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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나리오_4) 오해가 남긴 것(1966)

2023-11-25 조회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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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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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K
02........오해가 남긴 것
03........동성영화주식회사
04........홍은원
05........
06........김문화
07........
08........오리지널
09........스탭
기획 : 채규철
각본 : 김문화
감독 : 홍은원
촬영 : 정광석
조명 : 장기종
미술 : 홍성칠
음악 : 전정근
스틸 : 장민재
소품 : 김영기
진행주임 : 차규종
제작부장 : 김석희

캐스트
박윤옥 (요정, 유락원 기생)
이상준 (윤옥의 애인)
박강희 (윤옥의 여동생)
강사장 (유락원 단골손님)
대식 (그의 아들)
초심 (유락원 마담)
선화 (유락원 기생)
국향 (유락원 기생)
미향 (유락원 기생)
아심 (유락원 기생)
계영 (유락원 기생)
비취 (유락원 기생)
갑돌 (시골 총각)
비서 (강사장의)
문도수 (모 대학생)
박교수 (모 대학 교수)
모 사장 (한성방직사장)
경자 (강희의 친구)
삼순 (갑돌을 사모하는 시골 처녀)
바우 (갑돌의 친구)
갑돌 부
갑돌 모
이씨 (윤옥의 모)
배달부
순경A
여인A (윤옥의 하숙집)
김사장 (유락원 손님)
이사장 (유락원 손님)
여대생A
사진기자
미스터 심 (유락원 종업원)
손님A (유락원 손님)
손님B (유락원 손님)
손님C (유락원 손님)
춘희 (명동의 모 바 마담)
바걸A (명동의 모 바)
바걸B (명동의 모 바)
기타 남녀대학생들
서울역 승객들
요정손님들
다수
#1 (F.I) 시골길
한 폭의 그림 같은 시골 풍경.
늙은 우편배달부가 여고생 박강희(18)를 뒷자리에 태우고
자전거를 몰고 간다.
배달부 낼 모래면 시집 갈 놈이 철딱서니 없이...
강희 후후후... 아이 신난다.
#2 강희의 집 마당
조그마한 초가집.
강희의 어머니 이씨,
헛간에서 닭에게 줄 모이 그릇을 들고 나오다
찌르릉하는 자전거 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모퉁이를 돌아 마당에 들어서는 자전거에서
깡충 뛰어내리는 강희.
강희 어머니!
이씨 저런 말괄량이 같은 계집애! 어서 오세요.
배달부 안녕하십니까, 큰따님한테서 편지가 왔죠.
(편지를 내밀고 돌아선다.)
이씨 수고하셨어요... 도장을 찾지 않는 걸 보니 이번에도
돈은 아니구나.
강희 뭐 곤란한 사정이 있는가보죠.
이씨 어서 편지나 읽어 봐라. 앓지나 않는지.
강희, 마루에 걸터앉아 편지를 뜯는다.
편지 속에서 떨어지는 사진
그것을 집어들며.
강희 어머! 사진이네.
윤옥의 사진이 강희의 손에서 이씨 손으로 옮겨지며.
강희(E) 아- 유 언니가 이렇게 멋쟁이가 됐다. 배우보다
더 이쁘죠 어머니?
이씨 걔야 워낙 똑똑하고 이뻤으니까... (다시 들여다보며)
이그 볼이 여위었구나 (한숨) 취직자리가 그렇게 좋다지만
고생하구 있는 게 뻔하지 뭘...
#3 명동 거리
화장기도 별로 없이 청초한 여대생 같은 차림의 윤옥(24)이
남자들의 시선을 차갑게 퉁기며 걸어온다.
어느 바- 앞에 이르자
서슴는 기색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선다.
#4 바- 안
마담 춘희가 담배를 피워 물고 서서
보이에게 잔소리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얼굴로 돌아다본다.
윤옥 언니 계셨군요.
춘희 (별로 반가운 표정은 아닌 듯) 응 어서 와, 오늘이
벌써 스무날이든가?
윤옥 그거 마련이 되셨어요?
춘희 아이 얜 너 아다시피 요새 무슨 경기가 있어야 말이지...
한 달만 더 기다려 줘야겠다.
윤옥 아이 어떡허나... 약속이 틀려지는데.
춘희 약속이 틀리구 뭐구 그럼 없는 돈을 알 까듯이 까놓으란
말이니?
윤옥 이 달엔 꼭 좀 쓰게 해달라구 제가 두 달 전부터
말씀 드리지 않았어요.
춘희 이 계집애야, 사년 전에 긴 머리를 치렁치렁 느리구
식모살이 하던 걸 데려다 때 빼구 광 내논 게 도대체
누구니. 그런 날 배반하구... 네 아가리가 열두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게다.
윤옥 (차갑게) 언니 말씀대로 때가 빠지구 광이 나게 된 건
이 빠-의 여급이 되구부터였겠죠. 허지만 저두 2년 동안
언니한텐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두 해왔잖아요. 언니한테
이자 한 푼 없이 돌려드린 돈 오만원이 제가 어떻게 해서
번 돈인지 누구보다도 언니가 제일 잘 아시면서...
춘희 그러니까 누가 안 돌려준다는 거냐, 좀 참아달라는 거지.
윤옥 글쎄 이 달엔 꼭 써야 할 돈이라구 진작부터...
춘희 알았단 말야. 며칠 안에 일수돈이라두 얻어서
갚아줄 테니까.
