 들어온 사람요.
그러니 어쩌란 말예요! 어이구 분해...
채사장 닥치지 못해?
박씨의 머리채를 잡는데 복도에서 비명, 채사장 손을 놓는다.
(E)식모소리 어이구 분해!
(E)할머니 이년아! 게 있어. 이년!
#37 복도
할머니가 쫓아와 식모 순임의 머리를 부등켜 잡고 싸운다.
할머니 왜 감춰 놓고 안주니? 이년 아앙!
순임 아이구 분해... 우리 어머니 한테도 이렇게 안 당했는데...
박씨 쫓아 나오자 할머니 도망친다.
순임 마님 나 갈래유.
박씨 대체 왜 그러니?
순임 글쎄. 할머니가 찬장을 뒤지기에 말렸더니 날 막 때리구.
흑!
박씨 참아라. 본시 옛날부터 손버릇들이 있는 집안이다.
박씨 흩어진 머리를 쓸어 올린다.
(F.O)
#38 (F.I) 병원진찰실
퇴근시간에 진찰실, 우울한 얼굴로 동훈 손을 씻고,
간호원A B 기구정리.
동훈 법원 좀 불러요.
간호원A 네. 허판사님이요?
동훈 엉?
간호원A 다이얄을 돌리는데.
동훈 아, 고만둬.
까운을 벗어걸고 상의를 들고 나간다.
간호원A 저기압이야. 결국은 잊지 못하면서...
간호원B 보기에 딱한데.
간호원A 애당초 그런 위대한 여성과 가까웠던게 탈이지...
간호원B 요새 저녁마다 술냄새 피우드라, 여자가 허판사
하나뿐인가? 닥타 원두 그러구보면 되게 꽁이다.
간호원A 왜 아냐, 나두 있구 너두 있는데 그지?
허지만 내생각엔 누가 굽혀두 굽히구 꼴인할 것
같애.
간호원B 난 그 반댄데 절대로 안돼.
간호원A 내기 할까?
간호원B 좋아. 뭐든지.
간호원A 저녁 한끼 톡톡히 내기.
간호원B 아이 시시해.
간호원A 그럼 뭐?
간호원B 지는 편이 저녁 내구 물론 마실 것 겸해서 말야.
그리구 중요골자는 딱타. 원을 양보할 것!
간호원A 좋아!
#39 그릴 특실
윤판사, 채사장, 규식, 진숙 등이 식사.
채사장 윤판사님. 오늘 이런 좋은 자리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윤판사 그건 내가 할 소리 같습니다. 채사장이 아니시면
어디 이렇게 우리 허판사하고 조용히 식사를 할 기회가
있겠읍니까? 하하하하.
보이 (조심스럽게 와서) 저어, 채선생님. 전홥니다.
채사장 나?
보이 아닙니다.
규식 일어나다가 포오크를 떨어트린다. 진숙 얼른 보이를
불러 갈아오라고 시키는 것을 보고 채사장 빙그레 웃는다.
#40 그릴 (홀)
구석진 자리에 금원과 화영이 앉아서 식사를 끝내고 차를 마시고
있다.
금원 오빠. 여기 전화야.
규식 어이없이 다가오며.
규식 넌 또 어느새 여길 왔니?
금원 지상최대의 쑈 보러 왔지.
규식 무슨 소리야?
금원 다 큰 남녀가 자기 의사도 없이 선 보이고 있는 꼴이
가관 아니구 뭐야?
규식 선?
금원 헤. 쑥이다. 여판사님 가방이나 들구 쫓아다닐래 오빠?
화영 금원아. 독설이 너무 심하지 않니?
규식 그런건 어디서 줏어들었니?
금원 사장 비서는 모든 비밀 전화를 들을 수 있다는 것쯤
아시실텐데.
화영 아니예요... 전 그런 의미에서 알린 건 아니예요, 좋은
일이구 해서...
금원 여기 계산 오빠가 해줘.
금원은 깡충 일어난다.
#41 그릴 특실
채사장 장차는 제 사업을 물려줄 작정입니다. 그래서 계장자리에
입사시켜 수업을 시키는 참이죠. 뭐 제자식이라서가 아니라
녀석은 저보다 낫죠. 허허허허.
윤판사 (돌아오는 규식을 보고) 지금 춘부장께서 자네 자랑을
한참 하셨네. 허허허허.
규식 실례했읍니다.
규식 앉으며 진숙을 힐끗 본다.
태연한 진숙.
#42 허경의 집 (방 안)
술이 취한 동훈이 허경에게 마구 드리대고 권씨는 어쩔줄을
모른다.
허경 아니, 네가 무슨 권리로 판사를 고만두라 어쩌라 해!
동훈 왜 그만한 말을 못하겠읍니까?
권씨 암만 그래도 원서방이 이해를 해야지... 판사 한자리
할려구 얼마나 애를 썼나...
허경 아니 이녀석아! 아내가 훌륭한 지위에 있는 것이 왜
못마땅 하단말이냐? 엉!
동훈 싫습니다. 지위 있는 아내는 싫습니다. 판사를 그만두면
내일이라도 예식을 올리도록 하겠읍니다.
허경 안돼! 건 안돼!
권씨 아니 왜들 이렇게 소리들을 지르고...
#43 그릴
식사를 끝내고 일어선다.
채사장 넌 내차로 판사님을 모셔다 드려라.
진숙 아냐요, 저혼자 가겠어요.
윤판사 사양말고 같이 가요.
#44 골목길 N
동훈 빗슬거리며 골목길 빠져나가다가 모퉁이를 꺾어 들어오는
차에 깔릴뻔 한다.
진숙과 규식이 타고 오는차 급정차.
운전하고 있는 규식.
규식 거 술을 좀 작작 하실 걸 그렸읍니다.
동훈 (차안을 바라보고) 허허. 위대한 판사님을 모시고
다니는 운전수양반이라 대단히 점잖하시군요. 허허허허!
진숙 채선생님 초면에 실례지만 이 차루 드라이브 좀 할 수
있을까요?
규식 원하신다면 할 수 있죠. 오늘은 운전수니까요.
규식은 차를 꺾어 달려가버린다.
동훈의 이그러지는 얼굴.
#45 거리
금원과 화영 걷고 있다.
금원 얘, 넌 그여잘 어떻게 보니?
화영 허판사? 스마트하구 역시 지성이 눈에 띄는 얼굴이드라
얘.
금원 그럼... 우리 오빤 어떻게 보니?
화영 역시 스마트하구... 아이 난 몰라.
금원 그 여자 한테 주기 싫다구 생각되지 않니?
화영 글쎄... 그래. 좀 아깝다.
금원 그거야! 야심을 가져 허판사 정도의 올드.미스는 우리들의
발랄한 청춘에 찍 소리도 못하게 만들어야 해!
#46 한강 모래위
진숙과 규식이 걷고 있다.
진숙 남성의 에고이즘의 제물이 되느니 차라리 올드.미스로
깨끗하게 늙는 것이 낫았다구 생각하게 됐어요.
규식 핫하하. 유쾌하군요. 허지만 그분이 어쩌면 허판사를
가장 사랑하는 분 일런지 모르죠.
진숙 남자분의 생각이란 모두 그런가요?
규식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지 않느냐는 말을 했을 뿐입니다.
진숙 죄송합니다 피곤하시겠지만 이젠 마음이 후련해졌으니까
집에까지 데려다 주세요.
진숙은 돌을 집어 물위에 던진다.
파문을 퍼트리며 흐르는 강물.
(F.O)
#47 (F.I) 사장실
채사장앞에 젊은 사원이 설계도를 놓고 설명.
타잎을 치는 화영 귀를 기울인다.
사원 이것이 킷친 룸이고 잇대서 다이닝 룸입니다.
채사장 그 꼬부랑말루 하지말고 우리말로.
사원 네. 서양식 부엌과 바로 옆인 이게 식당입니다.
채사장 옳아. 그런데 가만 있자... 피아노는 어디에 놓게 되나?
박씨 문을 열고 화영과 눈인사를 하며 사장앞으로 간다.
사원 피아노는...
채사장 알았어... 가 가만...
박씨 (설계도를 보며) 아니, 뭐 이런 쫄대기집도 공사를 하우?
사원 아닙니다. 자제님 결혼하시면 들어가실 집입니다.
채사장 여보게. 자넨 그만 나가게.
사원 인사하고 나간다.
박씨 아니, 당신 무슨 일을 그렇게 하우?
채사장 뭐가?
박씨 김치국 먼저 마시는 것도 분수가 있지. 그래 색시집에서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데 벌써 살림 낼 집을 설계해요?
채사장 이건 알지도 못하면서... 다 되기로 돼있어.
박씨 옳지. 이젠 당신 혼자서만 다 하는군요. 좋아요. 그렇지.
내속으로 낳아 논 자식이 아니니까 그럴꺼요.
놀라는 화영.
채사장 어험! 쓰, 쓸데 없는 소릴!
박씨 말이야 바로 말이지. 그래 하나밖에 없는 딸자식은 목을
매고 피아노타령을 하는데도 입도 못벌리게 하면서
아직 약혼도 안한 며누리방에는 피아노 들여놀 자리
먼저 설계 해요?
채사장 핫! 나 참 이런...
박씨 금원이는 이년 속에서 나온 것이니까 피아노 한대 사주기도
아까워서 그런거지 뭐란 말이요.
채사장 듣기 싫어!
박씨 그럴꺼요! 어디 두고 봅시다. 흥! 이왕이면 왜 장관며누리를
고르지 겨우 판사를...
박씨 나간다.
채사장 미스 오. 자재과 최계장 좀 불러요.
화영 수화기를 든다.
(O.L)
#48 고층건물 공사장
한국산건공사 공사현장 이라는 간판
차에서 내리는 채사장과 규식.