윤옥 부탁해요. 꼭 믿고 가겠어요.
춘희 너 요새 인기가 더 대단하든데 뭘 그깟 돈 가지구
이 성화니 성화가. 가모 한 놈 콱 물어버리지.
윤옥 앞으로 물두룩 노력해 보죠. (웃어넘긴다.)
춘희 네 맘 하나 잠깐 돌리면 까짓 것 (새끼손가락을 세우고)
이거면 어떻니. 어머니, 동생 많지두 않은 식구 호강시키구
살 수 있을 텐데. (끔찍이 생각하는 것 같다.)
#5 시골 강희의 방
초라한 저녁 식사가 끝나가는 판이다.
강희, 윤옥의 사진을 상머리에 놓고
들여다보며 밥을 먹고 있다.
강희 어머니, 우리두 내년에나 학교 마치면 서울 올라가
살게됨 좋겠지?
이씨 서울은 무슨 서울. 내 고장, 나 살든 곳이 제일이지.
강희 어머닌 따분하지두 않은가봐. 이런 시골구석에서 머리가
희두룩 살구서두...
이씨 난 죽어두 여기서 죽지 타향엔 안가.
강희 알았다. 아버지 산소가 외로우실까봐 그러는 거죠?
이씨 헌다는 소리!... 에그 그나저나 네 형은 시집갈 나이두
지났는데 동생 하나 공부시켜보겠다구 고생 끊일 날이
없으니...
강희 ... 일년만 눈 딱 감구 참아봐요. 내가 학교 졸업하면
서울 가서 취직해가지구 어머니랑 언니랑 호강시켜
드릴께...
이씨 취직은 무슨 취직. 어서 시집들을 가야지...
강희 그까짓 시집은 가서 뭘 해. 어머니처럼 고생이나
진탕할려구? 후후... (힐끗 시계를 보고) 아이 벌써
저런 시간인가? 갑돌이네 집에 갔다 올래요.
하고 일어선다.
#6 갑돌의 집 마당
머슴들이 오고 가는 마당에서
갑돌이와 바우가 제기차기를 한다.
바우 열, 열하나, 열둘, 열셋, 열넷...
제기를 차는 갑돌의 모습이 가관이다.
강희가 들어온다.
갑돌과 바우, 강희를 보자 얼른 제기를 멈추고 다가오며.
갑돌 선생님 오세요?
강희 안녕하세요.
바우 난 한시간 전부터 와 있었어요.
강희 그래요? 자, 어서 들어가서 공부할 준비를 하세요.
갑돌 예.
얼른 바우가 대청으로 오른다.
사랑방에서 갑돌 부가 나오며.
갑돌부 강희가 왔구나.
강희 안녕하셨어요?
갑돌부 오냐. 요즘 괜히 우리 갑돌이 녀석 때문에 수고가 많구나.
강희 뭘요. 괜찮아요.
갑돌부 워낙 놈이 돌대가리라 국민학교밖엔 안 보냈지만
꼭 너한테서만 배우겠다니 그저 우리 마을 읍장 정도는
해먹도록 해주려므나.
강희 호호호... 제가 뭐 실력이 있어야죠.
하며 대청으로 오른다.
갑돌 부, 만족한 듯 그를 본다.
#7 갑돌의 방
이미 갑돌이와 바우는 책상 앞에 책을 펼쳐 놓고
점잖게 앉아서 강희를 기다린다.
강희, 들어서자 갑돌, 꾸벅 절을 한다.
강희, 앉자 갑돌의 옆에 놓인 트랜지스터에서
경음악이 흐르는 것을 보고는.
강희 그건 뭐죠?
갑돌 예, 라디오예요. 오늘 삼촌이 서울서 돌아오면서
사가지구 왔는데 들고 다니면서 기분을 낼 수 있는
신기한 라디옵니다.
바우 저두 그렇게 생각합니다.
강희 끄세요.
갑돌 음악을 들으며 공부하면 더 잘 될 것 같아요.
강희 끄라니까요.
갑돌 예. (얼른 끈다)
강희 어제는 어디까지 배웠죠?
갑돌 글쎄요. (머리를 긁는다.) 선생님 오늘따라 더 이뻐
보이십니다.
강희 그런 소리 말구 공부할 태세를 갖추세요!
갑돌 공분 해 뭘 해요. 어차피 돌대가린데... 강희 선생님만
옆에 있으면 출세할 것 같애요.
강희 호호... 만년 가정교산가요.
갑돌 아, 아니죠 저.. 저...
강희 어서 공부하세요. 갑돌인 이 고을에선 빽이 좋으니까
조금만 공부해두 읍장쯤은 문제없을 꺼예요.
갑돌 그럴까요?
강희 네에 우리 언닌 국민학교밖에 못 나오구 첨엔 식모살이를
했지만 그렇게 경쟁률이 심한 서울서두 빽 하나 없이
일류 회사 사무원이 될 수 있었거든요. 모두 자기
마음먹기 나름이에요.
#8 유락원 일실 (A)
장구, 가야금 소리와 트위스트 곡이 얼버무려지는 배음 속에
글라스에 하나 가득히 넘치는 정종을 단숨에 마시는 윤옥.
강사장(E) 과연 유락원 넘버원 스타 밤나비로다!
윤옥 (요염하게 웃으며) 자아, 잔 받으세요!
윤옥, 극도의 근시안인 강사장에게 잔을 권하고
솜씨 있게 은주전자의 술을 따른다.
비서 그 밖에서 이, 삼인의 인사들과
선화(35), 국향(32), 미향(30) 등 주연이 한창 어울린 자리.
강사장 밤나비, 우리도 춤 좀 춰볼까.
윤옥 사양할 수 없죠.
윤옥, 사뿐히 일어나 뚱뚱한 강사장을 부축해 세운다.
웨이터(E) 윤옥씨, 마담이 잠깐 나오시랍니다.
윤옥 나요? (요염하게 웃으며) 강사장님 잠깐 실례!
강사장 (손목을 콱 잡으며) 다른 방에 들어가면 없어.
윤옥 아- 이 강사장님을 놔두구 누구 방엘 가요. 곧 올께요.
윤옥. 살짝 강사장의 볼에다 키스하는 척 하고 달아난다.
강사장 (눈을 감은 채) 아이구 전기 온다.
모두 까르르 웃는 바람에
눈을 뜨고 멋쩍어진 강사장.
자리에 앉으며.
강사장 임마, 뭘 쳐다보는 거야.
비서 황공무지로소이다.
#9 다른 일실 (B)
날아갈 듯 수줍게 절을 하는 윤옥.
윤옥 옥이라고 불러주세요.
점잖은 두 신사와 유락원의 마담 초심이
호젓한 주안상을 놓고 앉아있다.
초심 높은 기관에 계신 분들이다. 여기선 김사장, 이사장으로
통하는 분들이지만... 말수 없는 믿을만한 애예요.
윤옥 (조용히 웃고)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초심 삼호실엔 누가 남안?
윤옥 선화하구, 국향 언니, 미향 언니...
초심 용히 내왔구나 강사장이...
윤옥 후후...
초심 얘 때문에 가끔 손님들 사이에 쌈이 벌어지군 해요.
이쁘죠? 김사장님.
신사 나두 그럼 고무 다리 둬개 준비해 둘까?
#10 A 실
강사장 야, 요 깍쟁이 옥이년 어디루 달아났니.
선화 (달라붙으며) 옥이만 맛인가요 이 선화두 있구
미향 언니, 국향 언니, 밤나빈 마찬가진데...
강사장 시끄럽다. 느이들 같은 거 열 개 한 묶음이라두
밤나비 하날 못 당하지.
미향 아이 기분 잡쳐. 너무 하세요. 강사장님.
강사장 이봐 김비서, 빨리 나가서 밤나빌 잡아와.
못 잡아오면 당장 모가지다.
비서 (목을 만지며) 예, 밤나비 잡으러 갔다 오겠습니다.
엉거주춤 나간다.
#11 시골 뒷동산 (밤)
달이 밝은 밤.
멀리서 뻐꾹새 울음소리.
강희와 갑돌이가 비탈을 내려온다.
갑돌의 어깨에 맨 트랜지스터에서 가벼운 멜로디.
갑돌 난 강희 선생님이 없으면 죽을 것만 같아요.
강희 후훗.
갑돌 내가 열다섯살 먹던 해서부터 선생님을 사모한 거 아세요?
강희 후훗.
갑돌 선생님과 공부하는 시간 그때만이 저는 제일 행복해요.
강희 후훗.
갑돌 선생님은 정말 아름다워요.
강희 그래요? 우리 언니한테 비하면 내 얼굴은 만화 정도죠 뭐!
갑돌 아, 아닙니다. 공주마마보다두 더 이뿝니다. 만일의 경우
선생님이 죽으면 이 갑돌이도 죽을 용기가 있습니다.
강희, 참을 수 없어 웃음이 터져 버린다.
이 광경을 뒤따르며 엿보고 있는 삼순의 얼굴에
눈물이 흠뻑 젖어 있다.
#12 시냇가 (밤)
갑돌이와 강희가 걸어온다.
강희 갑돌이!
갑돌 예.
강희 나는 내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서울로 갈 사람이야요.
갑돌 저두 따라가겠습니다.
강희 그리구 갑돌이에게는 삼순이가 있잖아요?
갑돌 그 계집애는 꼴도 보기 싫어요.
강희 어쨌던 난 갑돌이 건 누구 건간에 아직 여학생으로
연애 감정 같은 건 느낄 줄 모르는 사람이에요.
갑돌 (시무룩해져서) 이 라듸오 빌려 드릴까요?
강희 괜찮아요. 삼순인 참 순진하구 고운 처녀예요.
갑돌 그까짓 계집애! 전 강희 선생님이 아니면 정말... (안타깝다.)
강희 오늘은 여기서 꾿 나잇 해요. 내일 또 가겠어요.
하고 총총히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갑돌 강희 선생님. (울부짖는다.)
여태껏 이 광경을 지켜보던 눈물에 젖은 삼순.
갑돌이 앞으로 다가오며.
삼순 갑돌이...
갑돌 누구야?
삼순 나 삼순이.
갑돌 이게 꼴도 보기 싫다. 저리 가.
삼순 갑돌이 너무 해. 너무해!
갑돌 저리 비켜 쌍것아.
밀어붙이고 총총히 어둠 속으로
삼순 갑돌이, 갑돌이.
울부짖으며 뒤따라간다.
#13 윤옥의 방
침대에 잠든 상준(27)의 얼굴.
현대 감각적인 미 청년이다.
머리맡의 시계는 십일시 삼십분을 가리키고 있다.
상준의 얼굴 위에 가만히 와서 덮치는 여인의 뒤통수.