현장사람들 굽실거린다.
#49 동 공사장 내부
채사장 앞서고 규식이 뒤를 따라 발판 (아시바)을 올라간다.
규식의 발걸음이 서툴다.
#50 공사장 꼭대기
채사장 먼저 올라와 사방을 둘러보는데 규식 엉금 엉금
올라온다.
채사장 허판사와의 혼담이 익어가고 있다.
규식 ... (숨만 몰아쉰다.)
채사장 아무리 우리가 돈이 많다 해두 그런 신부를 맞기는
힘들어... 너도 이제 회사의 모든 일을 몸에 익혀서
장차 내뒤를 이을 결심을 해야 해.
규식 ...
채사장 그리고 너의 어머니에 대해서 지금까지 얘기 안했다만...
아무래도 알게 될테니까 내 입으로 말하마...
사실은 너의 어머니는 계모야.
규식 (놀랜다.)
채사장 위험하다! 거길 붙들고 잘들어... 계모라고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 애비하고 동고동락을 이십여년간
이나 했을뿐만 아니라 널 핏덩어릿때 부터 손때를 묻혀서
키웠어... 우리 집안이 이만큼 된 건 너의 어머니의 공이
크다... 이제부터는 그런 줄 알고, 장가를 들면 더욱 너의
어머니한테 성의를 다 해야한다.
#51 채사장댁 대문 안
식모와 기철 옥신거린다.
기철은 거지꼴이다.
식모 글쎄, 안돼유. 다음에 오시유.
기철 이봐. 느이 마님이 들어오면 알게 된다잖아.
순임 얼래? 참 별꼴 다보겠네.
박씨 들어온다.
박씨 뭘 그러니?
순임 저이가 글쎄 마님을 만난다구...
박씨 아니! (크게 놀란다. 순임에게) 넌 들어가거라.
순임 가라구 해두 영 말얼 안들어유. (안으로 들어가며 흘끔
거린다.)
박씨 이놈아. 어쩔라구 또 나타났니... 기어코 이 에미를 못살게
할 작정이냐?
기철 내가 그렇게도 밉소?
박씨 (빽에서 돈을 꺼내 주며) 자, 어서 갖고 가... 제발 다시는
오지 말란 말야.
기철 날 낳아놓지 않았으면 이런 일이 없잖아요... (돈을 받아들고)
흥! 이제 많이 늙었군요?
박씨 누구때문에 늙는 줄 아냐?
기철 (나가다 돌아보고) 어머니...
박씨 어서가라. 누가 본다.
금원 외출에서 돌아오며 나가는 기철을 수상적게 본다.
금원 엄마 누구야?
박씨 응. 거, 거지야.
금원 거지녀석이 왜 남을 그렇게 또라지게 보구있어? 망할자식!
박씨와 금원 안으로 들어가는데 할머니 나타나 금원에게 손을
내민다.
할머니 아가. 우리 금원아가...
금원 아무것도 없어요.
할머니 아기, 이쁘기도 해라.
금원 암만 애교를 부려야 아무것도 없다니까... 남은 속상해
죽겠는데...
할머니 꼭 사온다고 하잖았니? 응. 아가...
금원 없어요. 아무것도... 자아 (빽을 열어보인다.)
할머니 이년들! 이할미를 죽일 작정이냐! 저희들만 싫건 먹고...
#52 법정 뒷마당
윤판사, 진숙 조용히 얘기하고 있다.
윤판사 허지만 그사람은 결혼을 하려면 판사를 그만두라는 것
아니오?
진숙 저도 그문제로 고민했어요. 그이는 저를 사랑은 하지만
저의 직업이나 또 사회적인 지위같은 것은 극도로 염오
하거든요.
윤판사 참, 거... 내가 얘기하는 그 채사장댁에서는 되려 허판사의
현재 위치를 이해할 뿐만 아니라 그런점을 존경하기
때문에 나를 통해서 청혼을 해왔단 말야. 신랑감두 그만하면
남에게 뒤지지는 않을 것 같구...
진숙 ...
윤판사 인생 대사니 만큼 잘 생각해서 대답을 해주시요. 다만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사회적인 활동을 하고 명색이
출세를 했다는 여성들이 자칫하면 혼기를 놓치기 쉬우니까
허판사도 그런점에 유의해서...
진숙 감사합니다.
(F.O)
#53 (F.I) 그릴 (저녁)
간호원AB 식사를 하면서 맥주컵을 든다.
간호원A 닥터 원의 실연과 아울러 그대의 승리를
축하 하는 뜻에서...
간호원B 쌩키우베리마치!
#54 채사장댁 응접실
채사장, 박씨, 금원이 차를 마시고 있다.
채사장 예식장에 온 손님이 천명은 되지. 흐흐흐흐!
박씨 (딴생각을 하는듯) 당신은 어쩔 작정예요?
채사장 뭘?
박씨 곧 따로 살림을 낼 작정이냐 말에요?
채사장 신축공사가 끝나면 그때 분가를 시키지... 거 이럴줄
알았으면 공사를 서두를걸...
박씨 안돼요. 제손으로 살림을 할 때까지는 내가 데리고 있어야
해요.
채사장 온, 이건 젊은 것들 기분도 모르고...
박씨 글쎄, 안된다면 안되는줄 알아요. 더군다나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 콧대가 세서...
금원 어머니는 괜히 걱정유. 적어도 판사님이신데...
채사장 넌 가만있어!
금원 쳇! 판사며누리를 보시드니 막 큰소리셔.
#55 해운대 바닷가 저녁
규식과 팔을 끼고 행복하게 걷고있는 진숙.
진숙 이런 행복이 있다는 걸 전 여지껏 몰랐어요.
규식 역시 직업은 무시무시해두 여자다운데가 있군.
진숙 어마! (무심코) 그인 그런 나를 발견하려구 조차
하잖았어요.
규식 역시 그 자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 아니야?
진숙 (살짝흘기며) 그렇게 사랑했으면 직업을 포기했게요.
규식 나는?
진숙 사랑해요! 아니 조금 빠르죠? 사랑할 수 있어요.
규식 핫핫하. 그럼 내가 그직업을 포기하라고 한다면?
진숙 (귀엽게) 글쎄요. 그건 좀 생각해 보구요.
규식 요 깍쟁이!
하고 때리는 시늉을 하자 달아나는 진숙 뒤쫓는 규식
진숙 숨이 차서 모래 위에 주저 앉으며 때리라는 듯 눈을
감고 볼을 치켜 올린다.
규식 와락 끌어 앉으며 그 입술에 베제한다.
규식 염려 말아요. 당신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사랑하면서 판사
시켜 줄테니.
진숙 악담! 당신 그랬죠.
둘은 웃으며 다시 끌어 안는다.
어둠이 깃들어 온다.
#56 호텔 라비 (밤)
몇몇 사람이 앉아 환담하고 있다.
돌아오는 두사람.
중년신사 반색을 하며 걸어와.
신사 허판사님. 이거 오랫만입니다.
진숙 참 오랫만입니다... 저 소개하겠어요. 제 하즙니다.
이 분은 로진만씨라구 내 첫 공판 때 알게 된 분이에요.
신사 허판사님. 신셀 많이 졌읍니다.
둘은 악수한다.
신사 마침 잘 됐읍니다. 저기계신 미국의 사회사업가 콜든박사를
소개하지요.
진숙 ... 내일이라도...
신사 내일 부산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잠깐 시간 내셔서...
규식 잠깐 얘기하다 오구려. 나 목욕 한탕할테니.
규식이 자리를 비키자 진숙은 서운한듯 신사와 저편으로 간다.
#57 호텔 방 안
규식 들어온다. 담배를 붙여 물고 훅 내어뿜는다.
(O.L)
테불의 책을 뒤저기다 획 동댕이친다. 재터리 속에 여러 개의
담배 꽁추.
#58 로비
진숙과 중년신사, 콜든박사, 기타2,3인들 얘기에 열중.
진숙 무엇보담도 우리나라 여성들은 지위향상을 위한 자체적
인 노력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좌중여인 물론입니다. 그런면에서 허판사님은 선구자이십니다.
#59 방 안
규식 웨터에게 화난 기색으로 술을 주문한다.
규식 맥주 두병 아니, 다섯병만 가져와!
#60 로비
여전히 지꺼리고 있는 좌중
진숙 여성으로서 사회활동을 할 경우 잘못하면 소홀하기
쉬운 가정생활 문제 같은 것도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여인 허판사님이야 어련하실려구요.
#61 방 안
너주레한 맥주병 규식은 침대에 큰댓자가 되어 코를 곤다
진숙 들어와 민망한듯 창가로 가 카텐을 치려다 밖을 내다본다.
#62 해변
진숙의 시야에 비친 해변
파도가 사납다.
(F.O)
#63 (F.I) 채사장댁 현관
채사장 출근을 서둔다.
채사장 얘, 판사님 준비 다되셨나 여쭤 봐!
순임 야.
박씨 아니, 당신 그 판사님 판사님 하는 소리 좀 곤쳐요.
며누리보고 글쎄!
채사장 으흥! 쓸데 없는 소리.
부지런히 나간다.
#64 대문 밖
자가용차 (대형) 가 대기하고 있고 채사장 주춤거리며 기대린다.
진숙이 나오자 먼저 태우고 채사장 나란히 탄다.
가방과 서류봉투를 들은 규식 허겁지겁 달려나와
앞자리에 앉자 차는 떠난다.
#65 대문 안
박씨 정말 이집안의 어른이 누군지 모르겠다.
금원 판사님! 판사님이 최고 어른이지 뭐!
박씨 집안꼴 잘돼간다. 어느놈의 집안이 시애비가 며누리를
모시고 출근을 하느냐 말야!