윤옥이다.
윤옥 여보, 미안해요.
상준, 눈을 뜨고 윤옥을 끌어안는다.
상준 기다리다 고만 깜박 잠이 들었군.
윤옥 당신 시장하잖우? 초밥 사왔는데 잡수실래요?
상준 (벌떡 일어선다) 먹을까? 아 윤옥이. 아까 외무부
친구한테서 일주일 내로 여권이 나온다구 연락이 왔드군!
윤옥 어머나 톱 뉴-스네요 당신 기쁘죠?
상준 ... 기쁜 거 보다 윤옥이한테 미안한 감이 앞서드군!
윤옥 아이 당신두... 내가 뭐 남인가요. 당신의 한 부분인 걸...
상준 그렇긴 하지만 윤옥인 나 때문에 삼년 동안 너무 고생만
했어. 그러구 앞으로도...
윤옥 (고개를 저으며) 난 수영이네 집에서 아주머니 눈총을
맞으면서두 당신이 계신 것만으로 행복했어요.
한낱 식모의 몸으로 가정교사였던 당신을 사모한
당돌한 나를 포근히 감싸주신 것만으로 난 내 일생을
바치고도 후회가 없어요! 이제 당신은 여권이 나오게
됐구 이년동안만 참으면 행복은 우리 것 아녜요?
상준 이년동안이나 어떻게 떨어져 살지?
윤옥 당신은 베를린의 하늘 밑에서 날 생각하구 난 서울의
하늘 밑에서 당신을 생각하구 죽도록 그리워하다
만나게 되면 더 멋있잖아요.
상준 윤옥이 정말이지? 날 잊으면 안돼. 날 배반하면
돌아와서 널 죽인다.
윤옥 여보!
불을 튕기듯 두 사람의 키스는 격렬하다.
(F.O)

#14 (F.I) 서울대학 전경
상아탑 속에 젊은 지성들이 오고 가는
조용한 대학 전경.
#15 화학연구실 (대학 안)
가운의 상준, 연구에 열중해 있다.
빛나는 두 눈, 약간 흐트러진 머리,
숭고할 정도로 그 모습은 잡념이 없다.
도어가 열리며 들어오는 박태호 교수.
정신없이 연구에만 열중해 있는 상준의 뒷모습을
싱글싱글 웃는 낯으로 바라보며 다가온다.
박교수 이군.
상준 (깜짝 놀라 돌아보며) 아 선생님 언제 들어오셨습니까?
박교수 지금 마악 핫핫... 여보게 이군.
상준 네.
박교수 자네한테 좋은 선물 주지 내겐 좀 쓴맛이지만 말야.
상준 ?
박교수 하하... 나왔어. 자아 대망의 패스포드. 아까 자네 없을 때
친구가 갖다놓구 갔지.
하고 여권을 꺼내 보인다.
상준 앗!
희열에 차서 그것을 펼쳐본다.
박교수 이제 내일이라도 여비만 되면 출국할 수 있어. 기쁜가?
상준 기쁩니다.
박교수 무린 아니지. 헌데 이거 늙은 놈이 자네 같은
유능한 조수를 잃는 건 타격이란 말야.
상준 별 겸사의 말씀 다 하십니다.
박교수 핫핫... 암튼 축하하네.
상준 감사합니다. 오늘 저녁 제가 선생님께 술을 한 잔 대접하죠.
박교수 나쁘지 않지!
상준 저 잠깐 알려야할 사람이 있어서 나갔다 오겠습니다.
가운을 벗어 던지고 상의를 입으며
부리나케 달려나간다.
#16 유락원 정원
아직 불이 켜지지 않은 이른 저녁.
일찍 출근하는 기생들과 웨이터들의 모습이 눈에 뜨인다.
미향이 들어온다.
반색을 하며.
미향 미스터 심, 잘 만났네요.
치프 웨이터 풍의 사나이를 끌고
나무 그늘 쪽으로 가서 애교 있게.
미향 ... 진작부터 생각하구 있든건데... 이거 미스터 심한테
어울릴 것 같아서 샀어요, 프레센트. (꾸러미를 넌지시
준다.)
미스터 심 뭔데? (받고)
미향 미제 세-타. 잘 좀 봐줘요 응.
미스터 심 이거 곤란한데. (싱글벙글)
미향 홋홋... 공치는 날이면 질색이거던.
미스터 심 알아 모십죠.
미향 누가 보기 전에 어서 가요.
그리고 콧노래라도 부를 듯 걸어온다.
윤옥이 다가오고 있다.
미향 어머 밤나비, 무슨 맘 먹구 이렇게 일찍 출근이냐?
윤옥 마담 언니 좀 뵐려구... (기운이 없다)
미향 뵈나 마나 너야 초심 언니 사랑 독차지하는 기생인데
공치는 날 있니?
윤옥 아이 언니두...
둘은 걸어서 내실 쪽으로 간다.
#17 내실
가야금 위에 퉁겨지는 은어 같은 손.
바른 가르마에 수심 찬
긴 속눈썹을 드리운 한 여인이 가야금을 퉁기고 있고
초심이 그녀의 옆얼굴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문을 빠끔히 열고 들여다보는 윤옥.
윤옥 어머, 손님 오셨나봐!
도로 문을 닫으려 하자
초심 옥이가? 들어오려마.
윤옥 괜찮아요?
윤옥, 들어서자 여인은 가야금의 손을 멈추고
부끄러운 듯 물러앉는다.