(O.L)
#66 반도 호텔 앞 (저녁)
채사장의 차가 와서 멈추고 채사장과 진숙 내린다.
#67 커피. 숍
채사장 진숙과 나란히 들어오면서 차객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빈자리로 간다.
채사장 굳 이브닝 써!
차객A 오우. 채사장님. 여전하시군요. 허판사님도...
진숙 안녕하십니까?
채사장 또 다른 차객에게.
채사장 허. 오랫만입니다, 권사장.
권사장 채사장 안녕하십니까?
채사장 (진숙에게) 인사해라. 동풍씨멘트 권사장...
우리 며누립니다, 허판사...
권사장 하하, 참. 그러시군... 안녕하십니까? 판사님.
진숙 처음 뵈겠읍니다.
인사를 하면서 비인 자리에 채사장과 진숙 마주앉자 종업원
부지런히 차를 날라간다. 다른 자리의 차객들 수근댄다.
차객여인 저 영감탱이는 저녁마다 며누리 데리고 차마시는게
취민가봐...
차객신사 판사 며누리 자랑이지.
차객여인 아니, 근데 신랑은 어떻게 생겼는지 노상 시아버지
하고만 다닐까.
#68 채사장실 현관안
규식이 돌아와 구두를 벗는다. 가방과 서류봉투를 박씨가
줏어 들며.
박씨 내 너의 아버지한테도 얘기할테지만 도대체 무슨놈의
예편네가 만날 이렇게 남편보다 늦는 법이 있다더냐?
너도 따끔하게 혼꾸녁을 줘. 고질이 되면 안된다.
규식 (씩 웃으며 대스럽잖게) 차라리 아버지가 장가를 드시는게
좋을뻔 했나본데요.
금원 오빠는 약오르지도 않어? 나 같으면 가만 안있는다.
규식 가만 안있으면 죽이니? 어쩌니?
금원 오빤 오빠대루 엔죠이함 되잖아. 흔해 빠진게 여잔데.
박씨 미친계집애.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계집은 거저 놀아준다든? 가산이나 탕진하라구?
규식 어머니. 염려마세요. 그런 일은 없을테니.
순임 우물쭈물 나오며.
순임 마님. 뒷문에서 누가 마님 뵙자누만요.
박씨 누가 날 뒷문에서 보자니?
하고 쏘아부치다 문듯 마음에 잡히는듯 황망히 나간다.
#69 뒷문 밖
기철이 고개를 떨구고 서있다.
박씨 (나오며) 아니, 글쎄. 누굴 죽이리려구 이러니?
기철 어머니. 마지막 부탁입니다. 백만환만 돌러주세요.
박씨 백만환!
기철 백만환만 있으면 입원해서 완전히 고치구 새사람이
될수 있어요. 어머니 내 병만 고치면 몇배로 늘려서 보답
하겠어요.
박씨 글쎄, 백만환이 뉘집아이 이름이냐?
기철 어머니에게는 단 하나의 아들 아니요? 어머니는 날
버렸지만 나는 어머니를 잊은 적이 없어요.
박씨 내가 널 버렸단말이냐? 피땀으로 울궈서 널 키워달라고
돈을 댄 이에미가 말이야? 응.
기철 어머니가 돈 백만환이 아까워서 죽어가는 자식을 그대로
버려둔다면 나도 생각이 있어요.
박씨 이 에미를 위협하는구나...
기철 이 집에다 몽탕 불을 싸지르고 나도 같이 타죽을테요.
박씨 요새같으면 차라리 그렇게 죽어버리는게 낫겠다. 엣다!
이거 가지구 어서 가거라.
손에 쥐고 나온 돈을 준다.
기철 갈테요! 백만환 꼭 만들어 주세요.
기철은 그 돈을 채어가지고 황망히 사라진다.
박씨 불쌍한 자식... 지지리두 복두 못타구 태어나서...
(F.O)
#70 (F.I) 사장실
채사장 화영을 앞에 불러 세우고 당부한다.
채사장 이번에 미쓰 오를 경리과로 보내는 것은 두가지 목적
이 있어. 하나는 미쓰 오가 내 곁에서 과오없이 일을
처리해준 보답으로 다소라도 승진을 시키자는 것이고...
에에... 또 한가지는 내 욕심이지만 우리애 규식이가 남의
일이라면 무골호인이라 경리과장으로서 거절하기 어려운
일이 있을 법해서 직접 출납을 감시해 달라는거야.
화영 제가 어떻게 과장님 일을...
채사장 미쓰 오에게 그애 하는 일을 감시하라고 하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미쓰 오는 사장의 비서로서 경리과에 가서
근무한다는 기분으로 잘 보살펴 달란말야. 나는 아다시피
꼼꼼스럽게 서류를 훑어 볼 여가가 없으니 미쓰 오가 봐서
사장 결재가 없는 돈은 일체 지불을 하지말도록 해주게.
알겠나?
화영 네.
(WIPE)
#71 경리과
과장자리에 앉은 규식, 그 앞에서 사원 한명이 애원하고 있다.
사원C 과장님만 믿겠읍니다.
규식 시계를 보고는 화영을 부른다.
규식 미스 오.
화영 다가오자 지출결의서를 꺼내주며.
규식 이거 지불해 줘.
화영 (서류를 훑어보고) 사장님 결재가 없군요 퇴근하신
모양이니 내일 지출하죠.
규식 내가 대결 했잖아.
화영 과장님. 대결로는 지출할 수 없는데요.
규식 사람은 살리구 봐야 될꺼아냐 지출해 줘.
화영 이렇게 한 두 번 씩 나간게 벌써 얼만데요.
(E) 전화벨.
규식 경리과장입니다. 네! 누구요? 오호, 자아식.
난 또 누구라고...
응? 오늘? 그래 몇시? 응. 좋아... 어디? 오케잇!
알았어. (수화기를 놓고) 이봐. 미쓰 오. 지불해 줘.
화영, 사원C 를 데리고 제자리로 돌아가고 규식은 책상정리를
하는데 늙스그레한 사원이 다가 온다.
노사원 저어 과장님. 오늘 저녁에 좀 뵐수 없읍니까?
규식 왜요?
노사원 그저 뭐, 약주나 한잔 대접할까 하고...
규식 친구하고 약속이 있어서 안되겠는데요. 무슨 일인지...
오늘 꼭 얘기 해야할 일입니까?
노사원 네. 좀 조용히 부탁드릴 것이 있어서...
규식 그럼, 지금 말씀하시죠.
노사원 여기서야 어디...
규식 저녁에 늦게도 좋습니까?
노사원 네. 과장님 좋으신 시간에 장소만 지정하시면...
(WIPE)
#72 BAR N
규식,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신다.
친구A 자, 과장님. 드시지...
규식 자식. 과장 과장 하지마. 기분 나쁘게.
친구B 야. 너의 마누라하고 재민 좋냐?
친구A 자식 복두 많지...
여급 정말 복두 많으셔 그런데 한가지 서운한게 있어요.
규식 뭐가 어쨌다는 거야!
여급 선생님 하고는 연앨 못하겠으니까 말에요.
규식 너 정말 나하고 연애 좀 할까?
여급 어머나! 그러다가 판사님이 아시면 난 골로 가게...
아유 무서워! 가차이도 오시지 마세요.
규식 핫 핫 핫! (그 웃음소리가 공허하다.)
친구B 근데 얘 규식아, 널 오늘 특별히 초대해서 한턱 쓰는것은
부탁이 있어서 이러는건데 너 들어주겠니?
친구A 그럼 그정도 부탁을 안들어 준대서야 학창시절의 우리
삼총사의 우정이 울지 않겠니. 하하하하!
규식 뭔데? 말해봐!
친구B 다른게 아니구...
친구A 자식 어물어물 할 것 없잖아! 내 얘기하지. 이자식이
지독한 깔치한테 걸려서 고소를 당했는데 너의 마누라
한테 부탁해서 잘 봐달라는거야.
규식 ...
친구B 너도 아다시피 나한테는 약혼자가 있잖니... 근데
그만...
친구A 자식이 결혼한다고 꾀어서 끌고다니면서 애까지 배게
했거든.
친구B 좀 봐다구. 너의 마누라한테 부탁 좀 해줘. 그 계집애가
고소를 했어. (규식의 손을 잡고 애걸.)
규식 약간 불결한 듯 술잔을 든다.
(WIPE)
#73 안방 술집
노사원 규식에게 술을 권하면서 애원.
노사원 과장님 약주좀 드십시요. 그래서 말입니다. 죄송하지만
판사님께 말씀드려서 화해를 하도록 해 주십시요. 자,
약주 좀... (주정비슷이) 상말로 이불속 청탁이 제일
이라는데 과장님께서 말씀하시면 그것 정도 안들어
주시겠읍니까? 아하하하.

#74 채사장집 앞 N
택시 와서 멈춘다
운전수 바로 허판사님 댁이로군요?
규식 그렇소 판사님, 여판사님댁이요. 자 돈...
(E) 싸이렌 소리.
취한 규식 내리자 순임 대문을 열고 나온다.
#75 현관 안
순임이 가방을 받아들고 따른다.
규식 위대한 여판사님은 또 안들어 왔구나...
순임 이층에 계셔유. 지가 가서 여쭙구 오께유.
#76 서재 (2층)
진숙 단정히 앉아 판결문을 쓰고 있다.
진숙 (나즈막한 소리로 쓴 것을 읽는다.) 피고는 상습적인
수단과 방법으로서 양가의 처녀들을 순차적으로 유인
농락했을 뿐만 아니라...
순임 (문을 열고) 서방님 들어오셨이유.
진숙 그래 곧 내려갈께. 나 차한잔 다구.
순인 이 방으루유?
진숙 응.
#77 규식 방 N
규식 입은채로 꼬라져 잠이 들었다.