초심 너 이 분하구 인사하라마. 내일부터 여기 나오게 됐단다.
윤옥 박윤옥이에요.
여인 송기순이라구 합니다.
참한 규수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여인의 청아한 모습을 바라보며
윤옥의 가슴은 아픈 듯.
초심 얘기 듣구보니 이런 데 나올 사람은 아닌데
젠장 목구녁이 포도청이라 어쩔 수 없잖니?
윤옥 (동정으로 끄덕이며) 가야금두 잘 치시구
점잖은 손님들이 좋아하시겠네요.
초심 기순이란 이름은 부르기 거북한데 뭐 이름 하나
지여야겠지?...
#18 뒷방
기생들이 옷 갈아입고 화장하고 하는 방이다.
국향, 조그마한 수첩에다 땅바닥에 엎드린 채
연필에 침을 발라가며 쓰고 있고
선화와 계영(21) 화장에 여념이 없다.
미향은 한구석에서 오관을 띠고 있고 기생A, B 등.
국향 얘 미향아, 너 한달 더 쓸라면 모래가 이잣날이다.
미향 알구 있어.
계영 (미향에게) 언닌 뭣 때문에 그 비싼 이자 돈을 쓰우.
선화 얜 소식이 깡통이구나. 그럴 일 있지.
국향 일찌감치 단념해버리는 게 신상에 해롭잖을걸...
밑 빠진 시루에 물 붓기지...
미향 흥, 걱정두 팔자들이지. 남이야 파리를 타구 세계일주를
하건 밑 빠진 시루에 물을 퍼붓건 무슨 상관야. 즈이 집
가서 밥을 달랬나 술을 달랬나 나 좋아서 하는 일에
간섭을 말어.
국향 뻔히 앞길이 내다뵈니 말이지 야. 니나 내나 삼십이
넘어선 고비에 직업이 기생인데 진심으루 대해줄 놈팽이가
있는 줄 아니?
미향 내가 왜 서른살이야. 만으루 따지면 스물 여덞하구
몇 개월 밖에 안되는데...
국향 그렇게 따지면 네 서방녀석은 스물세살하구
몇 개월이겠구나.
미향 듣기 싫어. 누가 그따위 설교 듣겠대.
선화 다섯살이 아래건, 열살이 아래건 그 언닌 언니대루 궁합이
맞어 사는데 언니 남편을 뺏었으니 걱정이유. 내버려두란
말예요.
국향 모르겠다. 세상은 요지경 속이니까. 이잣돈은 모래야.
그건 분명히 알아둬 줘.
미향 알았다구요.
문이 열리고 초심이 여인을 데리고 들어선다.
초심 계영이 너 전화 받아라. 강대식 도령인가 보드라.
계영 그래요?
확 밝아지며 뛰어나간다.
초심 내일부터 이 방에서 옷두 갈아 입구 화장두 고치구 해요.
아심이라구 불르기로 했다. 보다시피 이런 덴 첨 나오는
사람이니까 잘들 보살펴 줘.
#19 내실
계영 (전화에 대고) 나야 에니 타임 웰컴이지만 그렇게 자주
드나들다 아버지한테 들키면 어떡헐래요. 호호... 그럼
기다리고 있을께요.
수화기를 놓고 윤옥을 향해 귀엽게 윙크한다.
윤옥 계영인 대학을 못다 마친 게 억울하지?
계영 할 수 있수? 집안 환경이 그 꼬라지가 된걸...
윤옥 계영일 보면 내 동생 생각이 나. 걔만은 어떻게 해서든지
대학에 다니게 해야할 텐데.
계영 언니 닮았으면 이쁘겠네.
윤옥 응 나보단 이뻐. 말괄랭이에다 고집퉁이지만...
훗훗... 계영이하구 좀 비슷한 데가 있지.
초심이 들어가자
계영은 두 사람에게 생긋이 웃어 보이고 나간다.
초심 그래, 얘기 듣자꾸나. 무슨 걱정거리가 생견?
윤옥 그이 여권 수속이 다 됐는데 돈 마련이 영 안되요...
초심 니가 요령이 없어서 그래. 돈이 몇 억씩 썩어나는
사장족 한 사람을 못 구슬린단 말이냐.
윤옥 결과에 가서 그 사람들이 요구하는 게 무서우니까
그렇죠 뭐.
초심 메뚜기 한철이라구 너두 불원 삼십이야. 까짓 거 이런 데
나온 년이 한두 번 어떻게 됐다구 닳아 없어지는 거냐,
자국이 남는 거냐. 너 알구, 본인 알구 하늘이 알면
몽땅 고만인걸.
윤옥 허지만 어떻게 그일 속여요.
초심 속여서 너 좋자는 건가? 그일 위해 하는 일인데...
윤옥 그래두...
초심 (한참 생각하다가) 가만 있거라... 성공할지 모르긴 하지만
나 하라는 대루 한 번 해보려마.
#20 유락원 전경 (밤)
불이 밝혀지고 생생하게 활기를 띠운 유락원.
왁자지껄하는 웃음소리와
고전 재즈의 음악소리가 믹스된다.
#21 유락원 일실 (밤)
흩어진 요리상.
윤옥과 초심, 강사장 비서만이 앉았다.
비서, 한알 두알 안주를 집어먹고
취한 강사장, 윤옥의 허리를 휘어잡은 채.
강사장 (속삭이듯) 밤나비.