박씨 (자던 옷바람으로 문을 열고 들여다 보고) 온 저런
쯔쯔! 어유, 가여워...
#78 서재
책상위에 다 써서 철해논 판결문.
진숙은 고단한듯 차를 마신다.
박씨 (문을 열어 보고) 아무리 여판사라지만 너두 사람의
계집노릇을 할려거든 남편 들어오는 시간에 좀 내려가
보지도 못하니?
고개를 떨구는 진숙.
#79 규식의 방
규식 괴로운듯 몸을 뒤틀다가.
규식 무 물! 물 좀...
들어선 진숙 남편의 모습을 가슴아프게 본다.
달려가 물을 따른다.
규식 물! 순임아.
진숙 여기 있어요.
규식은 잠결에 꿀떡꿀떡 들이키고 그제야 게슴프레 눈을 뜬다.
진숙 침대 앞에 콱 쓸어져 무릎을 꿇고 그의 가슴에 볼을 부비며.
진숙 여보! 내가 정말 당신께 못할 노릇 했군요, 이제부턴
정신 차리겠어요.
규식 (획 돌아누어버리며) 판사는 바쁜법이지. 위대한
여판사님은... 딱타 원은 나보다 역시 영리한 놈이야.
진숙은 그자리에 엎드린 채 가만히 어깨가 물결치기 시작한다.
(F.O)
#80 (F.I) 규식의 방
진숙 들어와 침대의 규식을 깨운다.
진숙 여보, 여보! 시간 다 됐어요. 일어나셔야죠.
규식은 괴로운듯 눈을 뜬다.
진숙 어디 편찮우?
규식 머리가 몹시 아퍼, 내가 어제밤 굉장히 취했었나 부지?
집에 돌아온 기억이 없어.
진숙 정말 기억에 없어요?
규식 응.
진숙 난 밤새도록 울었는데...
규식 왜?
진숙 정말 모르셨다면 굳이 얘기할 필욘 없어요.
규식 내가 뭐 당신한테 실수를 한 모양이군.
진숙 취중에 진담이 나온다는데...
규식 그래? 그럼 무조건 사과해야지... 나 오늘 오후에나
회사에 나가겠어, 약 좀 먹구 누었다가.
진숙은 서랍에서 약을 꺼내고 규식을 안아일으켜 약을
먹여준다.
(O.L)
#81 복도와 현관
진숙 출근차비로 서둘러 나오는데 자리옷바람의 금원
빈정댄다.
금원 언닌 남편이 아프다구 누어있는데두 태연히 출근할 수
있우?
진숙 오늘 공판이 있어서...
금원 남편보다두 직책이 중하단 말이지? 언니네 집안은 몰라두
우린 며누리시켜 월듭을 타다 먹을만큼 가난하지는 않아!
여필종부라고 여자는 한번 출가하면 남편을 섬겨야
한다면서...
채사장 (현관쪽에서 들어서며) 금원아, 이년. 아침부터 언니한테
무슨 버르장머리냐!
금원의 따구를 갈긴다.
#82 대문 밖
채사장과 진숙이 탄 자동차 떠나자 순임이 대문을 닫는다.
그것을 바라보는 금원.
금원 흥! 어디 두고 보자.

#83 법정
공판이 진행중
판사석에 진숙, 여서기.
청년 저 역시 이혼을 하려고 하기까지는 무척 고민했읍니다.
그러나 더 이상 참는다는 것은 그만큼 불행을 연장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판사님! 저의 생활은
부부가 아닙니다. 신혼초부터 지금까지 저의 부부가 한
방에 같이 있는 시간은 하루에 여섯시간이나 될까요.
방청객들 허허허허.
방청객들 호호호호.
청년 그것도 잘 때 뿐입니다. 저는 언제나 아내보다 먼저 들어와
기대리다가 지쳐서 잡니다. 그러면 아내는 밤늦게 들어와
그냥 자고 아침이면 저보다 늦게 일어납니다. 그러니
생생한 정신으로 부부의 정을 나누는 시간은 전연 없는
것입니다.
#84 규식 방
밥상을 받은 규식 상머리에 박씨.
박씨 오늘은 쉬려므나? 그리고 네 아내는 내게 맡겨, 내가 단단히
길을 들여 놓을테니까! 이런 가정불화는 집안에 없든
일이다.
규식 말없이 수저를 놓는다.
#85 법정 (#83과 동일)
여자측이 변론한다.
여자 전 직책상 어쩔 수 없읍니다. 그리고 결혼하기 전에 이미
저의 그런직업을 이해하겠다고 해서 결혼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와서...
운다.
(O.L)
#86 판사실
진숙, 여서기 퇴근차비를 하며.
진숙 시험준비 많이 했어?
여서기 네. 그런데 전 시험을 그만 둘까싶어요.
진숙 왜? 갑자기...
여서기 어쩐지 여자에게 법관이라는 직업이 너무 무거운 짐이
될 것 같아요.
진숙 솔직히 말하면 요즘 나두 그것을 느끼고 있어 허지만
우린 개인의 일시적인 고통이나 난관보다도 많은 여성들의
지위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겠어.
#87 채사장댁 응접실
할머니와 순임이 다정스럽게 안락의자에 마주앉아 있다.
차잔과 과자접시. 할머니는 순임의 그런 대접에 만족한듯.
할머니 금원이란 년은 날 속이기만 하지... 꼬감을 사준다고 하고,
빠나나를 사준다고 하고... 그러면서 한번도 안 사오잖니.
우리 순임이가 제일야. 너 없으면 난 굶어 죽는다.
순임 (의젓이 안락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며) 이제 할머니 날
때리지 말어유. 아무두 읍스면 이런거 해줄께...
(E) 초인종.
순임 기겁을 하고 일어서다가 차접시를 깨트린다.
순임 아이구머니!
할머니는 과자접시를 들고 안으로 도망.
#88 대문
순임 나와서 대문을 연다.
진숙이 과자상자를 들고 들어선다.
순임 워짠일이시유? 이러케 일찍...
진숙 일찍 퇴근 하니까 이상 하냐?
#89 복도
할머니 시침을 떼고 나타난다.
할머니 손님 오셨냐?
순임 판사님이 오셨어유!
진숙 들어서며.
진숙 할머니 이거...
할머니 이게 뭐냐? 날 주는거냐?
진숙 맛있는 과자예요. 많이 잡수세요.
할머니 아이구, 우리 애기가 제일이지... 너 아니면 난 굶어
죽을거다. 히히히히!
진숙 할머니. 그런 말씀 하시는거 아냐요.
할머니 그래 그래, 안한다. 안해... 아가, 정말 이거 나 다먹으래?
진숙 호호호. 한꺼번에 잡수면 안돼요.
할머니 (벌써 생과자를 입에 넣고) 안먹을께... 이것만 먹고
안먹을께...
진숙 (순임에게) 어머님도 나가셨니?
순임 서방님하구 같이 나가셨어유. 열두시나 거반 돼서 아침
잡숫구...
#90 주방
순임 들어와 깨어진 접시를 어떻게 처리 할까 망상거리는데 한복
으로 갈아입은 진숙 주방으로 들어온다.
순임 얼래 판사님두 그래니께 천상 각씨같으네유.
진숙 호호호! 웃으우냐?
순임 아니유. 참 좋아유. 천상 우리 동네 참봉댁 메누리 같으네유.
진숙 저녁 반찬꺼리 장만 했니?
순임 아니유... 왜유? 시방 저녁 할래유.
진숙 오늘은 내가 할께.
순임 어매 판사님두 그런거해유? 그만두구 들어가시유.
#91 경리과
머리가 개운하지 않은듯 담배를 피우고 있는 규식.
규식 미스 오! (다가온 화영에게 서류를 내밀며) 이거 자재과에
지출 해주고 그만 퇴근해도 돼.
화영 네... (되돌아 서는데.)
금원이 다가오며 찡끗 한눈으로 화영에게 눈짓을 하고.
금원 오빠! (명랑하다.)
규식 너 뭐 아침에 아버지한테 맞었다면서?
금원 피. 그까짓거 보통이지 뭐.
규식 네 속은 모르겠다. 언젠간 수면제 소동까지 일으키고,
매 맞은 데모를 하드니...
금원 오빠. 오늘 내 오빨 즐겁게 해줄께.
규식 응? 경리 과장이라구 해두 금전출납의 결잰 내가 못하는거
알지 너두.
금원 피. 누가 째째하게 돈 얻으러 온 줄 알어, 순수한 의미에서
오빨 기쁘게 하자는거지.
규식 이거 도모지 얼떨떨 하구나.
금원 사실 생각해 봐. 여판사님이 집에 오구서부턴 오빠나
나나 아버질 잃은 것 같잖어? 식구들의 단란은 온데 간데
없어지구.
#92 공사장
채사장과 현장감독 얘기하고 있는데 박씨 다가온다.
채사장 아니 왜 또 이런데까지 오는거야?
박씨 회사에 갔더니 여기 오셨다기에 공사하는 것도 볼겸
왔어요.
현장감독 사모님. 안녕하십니까?
박씨 얼마나 수고 하슈... 많이 추진됐군요. (채사장에게)
일 끝나셨으면 저하고 조용히 얘기 좀 해요.
#93 택시 안
규식 무턱대고 어딜 가는거야.
금원 여자라는게 어떤건지 보여준데두, 오빤 눈앞에 두구두
그걸 발견 못하구 있는거야.
규식 너말이냐?
금원 와하하하.
#94 방 안 (화식집)
채사장 내키지않는 눈치로 박씨와 들어와 앉는다.
채사장 별안간 무슨 일요?
박씨 앗다. 영감 모시고 조용히 저녁 한끼 먹고 싶어 그랬어요.
채사장 그 미친소리 말고 무슨 일인가 말해봐.
박씨 며눌애 때문에 얘기좀 해야 겠어요, 당신은 멋도 모르고
며누리 자랑만 하지만...
채사장 또 또 쓸데 없는 소리!
박씨 그렇게 역정 내지말고 잘 들어 보세요.
#95 주방 N
진숙이가 순임이와 부산하게 저녁준비.
진숙 찌개 끓었니?
순임 네, 그런데 오늘은 워짠일들일까... 말짱 입때까지
안오시게...
#96 방 안 (화식집)
박씨 전골냄비를 뒤적인다.
박씨 글쎄, 판사 판사 하고 추켜세우지만 말고 버릇을 곤쳐
야 해요. 저녁마다 제남편보다 늦게 와가지고는 그나마도
이층에 도사리고 앉아서 제 일만 하고 있으니 제남편은
그래 속아지도 없답디까? 이 뜨거운 것 좀 더드세요.
#97 아파트 화영의 방
알뜰하게 꾸며진 식탁.
화영이 사라다를 갖다놓고 거울 앞으로 다가가 머리를 매만진다.
노크소리.
화영 컴인!
문이 열리며 금원이 다 됐니? 하는 눈짓
화영이 끄떡인다.
금원 자아, 오빠 들어와.
화영 어서 오세요.
규식 아아. 미스 오 집이였군!
화영 들어서는 규식에게 얼른 물수건을 대령한다.
규식 오늘 무슨 날인가?
화영 아니예요. 그저 저녁 한끼 대접하구 싶었어요.
규식 고맙소. 그런데 어쩐다? 빈 손으로 와서.
화영 별 말씀 다 하시네요. 어서 웃옷 벗으세요. 더우신데.
화영은 얼른 규식의 상의를 벗긴다.
금원 우아, 뭘 이렇게 굉장히 채렸니? 혼자서.
화영 입에 맞으실런지 몰라. 과장님 식성을 몰라서... 자
앉으세요.
규식이 앉자 화영은 닭 찜과 보글보글 끓는 두부찌개를
상에 갖다 놓는다.
규식은 야릇한 감정에 사로 잡혀 있다.
#98 규식의 방
진숙 이불을 펴 놓고 새로 대린 규식의 파자마를 요밑으로 넣는다.
나란히 놓인 벼개.
(E) (할머니 소리) 순임아! 왜 저녁 안주니! 날 굶겨 죽일
셈이냐!
(E) (순임의 소리) 조금만 기대리시라니께요.
(E) 초인종. 순임 달려가는 발소리.
진숙 일어나 나가려고 하는데.
(E) (금원의 소리) 나 저녁 먹었다.
진숙 책상앞에 앉아 법복을 입은 자기사진을 들고 본다.
#99 금원의 방
금원 옷을 훌 훌 벗어 동댕이치고 침대에 배를 깔고 엎으린다.
순임 옷을 줏어 걸며.
순임 얼래! 워짠 술냄새가 이렇게 나유? 아이 골치야...
금원 술냄새에 골치가 아파? 이 맹추야.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골치가 아파! 랄랄랄 라라라!
(E) 초인종.
순임 이저덜 오시는가베!
금원 엄마 오시거든 이방으로 오시라고 그래. 굉장한 뉴쓰가
있다고 응!
순임 뭐유? 누수가 뭐유?
(E) 초인종. 진숙의 나가는 발소리.
금원 어서 나가봐!
#100 대문
진숙 대문을 열자 채사장과 박씨 들어온다.
진숙 이제 들어오세요?
채사장 오호. 네가... (한복이 신기한듯)
박씨 순임이는 어디갔니?
순임 (달려오며) 이제 오시유?
박씨 우린 저녁 먹었다.
순임 얼래 오늘은 판사님이 맛있는 음석을 잔뜩 만들어
놨는디 말짱 안잡숫네.
채사장 난 저녁 좀 다구... 당최 밖에서 먹는 음식은...

#101 복도
할머니 반갑게 나오며.
할머니 난 저녁도 안 먹었다.저년이 밥을 안줘. 굶어 죽겠구나...
채사장 얘 순임아. 할머니하고 겸상해 오느라. 응!
순임 네! (박씨에게) 저 작은 아씨가 좀 오시래유. 누스가
있대유...
박씨 뭐, 누스?
#102 주방
진숙 찌개냄비를 올려 놓는다. 알뜰하게 채려 논 밥상.
#103 금원의 방
박씨 뭐! 그래서? (웃음이 물결친다.)
금원 거기 내가 오래 있는 건 쑥이지 뭐야, 살짝 먼저 달아나
왔지 뭐.
박씨 호... 잘했다, 잘 했어.
#104 화영의 방
취안이 꿈을 꾸듯 화영을 바라보고 있는 규식.
금원의소리 오빠 지금쯤은 인생 최대의 하니타임일꺼야. 호...
그리구보면 화영이 제법이야.
화영 사모님이 기다리시는 거 아녜요?
규식 노오!
화영 시간두 늦었는데 이젠 돌아가셔야죠.
규식 노오!!
화영 어머? 여자 혼자의 방인데 그럼 주무시구 가실래요?
규식 ...
화영 여 판사님이 아시면 전 무서워요.
규식은 그 말에 발악적으로 달려들어 화영을 끌어 안아 버린다.
#105 채사장실 내실
채사장 할머니와 겸상으로 식사. 진숙 상머리에 앉아 있다.
채사장 아가, 너도 식사 해야지...
진숙 네. 천천히...
할머니 난 이런 거 처음 먹는다. 이렇게 맛좋은 것을 통 안주고...
채사장 허허허! 어머니 많이 잡수세요. 오늘은 며눌아기가
만들은 반찬이라 맛이 있는거요.
박씨 들어온다.
진숙 어머님도 식사 하세요.
박씨 난 저녁 두번 먹는 버릇 없다. 넌 저방으로 가거라.
채사장 (나가는 진숙에게) 아가, 너도 어서 먹어라. 시장 할텐
데... 이녀석은 뭣하느라고 입때 안들어와...
할머니 며눌아기가 오늘 과자도 많이 사왔다. 며눌아기가 제일
이지...
(F.O)
(F.I)
#106 채사장실 현관 저녁
하이힐과 고무신 7,8족.
(E) 안에서 터져나오는 여자들의 웃음소리.
할머니 슬금슬금 나와 구두와 고무신을 한군데에 수북히
쌓아 놓고 혼자 웃는다.
조심스럽게 들어서는 중년여인.
할머니 어서오슈... 손님들 많이 왔오. 들어가우.
여인 저어...
할머니 들어가라니까.
여인 저어 여기가 허판사댁이죠?
할머니 우리 손주며누리가 판사요 동무들이 많이 왔다우.
여인 그러세요... 저어.
할머니 어서 들어가슈.
여인 아니예요. 할머니 이것좀 판사님께 전해 주세요.
(과자상자와 봉투를 내준다.)
할머니 이건 뭐요? 먹을꺼요?
여인 좀 이상한듯 바라보다가.
여인 꼭 좀 전해 주세요, 네.
할머니 왜 그냥가슈...?
웃음 소리가 또 터져 나온다.
#107 규식의 방
진숙의 동창생들과 진숙.
동창생A 너무하지 뭐야. 아무리 판사님이 됐기로서니 그렇게
우릴 감쪽 같이 잊어버리구 살수 있니?
진숙 그런게 아니래두.
동창생B 고만둬. 이렇게 습격이나 와야 만나 주면서 뭘.
동창생C 여판사님 침실에선 법정 냄새가 난다, 얘.
모두 와 하고 웃는다.
#108 금원의 방
웃음소리 번져온다.
박씨 요새 좀 일찍 들어온다구 속채렸나 했드니 인젠 친구
들까지 데리구 들어와서 저 지랄이니.
금원 아이, 꼴 보기 싫어. 나 나갈래.
#109 복도
할머니 여인이 준 봉투를 뜯어본다. 백만환짜리 수표와 편지.
할머니 진숙의 방 쪽으로 가는데 등뒤에 금원 다가온다.
금원 할머니는 왜 여기서 왔다갔다 해요.
할머니 아니다. 이거... 이걸 줄라고.
금원 그게 뭐에요? (채트려 보고) 백만환! 일줘요 내가 언니
줄게요.
할머니 시무록 하니 안으로 들어가는데 금원 뒤쫓아가 과자상자를
안긴다.
금원 할머니 이건 할머니 드릴께요.
할머니 나중에 뺏어갈려구...
금원 아녜요. 혼자 다 잡수세요. 그리구 할머닌 빠나나가 제일
잡숫고 싶댔죠, 빠나나두 사다 드릴께요.
할머니 거짓말 아니냐?
금원 아냐요. 이번엔 꼭 사드릴께요. 그대신 할머니 이런걸 절
줬다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세요. 응?
할머니 그럼 나 그런거 너 안줬지?
금원 됐어요. (홱 돌아서며) 피아노가 생겼다.
현관으로 규식 들어온다.
금원 오빠 화영이 집에나 갔다와 지금 여판사님방엔...
하며 신발들을 가리킨다.
규식 불쾌한 낯으로 돌아선다.
다시 들려 오는 여인들의 웃음소리.
(F.O)
(F.I)
#110 채사장댁 정원 (저녁)
화초에 물을 주고 있는 순임.
안에서 피아노 소리가 울려나온다.
#111 금원의 방
신이 나서 피아노를 두드리고 있는 금원.
#112 채사장댁 응접실
채사장 의자에 묻쳐 신문을 보고 있다.
(E) 요란한 피아노 소리.
박씨 조심스럽게 들어온다.
채사장 저놈의 피아노좀 없애지 못해!
박씨 앗다 사주기나 하고 그런 소릴 하슈... 몇해를 용돈을
아껴 사들인 걸...
채사장 듣기 싫어!