윤옥 (요염하게) 말씀하세요.
강사장 너는 누가 뭐래도 반드시 내 께 될 거야.
내가 마음먹구서 안 찍어넘긴 나무가 없거던.
윤옥 호... 아무리 밤나비래도 앉을 자리는 가려 앉는다나요.
강사장 그럼 죽어두 내 가슴에는 앉지 않겠단 말인가? 응?
초심 향기가 없는 걸요 호호...
강사장 알았어, 알았어. 내가 밤나비에게 향기를 주지.
주면 될 것 아냐? 그윽한 향기 응? 비서.
비서 (놀라며) 예! 향기가 좋습니다.
강사장 돈, 돈이지? 돈이 향기야 얼마? 십만원?
초심 놀리시는 거예요?
강사장 아냐, 이십만원 사십만원 얼마든지 좋아. 서울의 헌다허는
오입쟁이 그 누구두 잡지못한 밤나비를 내가 정복한다면야
우리 회사를 다 주지.
비서 옳거니.
강사장 헛허허...
초심 오십만원!
강사장 좋아, 내가 오십만원이 문젤소냐 응? 비서, 안 그래?
하고 호주머니에서 수표책을 꺼내서 갈겨 준다.
불안한 눈으로 망설이는 윤옥.
초심 (받으며) 아, 드디어 밤나비가 잡혀가는구나.
강사장 허헛, 진작 그놈의 향수를 뿌렸으면 될걸. 허헛, 이봐 비서
프린스 호텔 알지? 응?
비서 좋습니다. (안주를 집어먹는다.)
초심 (윤옥에게 눈짓하며) 그럼 나갈 준비하세요.
#22 동. 정원 (밤)
대식이가 수목 위에서 서성거린다.
복도를 빠져 나오는 계영
외출차림으로 정원으로 온다.
계영 (두리번거리며) 미스터 강 어딨어요?
대식 (수목 뒤에서) 여깄어, 여기.
계영 아니, 왜 숨어있죠?
대식 아버지가 보이지 않어.
계영 살짝 나가면 될께 아냐요?
대식 앗 저기 나온다.
하고 계영의 뒤에 숨는다.
강사장이 흥겹게 콧노래를 부르며
윤옥과 비서의 부축을 받으며 차 앞으로 온다.
강사장 기분 참 좋구나. 이봐 비서?
비서 네.
굽실거린다.
강사장 자넨 집에 가서...
비서 네, 사모님한테는 뭐라구 할까요?
강사장 거 있잖아? 적당히! 적당히.
비서 예, 알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23 보도 (밤)
헤드라이트가 오고 간다.
계영과 대식이가 걸어오며.
대식 하필 내가 가는 날은 꼭 아버지가 온단 말야.
계영 앞으로 조심해서 와야겠어요.
대식 아버진 누굴 좋아하는 거지?
계영 밤나비를.
대식 밤나비라니?
계영 윤옥 언니라구 유락원의 간판 네온이야요.
#24 호텔 특실
강사장, 소파에서 윤옥의 볼을 부비며.
강사장 드디어 잡았구나. 미치겠어. 발광하구 싶은걸.
윤옥 술 드시겠어요?
강사장 거 좋지. 마시면 마실수록 밤나비는 아름답게 보이니 말야.
윤옥 호호호...
요염하게 웃으며
술병을 들어 강사장에게 글라스를 준다.
"음"
강사장, 잔을 비우고는.
강사장 한 잔만 더.
윤옥 자요!
강사장 (잔을 비우고 나서) 자, 밤나비도 한 잔.
아, 오십만원짜리 밤나비.
윤옥 탱큐.
쭈욱 들이키자.
강사장 자, 밤나비.
하고 윤옥을 덥석 안아서 베드로 간다.
윤옥, 긴장을 하면서도 몸을 맡기자.
강사장 벗어.
윤옥 아이 성미두 급하셔라.
가볍게 뿌리치며 구원을 청하듯 전화기 쪽을 본다.
때마침 전화가 찌르링 온다.
강사장 아니 웬 전화야?
윤옥 가만 제가 받아보죠.
하고 수화기를 든다.
윤옥 비... 비? 어머 혜경이야? 응, 근데 내가 어떻게
여기 있는 줄 알았지? 어머 그래? 알았어.
하고 수화기를 놓으며.
윤옥 저, 잠깐 나갔다 오겠어요. 아주 잠깐... 여학교 동창생이
옆방에 와있다잖아요...
강사장 요거 달아날라구. 같이 가.
윤옥 호호... 강사장님은 의심도 많으셔. 핸드빽두 있구 이대로
나갔다 올껄요 뭐. 안경 벗어놓구 단단히 준비하고 계세요.
하고 안경을 벗겨주고
볼에 살짝 키스를 던지고 나간다.
강사장 빨리 와.
하고 다시 술잔을 비운다.
#25 동. 옆 일실 (밤)
윤옥, 들어오자
똑같은 형으로 머리를 빗은 소파의 선화 일어서며.
선화 어떻게 됐어?
윤옥 아이 가슴이 두근거려 죽겠어.
선화 바보 같은 계집애, 스릴 만점이지 뭘 그래.
빨리 옷이나 바꿔입잔 말야.
윤옥 미안해 선화!
선화 공짠가 뭐. 누이 좋구 매부 좋은 얘긴데...
두 사람, 옷을 바꾸어 입는다.
윤옥, 가슴깊이 간직한 수표를 소중히 보이며.