박씨 여보 피아노 보다도 정작 큰일이 났어요. (큰일난 얼굴이
아니다.)
채사장 큰일이 또 무슨 큰일이야!
박씨 아이 제발 역성 부리지 말고 잘들어요. 규식이가 요새
집에 늦게 들어 오는 이율 아세요?
채사장 그놈을 혼내 주려고 벼르든 참이오.
박씨 걔가 그렇게된 이유부터 따지셔야죠.
채사장 또 며누리 험담이요?
박씨 험담이 아니라니까요.
채사장 그럼 어쨌다는거야. 당신 시키는대로 다 들어 줬겠다, 뭐가
또 불평이요.
박씨 이인 듣지두 않고 역정이야. 규식이가 화영이 하구 그렇게
됐대요.
채사장 뭐? 언제!
박씨 벌써 며칠 돼요. 당신 속상할까봐 말을 안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집구석 꼴이 안되겠어요. 난 긴요하게 쓸 돈이
있어도 당신한테 입도 못벌리고 있는데 엉뚱하게스리
두계집을 두고 어쨌던 모든 걸 따지고 보면 꼬트리는 딴데
있는게 아녀요. 판사며누리도 좋지만...
(E) 초인종.
박씨 순임아. 누가 왔나 나가 봐라.
순임소리(E) 네에.
#113 화영의 방
침대에 누어 있는 규식과 화영.
화영 ... 이렇게 지내다 사장님한테 들키게 되면 어떻게 돼요.
규식 그럴리야 없겠지만 화영이가 회사를 고만두는게 내 맘이
편할 것 같군.
화영 그리군요?
규식 ...
화영 난 이렇게 일생을 살란 말씀이군요.
규식 화영이... 사랑한다면 참을 수 있잖아.
화영 싫어요. 부인한테 얘기해서 결판을 내세요. 판사라면
남편을 뺏긴 죄가 누구한테 있는지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 것 아녜요.
규식 ...
화영 못 하겠으면 내일부터 내 집에 오지 마세요.
규식 화영이... 날 버리지 마.
화영 뭣 때문에 내가 이짓을 계속해요? (울며) 죽어버리겠어요.
규식 죽긴...
#114 응접실
수표를 할머니에게 주고간 여인, 채사장에게 통사정.
여인 그게 집을 팔은 돈입니다. 자식들을 데리고 셋방살이를
하드래도 저의 주인이나 감옥살이를 면할까 하고
그린 것인데... 그렇게 중벌을 주실 줄은 몰랐읍니다.
죄진 사람이니까 징역 사는 건 할 수 없지만 그때 드린 돈은
돌려 주셨으면 하고...
채사장 흐흠!
여인 판사님 곧 들어 오십니까?
박씨 늦게나 들어와요. 근데 그돈은 분명히 주었죠?
여인 그런일을 어떻게 꾸며서 말하겠어요. 하기야 죄를 감해
달라고 그런 것을 갖다 드린것 부터도 잘못이지만
어떡해요. 하두 답답해서...
채사장 알았오. 우리 며누리가 오면 알아봐서 돌려드리도록 하지요.
여인 그저 저의 다섯식구 목숨 살려주시는셈 치고 돌려주셨으면
고맙기 이를데 없겠읍니다. 기가 막힌 돈입니다.
할머니 문을 열고 빼꼼히 들여다 본다.
박씨 내일이라도 다시 들리슈.
여인 죄송합니다. 이런일로... (일어서서 나오다가 할머니를
보고) 안녕하세요?
할머니 응. 오셨오? (누군지 알턱이 없다.)
여인 저어... 그때 드린 봉투는 꼭 전해 주셨죠?
할머니 응... 가슈? 뭐 좀 먹고 가지...
여인 (채사장을 보고) 그럼 잘 부탁 합니다.
#115 대문
박씨 여인을 대문까지 바라주며.
박씨 어이구. 쥔양반도 그렇게 된데다가 돈까지 억울하게 썼으니
좀 마음 아프겠우... 내일이라도 또 들려요.
지가 돈을 받었으면 그만한 댓가가 있어야지. 그냥 깡그리로
그래서야 되겠우...
#116 응접실
채사장 담배를 빨고 있다.
박씨 (들어오며)... 그래 어쩔려구 남의 돈을 백만환씩이나 그냥
받아먹고...
채사장 으흠!
박씨 내 뭐랬오! 본시 제 것없이 자란 사람은 할 수 없어요.
그러나 저러나 못된 것이지 그 많은 돈을 혼자만 꿍꿍이
속으로... 필경 제 친정 멕여살리느라고 그랬을꺼요. 난
그런 꼴은 못봐요. 절대로 못봐요.
채사장 듣기 싫대도!
할머니 아들 채사장에게 아양을 떤다.
할머니 오늘은 뭐좀 안해먹니? 배가 고파 죽겠다.
채사장 어머니! 아까 그여자가 준 것을 며누리 줬오?
할머니 뭔데? 난 아무것도 안먹었다.
박씨 그 노망 좀 작작 떨어요! 아까 그여자가 뭘 줬대잖어요?
할머니 난 몰라 글쎄... 종이쪽만 받았다.
박씨 글쎄, 그것말에요!
채사장 며눌애기를 꼭 줬오?
할머니 응... 아니 글쎄 난 안먹었어... 빠나나도 안사주고...
(WIPE)
#117 금원의 방
박씨와 금원 수군댄다.
금원 그래 어떡했어?
박씨 어떻하긴... 내일 오면 되돌려 준다고 사정을 해서
보냈지 어쨌던 잘됐다. 그런일이 생긴게 다행야... 아유,
그 판삽네 하고 아니꼽게 구는 년! 이 년 들어 오기만 해라.
당장 봇짐싸서 쫓아보내고 말테다.
금원 엄마...
(E) 초인종 소리.
박씨 이년 이제 들어오는가보다.
휭 나간다.
금원 피아노를 얼싸안고 어쩔 줄을 모른다.
#118 응접실
채사장과 진숙, 박씨.
진숙 아버님께서도 절 그렇게 생각 하세요?
박씨 아니 그럼 우리가 없는 일을 너한테 두집어 씨운다는 거냐!
진숙 전 법관의 명예를 걸고 맹세하겠어요. 그런 돈을 받은 적도
없고 그런 여자를 만난 적도 없어요.
#119 금원의 방
금원이 할머니를 구슬르고 있다. 할머니는 꼬깜을 우물거린다.
금원 할머니 알았죠? 절 줬다고 하면 안돼요.
할머니 안줬다, 안줬어.
금원 우리 할머니가 제일야, 내 또 빠나나도 사다 드릴께요.
할머니 우리 금원이가 제일이지... 너 아니면 굶어죽어. 흐흐흐...
금원 그러니까 그걸 저한테 줬다고 하면 안돼요.
할머니 안줬다, 안줬어.
(O.L)
#120 응접실
진숙, 채사장, 박씨등 할머니의 입을 주시한다.
할머니 그런거 난 안먹었다. 금원이도 안주고...
진숙 할머니, 똑똑히 말씀 하세요!
박씨 아니 여기가 법정인 줄 아니 엉! 어디 시할머니를 그렇게
떵떵 얼르고 있어 못된 년!
진숙 아버님. 내일 그여인네가 오거든 절 꼭 만나게 해주세요.
저의 친정이 가난은 하지만 청백하게 산다는 것이 오히려
큰 재산이예요.
(O.L)
#121 금원의 방 N
박씨와 금원 수군댄다.
박씨 이년아. 그럼 진작 이 에미 한테라도 얘기를 할 것이지...
금원 할머니만 말안하면 될텐데...
박씨 그 늙은이가 망녕은 떨어도 정신이 멀쩡하단 말야. 이년아...
그러구 법률공부를 하고 판사까지 된 것이 이런 것 쯤 들춰
내지 못할까봐...
금원 오늘 저녁에 몽탕 죽여버렸으면 좋겠네... 어머니하고 나만
남고...
박씨 이년이 이렇게 태평천하야! 이에미는 정말 돈 백만환이
없어서...
#122 채사장댁 주변 N
기철이가 주위를 살핀다.
#123 채사장댁 대문 안
외출차비로 나서는 채사장.
박씨가 뒤 따른다.
박씨 아니 이밤중에 어딜 나가세요.
채사장 규식이란 놈을 찾을테야. 필시 그놈이 어떻게 한 짓이야.
박씨 (대문을 열며) 찾거든 너무 욱질르지 마세요. 그애도
불쌍하지 않우.

#124 대문 밖 N
채사장이 탄 차 굴러가고.
박씨 한숨을 쉬고 돌아서는데 기철 나타난다.
기철 어머니...
박씨 아니, 이 밤중에...
#125 규식의 방 N
진숙, 규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무엇인가 생각에 잠겨 있다.
문득 서랍 속에서 책을 꺼낸다.
임신에 관한 서적.
#126 방 안 N
안방, 박씨와 기철, 조심스럽게 얘기한다.
박씨 글쎄 돈이 아까와서 그러는게 아니라 내 수중에 그런
큰 돈이 없어.
기철 좋아요. 그렇다면 난 가지 않겠어요. 나도 어머니곁에
서 살겠어요. 이 집에서...
박씨 넌 꼭 이에미 죽는 것을 보겠단 말이냐?
기철 어머닌 오래 오래 사세요. 난 오늘 저녁이래도 죽어
버릴테니까...
박씨 이놈아. 에미 속도 모르고 그런 소리 하는게 아니야.
박씨, 찬장을 열고, 기철에게 오렌지 쥬스를 따라 준다.
박씨 어서 이거나 들어라. 그리고 오늘 저녁은 그냥 돌아가주렴.
박씨 핸드백을 열고 천환짜리 몇장을 꺼내 준다.
기철은 보지도 않는다.