윤옥 그럼 내일 만나. 수표를 바꿔가지구 나갈께.
선화 응.
윤옥은 선화의 옷차림으로
거기 놓인 핸드백을 들고 나간다.
#26 다시 특실 (밤)
베드에서 엉망으로 술이 취한 강사장,
몸을 가누지 못하며.
강사장 요, 요놈의 밤니비 뭘 하구 있는 거야. 오십만원 먹구
날은 게 아냐? 그랬단 없다, 없어.
이때 선화가 윤옥의 차림으로 살짝 들어오며
불을 끈다.
강사장 왔구나 밤나비.
선화 (다가오며) 기다리시게 해서 미안해요.
하고 강사장의 품에 안긴다.
강사장 아 밤나비 기여코 잡았구나.
이어 몸부림을 친다.
#27 윤옥의 방 (밤)
여권을 들여다보는 윤옥의 기쁜 얼굴.
윤옥 (눈물에 젖어) 어째 거짓말만 같구 현실이 아닌 것 같애요.
상준 분명히 현실이야. 윤옥이가 내게 준 현실의 선물이야.
윤옥 여보.
상준 윤옥이...
가만히 상준의 품에 안긴다.
윤옥 전 지금 굉장한 공상을 하구 있어요.
상준 어떤 공상?
윤옥 이년 후 당신이 엔지니어로 돌아오면 장충단 고급주택에다
정원에는 온통 장미로 장식을 하구 가끔 저는 당신이 혹시
바람을 피우지 않나 하구 의심을 하고는 싸움을 하구.
상준 난 남한테 공처가란 놀림감이 될 정도루 일찍 집으로
돌아와야 하구.
웃는다.
윤옥 그래요 알뜰살뜰 살아서 애기도 많이 낳구 싶어요.
상준 일개 소대를 낳을까?
윤옥 아이! 농담이 아녜요. 그때는 모든 사람한테 축복 받는
부부... 여보.
상준 음?
윤옥 독일 여자들 보고 웃으면 싫어요.
상준 그럼 밤낮 성난 얼굴로 살아야지!
윤옥 정말 저만 생각해주죠?
상준 계속해서 윤옥인 유락원에 나갈 거야?
윤옥 시골 가족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
상준 응... 허지만 나 없는 동안...
윤옥 당신두... 별 걱정 다 하시네요.
상준 고아로 자란 내게 있어서 윤옥인 내 어머니. 누나, 애인이자
아내 이렇게 네 가지 역할을 다해준 셈이야. 윤옥이!
하고 끌어안자 와락 안기며.
윤옥 여보!
하고 격하게 몰을 부빈다.
(F.O)
#28 (F.I) 하늘
제트기 한 대 높은 하늘을 날아간다.
#29 국도
달려오는 한 대의 자동차.
#30 자동차 안
온통 눈물에 젖어 외롭게 흔들리고 있는 윤옥.
윤옥(E)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당신의 아내는 몰래
한 모퉁이에 숨어서 당신을 전송했어요. 이젠 돌아오시는
그날만을 보답으로 살아가겠어요. 당신을 위해 앞으로
이년... 전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얄까봐요 당신에게
뒤떨어지지 않는 아내가 되기 위해서...
윤옥은 눈물을 닦고
결의에 찬 눈초리로 앞을 바라본다.
#31 남산 길
깨끗한 여대생 같은 차림의 계영과 대식,
팔을 끼고 걸어온다.
계영 오늘 아아 그 남자가 서독으로 떠났을 거야요.
대식 애인의 유학을 위해 기생노릇을 했다... 약간 신판데...
계영 신파식으로 되려면 이제 그 애인이 돌아올 때
다른 여자 하나를 동반하고 돌아오는 거죠.
대식 그렇지. 좌우간 행복한 불행을 가진 여자로군.
그런 것두 모르구 아버진 뭐야. 헛물 키구 있는 거지.
계영 훗훗... 남아 돌아가는 돈을 그렇게라두 써버려야지
우리 같은 여자두 먹고살잖아요.
대식 명확한 얘기군...
계영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까 음악실에나 가요.
대식 (짓궂게) 기생이 음악실은 무슨 음악실엘 가.
계영 (척 받아넘긴다.) 아참 새로 나온 육법전서에 기생은
음악감상을 금함이라구 나왔다죠?
대식 핫하하, 요게!
계영 훗후... 난 기생되길 참 잘했다구 생각해요.
대식 암 그러니까 나 같은 남잘 만날 수 있었지.
계영 우리 같은 케이스두 신파에 속해요?
대식 천만에! 우리야말로 예술을 하고 있는 거지.
계영 예술 좋아하시네.
두 사람, 거리낌없이 웃어제낀다.
#32 골목길
윤옥이 쓸쓸한 모습으로 걸어 들어오다가
길가 허름한 대문에서
아심이 시장바구니를 들고 나오는 것과 마주친다.
윤옥 (상냥하게) 어머 아심 언니 댁이 여기예요?
아심 (반가워하며) 최근에 이사왔어요. 여긴 어떻게...?
윤옥 우리 집이 (가리키며) 바루 저거예요.
한 동네 살면서도 모르고 지냈네요.
아심 정말... 집이 너무 누추해서 들어가시자구도 못하구...
(머뭇머뭇)
윤옥 싫어요. 그런 소리... 앞으론 친언니 동생처럼 지내요. 우리.