기철 날 이집에서 재워줄 순 없단 말이죠?
박씨 글쎄, 네가 이집에서 어떻게...
기철 어머니 앞에서 죽고 싶어서 그래요. 거리에서는 죽을 수
없잖아요.
#127 화영의 방 N
규식과 화영, 침대에 가지런히 앉아 심각한 기색.
화영 (물컵을 따르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아요, 판사님한테
미련이 남았거든 돌아가세요. (손바닥에 캡슐에 든 약과
한손에 물컵) 나 혼자도 죽을 수 있으니까...
규식 (물을 따르며) 나도 줘.
화영 역시 날 더 사랑해 주시는군요, 고마와요.
(약을 준다.)
녹크도 없이 도어가 열리고 자리옷바람의 여인 불쑥 들어온다.
여인 (기겁을 하고) 어머나! 딴 방이네!
부지런히 도망.
화영 어머, 문을 안잠궜군요.
규식 이세상 떠나면서도 문을 잠궈야 하나...
규식 일어나 문쪽으로 간다.
(E) 녹크
규식 물춤 한다. 도어 열리고 채사장 불쑥 들어온다.
화영 약을 감춘다.
채사장 옷 입어라. 어서! (화영 앞으로 가서) 못된 것들 같으니...
규식 아버지. 먼저 가세요, 곧 가겠어요.
채사장 안돼! 어서 옷 입어.
화영 (무릎을 꿇고 애원) 사장님 용서하세요, 한시간만...
용서하세요. 한시간만 같이 있게 해주세요.
채사장 네게는 안됐지만 다시는 우리 규식일 생각마라.
채사장, 수표를 한장 꺼내 화영앞에 놓는다.
#128 방 안 N
박씨와 기철.
박씨 요지음 이 집안에도 속상하는 일이 많단다. 너는 이 에미가
부자로 뱃속 편하게 사는 줄 알테지만...
(E) 전화벨.
박씨 어서 들어라... (전화있는 쪽으로 간다.)
여보세요? 네... 지금 외출중이십니다. 네, 네, 좀 늦을것
같습니다.
네 , 네 그렇게 여쭙죠.
박씨, 전화를 받는 사이에 기철 주머니에서 약을 꺼내서 쥬스에
탄다.
박씨 (전화를 받고 자리로 돌아와서) 어서 들고 더 늦기 전에
가거라.
기철 (컵을 들어 마시려다가 놓고) 어머닌 내가 아주 없어지면
시원하겠죠?
박씨 이자식아. 에미 속좀 작작 태우고 어서 그거나 들어...
기철 어머니. 이젠 다시 속 썩여드리지 않을게요.
기철, 박씨를 또라지게 바라보는데 자동차 크락숀과 초인종이
울린다.
박씨, 당황하여 쥬스 컵을 찬장에 감추고 서둔다.
박씨 어서 가거라... 이 에미를 좀 살려다구 응...
박씨, 기철의 등을 밀어내듯 한다.
(E) 초인종.
기철 쥬스 ,쥬스 마시구요.
기철 넋이 빠진 사람처럼 밀려 나간다.
#129 대문 안
순임이가 대문을 열자 채사장과 규식, 들어온다.
박씨도 부지런히 나오고 진숙도 나온다.
채사장의 심상찮은 기색에 모두 말들이 없다.
채사장, 규식, 그 뒤에 진숙이 현관을 통하여 안으로 들어가고
우두머니 서 있는 박씨를 보고 주춤거리는 순임.
박씨 (순임에게) 너도 들어가거라.
순임 대문을 잠그야죠?
박씨 내 잠글게. 어서 들어가...
순임 안으로 들어간다.
정원 나무사이에서 기철 나온다.
박씨 (나직하게) 어서 가거라.
박씨, 대문을 열어준다.
기철, 박씨에게 무엇인가 지꺼리려고 하는데
채사장 큰기침.
채사장 (E) 밖에 누구냐?
박씨 (기철을 밀어내며) 내가 문 잠그느느라고 그래요.
#130 규식의 방
진숙, 규식의 양복을 벗긴다.
양복을 장에 챙기며.
진숙 뭐 시원한 것 좀 드시겠어요?
규식, 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어린애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131 안방
채사장, 자리옷으로 갈아입고 앉아 담배만 피운다.
박씨 찬장을 열고 기철이에게 주었던 쥬스 컵을
채사장에게 내놓는다.
박씨 당신 시원한 것 좀 드시겠우.
순임(E) (문앞에서) 마님...
박씨 순임이냐? 왜?
순임 (문을 열고 들어와서) 판사님이 시원한 차 좀 만들어
오라셔요. (찬장앞으로 간다.)
채사장 (쥬스,컵을 눈으로 가리키며) 이거 갖다 줘라. 난
맥주나 한병 따 주구려...
(혼자 중얼 거리듯) 두 잔을 들여 가야잖어유...
박씨 엣다. 한잔만 더 따르고 냉장고에 넣어놓고, 얼음 넣어서
이것하고 함께 들여가... (통을 내어준다.)
순임 네.
받아들고 채사장 앞의 것과 함께 들고 나간다.
#132 복도
순임 쥬스 컵을 들고 오는데 화장실에서 나온 할머니와 마주친다.
순임 못본 척하고 규식의 방으로 간다.
#133 규식의 방
순임이 쥬스 컵을 들고 들어와 진숙에게 준다.
진숙, 받아서 한잔을 규식에게 준다.
규식, 단숨에 들이키고 자리에 앉는다.
진숙이 남은 잔을 들고 마시려고 하는데 할머니가
불쑥 들어온다.
할머니 아가. 난 그런거 못 먹어 봤다.
진숙 그럼 할머니 드세요.
할머니 (컵을 두손으로 받아 들고 마신다.) 아이, 맛잇다.
난 이런 것도 안 준다.
진숙 할머니, 그런 말씀 하시지 마세요.
할머니 안할께. 안하지...
진숙 할머니, 그런데 그 봉투는 누굴 줬어요?
규식, 담배를 집어 불을 붙인다.
할머니 히히히. 그 금원이가 빠나나 사준다고 하면서 뺏어 갔지.
히히히. 나는 안줬어... 뺏어갔지... (부지런히 나간다.)
#134 화영의 방
화영, 침대에서 얼굴을 파묻고 운다. 이불위에 수표,
화영, 무엇을 결심한 듯 울음을 그치고 고개를 든다.
냉수 컵을 들어 단숨에 들이 마신다. 감추었던 약을 찾아 쓰레기
통에 버린다.
수표를 들고 복잡한 웃음을 띠우고 빽 속에 넣는다.
#135 규식의 방
야릇한 분위기 속에 마주 앉은 진숙과 규식.
진숙 당신께 보고 할 일이 생겼어요. 그 하나는 판사직을 내
놓겠다는...
규식 뭐? 당신 그게 진심이오?
진숙 진심이예요. 가정의 평화와 질서를 유지못하는 인간이
남의 죄를 판가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얻은 까닭이예요.
... 그리구 또 하나는 애기를 가졌다는 일이에요.
규식 (놀람과 동시 깊은 회오에 잠기며)... 진숙이 나두
당신한테 용서 받아야 할 일이 있어...
진숙 말씀 안하셔두 추측하고 있었어요. 또 듣지 않는 것이 약이
되리라고 생각 되요.
규식 용서해 주겠다는 말이요?
진숙 용서를 하고 안하고 원인의 태반은 이 제게 있었잖아요.
규식 진숙이!
규식은 와락 달려들어 진숙을 껴안는다.
#136 안방
화가 잔뜩 나서 자리에 누은 채사장에게.
박씨 할 수 없잖아요. 당신, 진숙이한텐 할머니가 가지구 있었다
구 하시구, 그 여자한테 백만환 갚아 주세요.
채사장 판사의 얼굴은 뭐가 되라는 거야!
박씨 ...
채사장 좋소. 그 문제는 내게 맡기고 그대신 당신 규식이 문제로
며느리 들볶는 일은 절대로 안하겠다고 맹세하겠오?
박씨 교환 조건이군요. 좋아요!
이때 복도에서 쿵쿵거리며 달려오는 순임의 비명.
순임의소리 아이구 마님! 하, 할머니가, 할머니가 돌아가세유.
#137 할머니 방 N
자리에 누워 신음하는 할머니, 가족들이 둘러 쌓다.
채사장 어, 어머니! 왜그러세요? 정신채려요!
박씨 의사 좀 빨리 불러라.
순임, 달려 나간다.
할머니, 진숙을 바라보다가 채사장에게 물을 마시는 시늉을 한다.
채사장 물이요?
할머니, 손을 내젓는다.
할머니 (손으로 쥬스를 마시는 시늉을 하면서) 먹었어...
(진숙을 본다.)
가족들 눈길이 진숙에게 쏠린다.
금원 약을 잡쉈나봐!
할머니 절명한다.
진숙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눈, 눈, 눈.
(F.O)
#138 신문기사 (INS)
독살?
허판사 시조모 사인규명
가족들을 연행문초.
#139 법정
마치 넋이 빠진 것 같은 박씨가 피고석에 서있고
검사가 논고를 하는 중이다. 재판장석에 윤판사외 변호사가 된
진숙은 긴장하여 검사의 논고를 들으며 박씨를 주시한다.
검사 피고는 미리 준비한 독물이 들은 냉차를 남편인 채성진
에게 권했으나 이를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다시 식모
강순임을 시켜 아들인 채규식에게로 보냈다는 사실을 진술
하고 있으며, 증인 채성진, 강순임, 채규식등이 이를 입증
하고 있읍니다. 피고의 가정적인 위치로 볼 때 채성진의 후
취며 채규식에게는 계모가 되고, 피살자에게는 며누리가
됩니다. 그런 피고는 전실자식인 채규식이 결혼을 하자
시어머니의 위치에서 그들의 신혼 생활을 시기했다는
사실도 입증되고 있읍니다.
#140 공판정 밖
입정하지 못한 방청객들이 수군대고 있다.
방청객A여 글쎄, 미련한 년이지 그래 그짓을 하면 채사장들
재산을 독식 할 수 있을까봐... 쯔쯔!
방청객B여 며누리는 뭣하러 판사를 내놓고 저까짓 시에미를
변호하고 나섰을까...
방청객남 (E) 떠들지들 말아요!
여인들 물춤하여 바라본다. 기철이가 여인들을 쏘아보고 창안으로
눈길을 돌린다.
당장 공판정으로 뛰어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141 다시 법정
검사 피고의 악독한 소행은 추호도 동정의 여지가 없으며 특히
년만한 존속을 살해한 죄과는 마땅히 극형에 처해야 할 것
이나, 최초의 살의가 시모에게 있지 않았다는 점을 참작,
형법 제 XX조에 의하여 징역 X년을 구형하는 바입니다.
방청석의 채사장, 금원, 규식, 비통한 기색.
#142 공판정 밖
검사의 구형이 시원하다는 기색으로 방청객들 웅성댄다.
기철은 여전히 창안을 쏘아본다.
방청객A여 쉬잇! 변호사가 일어섰어요.
#143 다시 법정
변론을 하기 위하여 일어선 진숙은 미쳐 입을 열지 못하고 한참동안
박씨를 바라보다가 재판장과 검사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진숙 지금 논고 하신바, 피고는 최초 독물이 들은 냉차를 남편
에게 마시도록 권하고 그다음에는 아들에게로 돌렸다고
했읍니다. 그것은 피고의 진술이나 증인들의 입증으로 이미
확인된 사실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또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사실이 있읍니다. 이미 공판을 통하여 증인 강순임이 증언한
바와 같이 그때 냉차를 달라고 요청한 사람이 있읍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아닌 며누리 즉 본변호인이 었읍니다.
피고는 남편 앞에 내놓았던 냉차를 식모를 시켜 며누리에
게로 보냈읍니다. 그때 만약 피살된 시조모가 나타나지 않
았으면 며누리인 본 변호인이 살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피고는 시어머니를 살해했다는 죄목이 아니라 며누리를
살해 했다는 죄목으로 당법정에서 심판을 받게 되었을 것
입니다.
웅성대는 방청석. 모두 공조하는 기색들이다.
진숙은 박씨를 바라본다.
박씨 질려서 쓸어질 듯.
진숙 피고의 가정적인 위치는 본건과 같은 범행을 일으킬만한
객관적인 요소를 다분히 지니고 있읍니다. 즉 피고는
후취로 들어와 계모라는 사회적으로 불명예스러운 위치에
있게 되고 위로는 늙은 시모가 있었읍니다. 그리고 전실
자식이 결혼을 하자 시어머니가 된 것입니다. 피고에게는
그 며누리가 다른 가족 못지 않게 미웠을 것입니다.
#144 공판정 밖
방청객B여 그러믄 그렇지. 저시에미를 좋게 얘기 할리가
있나...
기철 창으로 뛰어 들어가려다가 장정의 제재를 받는다.
#145 다시 공판정
진숙 그러나 이상 말씀 드린 바와 같은 검사의 논고 요지는 마치
장화홍련전을 들추는 것 같은 독선적인 법리론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물춤 긴장하는 검사, 넌짓이 진숙을 바라보는 윤판사.
진숙 검사 논고에 따른다면 본 변호인은 피고를 가장 증오해야
할 처지에 있읍니다. 그러나 본 변호인은 피고를 변호하기
위하여 이자리에 섰다는 사실을 재판장은 알아주시고 오늘
의 여성들은 장화홍련전의 세계에서 살고있지 않다는 것을
말씀 드리는 바입니다. 피고가 시어머니이기 때문에, 계모이
기 때문에, 며누리이기 때문에 틀에 박힌듯한 추상적인 요인
만으로서 살인범의 굴레를 써야할 법적 근거는 없읍니다.
검사는 피고가 언제 어디서, 무슨 약물을 어떤 방법으로
구득 했으며 누구를 무엇때문에 살해 할려고 했다는 확증을
제시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추상적인 방증만으로서 과
중한 형량을 구형했다는 사실을 재판장은 알아 주시기 바
랍니다.
#146 공판정 밖
방청객들 기대에 어긋났다는 듯 두런거린다.
방청객A여 뻔한 걸 가지고 괜히 저러지... 누가 뭐 딴사람이 그
랬을까봐...
방청객B여 시에미니까 그냥 좋게 얘기 해주는거지... 죄는
진대로 간다고 징역은 가는거야...
기철 어쩔 줄을 모른다.
(O.L)
#147 채사장댁 현관 (아침)
진숙이 바삐 서둘어 나가려고 하는데 채사장도 뒤따른다.
진숙 아버님은 오늘 공판정에 나오시지 마세요. 오늘은 어짜피
유죄 판결이 내릴 것이에요.
채사장 너도 너무 무리하지 말아... 죄가 없으면 풀릴꺼고 죄를 졌
으면 할 수 없잖니?
진숙 앞으로 이심, 삼심까지라도 저는 굽히지 않고 나서겠어요.
다만 지금 어머님께는 누가 그때 냉차에다 독물을 탔는가
하는 반증이 필요해요.
채사장 그러니 그걸 누가 안단 말이냐... 세상 답답한 노릇이지.
(E) 전화벨.
두사람 안으로 귀를 기울인다.
순임 (E) 아, 여보시유... 네, 그러유. 야, 게시유. 워디시유?
#148 방 안
순임 전화를 받는다.
순임 그냥 원선생님이라구유? 급한 일이라구유? 판사님 한테유?
진숙 들어오자 순임 전화기를 주면서.
순임 병원에서 급한 일이라네유...
(O.L)
#149 병 실
기철이 혼수상태로 누어 있다. 간호원과 원동훈 지켜본다.
동훈의 까운 주머니에 봉투.
(E) 녹크.
간호원이 급히 문을 열자 진숙 들어온다.
기철을 보고 동훈에게도 고개를 돌리는 진숙.
눈과 눈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아니다.
동훈 자살하려고 약을 먹고 공원에 쓰러진 것을 지나가던 사람이
발견하고 업고왔오. 주머니에 이런 유서가 있기에...
(봉투를 꺼내준다.)
진숙이 받아 펼친다.
기철의소리 오늘은 어머니의 판결이 내리는 날입니다. 그래서
견디다 못하여 이글을 씁니다.
저의 어머니 박옥년은 죄가 없읍니다.
그 냉차에 약을 탄 것은 접니다.
어머니 앞에서 죽을 생각으로 약을 탔지만,
저는 그것마저 마시지 못하고 쫓겨났읍니다...
진숙 기철쪽으로 눈이 가자 기철 슬멋이 눈을 뜨고 헛손질을 한다.
진숙 곁으로 가서 바라본다.
기철 (물그러미 바라보다가) 우리 어머니를 살려 주십시요.
제가... 제가 대신 감옥에 가겠읍니다.
기철 억지로 일어서려다가 쓰러진다.
#150 공판정
꽉 들이찬 방청객들 피고석에 앉은 박씨, 변호사석과 방청석을
두리번거린다.
금원 언닌 병원에 갔어요, 곧 올꺼예요.
박씨가 무슨 소리를 하려는 것을 간수가 제지한다.
법관들 입정.
정정 기립!
일동 일어선다.
정정 착석!
방청객들 앉으면서 비어있는 변호사석을 바라본다.
진숙 급한 걸음으로 들어온다.
윤판사 박옥년!
박씨 앞으로 나선다.
진숙 (자리에 와서 재판장을 바라보고) 언도를 하시기전에 특별
변론을 요청합니다.
윤판사 아니 오늘!
진숙 네! 본건을 번복 시켜야할 확증을 제시하겠읍니다.
법관들 긴장. 방청객들도 어리둥절.
진숙 본건의 진범인이 발견 되었읍니다. 그는 피고의 전남편의
아들입니다.
#151 병실
침대에 일어나 앉은 기철 울며 몸부림친다.
기철 날 날 재판장으로 끌고 가주십시요. 내입으로 떳떳이 자백
하고 우리 어머니를 살리겠읍니다. 선생님. 선생님!
동훈 알았오. 좀 진정하쇼.
#152 법정
진숙 피고는 전남편의 자식인 그사람이 있다는 것을 전가족에게
숨겨 왔읍니다. 그것은 단란한 가정의 평화를 파괴하지
않겠다는 선량한 생각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피고가
본건에 있어서 끝까지 범죄 사실을 부인하지 않고 살인범
이란 굴레를 쓰고 나선 것은 어디까지나 자식을 위하고 감
싸주는 모성애의 발로라는 것을 또한 재판장께서는 알아
주시길 바랍니다.
이때 법정문을 열고 기철이 소리를 지른다.
기철 어, 어머니!
방청객들 놀래는데 기철은 와락 뛰어들어 박씨앞에 쓰러지며 운다.
(WIPE)
#153 채사장댁 응접실
채사장들 가족이 모여 있다.
처음보는 단란한 분위기, 그러나 박씨는 어쩔줄을 모르고 눈물만
닦는다.
채사장 거, 소견머리가... 거 진작 얘길하구 그녀석도 한집에 와서
살았으면 얼마나 좋아. 흐응...
금원 엄만 울기만 해... 이제 그 오빠가 나오거든 한집에
살도록 해.
박씨 (더욱 흐느끼며) 할머니를 죽인 놈인데 어떻게 나오겠니?
진숙 어머님 염려 마세요, 제가 또 나서서 변론을 하겠어요.
가족들 감격하여 말을 못한다.
(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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