아심 고마워요. 나두 윤옥씨 첫인상이 누구보다두 좋았어요.
윤옥 지금 바쁘시지 않죠? 잠깐 우리 집에 가요 언니.
아심 글쎄... 저녁을 지여놓구 출근할려면 그럴 시간이 있을까요?
윤옥 (시계를 보고) 어머 벌써 네시가 넘었네. 그럼 이따
출근할 때 같이 가요.
아심, 고운 미소로 끄덕인다.
#33 윤옥의 집 현관과 복도
일본식 주택 현관문이 열리며 윤옥이 들어온다.
안쪽에서 방문이 열리며 주인 아주머니가 내다본다.
주인아주머니 아이구 이층 색시구려. 전보가 왔읍디다.
윤옥 네? 전보라뇨?
계단 밑에서 놀라 발걸음을 멈춘다.
주인 아주머니가 전보를 들고 다가오며 안됐다는 듯.
주인아주머니 어디루 연락을 하나하구 한참 애를 썼지 뭐유.
윤옥, 받기가 무섭게 펼친다.
주인아주(E) 잘 모르긴 몰라두 어머니가 돌아가셨단 뜻이 아니요?
새파랗게 변색되는 윤옥의 얼굴.
윤옥 아 아니, 어머니가!!
윤옥은 확 얼굴을 가리고 층계를 달려 올라간다.
#34 윤옥의 방
침대 위에 엎드려
윤옥의 어깨가 큰 물결을 이루며 통곡한다.
윤옥 어머니! 어 머 니.
주인아주머니 에그... 서방님 떠나시자 이게 웬일유 글쎄.
색시, 정신차려서 어서 떠날 준비해요. 어서.
#35 달리는 열차

#36 열차 안
초조와 불안과 슬픔에 잠겨 윤옥이 흔들리고 있다.
바로 윤오의 머리 위에 짐 얹는 곳에
신문지에 쌓인 꾸러미 하나.
그 신문지에 보도되어있는 인서트.
『나룻배 침몰사건.』

#37 시골길
윤옥이 조그마한 슈트케이스를 들고 허둥지둥 걸어온다.
온통 눈물투성이의 그 얼굴.
여인(E) 윤옥이 아니냐?
갈래길에서 다가오는 여인은 갑돌 어머니다.
윤옥 아주머니!
갑돌 모 에그 이제야 오는구나.
둘은 얼싸안고 울며.
윤옥 아주머니 어떻게 된 일이에요. 편찮으시다는 소식
한 마디두 없었는데.
갑돌 모 생뚱같은 사람이... 누가 아니래니... 하필이면
너이 어머니가 그날 나룻배를 타게 됐을 줄이야...
외삼촌 제삿날이였대드라.
#38 강희의 집 마당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다.
모두들 슬픈 표정들.
방안에서 들려오는 강희의 곡소리.
강희(E) 어머니, 난 어떻게 살아요 누굴 믿구 살아요. 어머니!
울타리 밑의 갑돌이와 바우도 흐느껴 운다.
윤옥이와 갑돌 어머니가 허둥지둥 들어서며.
윤옥 어머니.
울부짖으며 마루에 오른다.
뛰쳐나오는.
강희 언니!
윤옥 강희야!

#39 강희의 방
굳어진 이씨의 가슴 위에
윤옥, 몸을 던지며 통곡한다.
윤옥 어머니! 어쩌다 이 모양이 되셨어요! 오래 오래 사시지
않구... 어머니... 제가... 제가 나쁜 년이에요.
용서해주세요...
어머니!
강희도 윤옥을 붙잡고 마냥 울어댄다.
#40 둑길
강물이 흐른다.
하얀 상복의 윤옥과 강희가 걸어온다.
강희 어머니가 돌아가시니까 이젠 살구 싶지가 않아 언니.
윤옥 나두 마찬가지야, 호강 한 번 못시켜두리구 앞으로 이년만
더 사셨어두 행복해진 우리들을 보구 돌아가셨을 텐데...
강희 아직두 언닌 밤에만 근무하우?
윤옥 응?... 응, 큰 회사래서 그래... 강희야, 내 서울 올라가는
길루 전학 수속해볼께.
강희 (얼른 가로막으며) 아니야, 언니 고등학굔 여기서 마칠래...
어머니가 아버지 무덤을 놔두구 타향에 가서 살긴 싫다구
하신 게 엊그제 같은데...
윤옥 그럼 난 어떻게 너를 놔두고 떠나니...
강희 할 수 없잖어. 언닌 직장이 서울인걸 뭘.
윤옥 널 대학까지 보내자면 역시 그래야겠지.
강희 미안해 언니...
윤옥 바보! 그런 생각 말구 공부나 잘 해. 대학 경쟁률이
얼마나 심한지 아니?
강희 아무리 심해 봤댔자 합격자야 역시 신이 아니구
사람이겠지 뭐.
윤옥 계집애두... (대견해서) 참 나 댕기는 직장에두 대학을
다니다 만 귀여운 애가 하나 있지. 꼭 성격이 너 같은
애가...
#41 유락원 일실
계영 어서 오세요.
하고 들어선다.
대식 오늘은 계영이 안 팔렸군 그래.
계영 피- 미스터 강이 온다니까 다른 손님은 보이코트 했죠 뭐.
대식 핫하, 팁을 많이 내야겠는데. 아 우리 이거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또 온 거 아냐?
계영 오는 날이 장날이죠 뭐... 바루 옆방이에요. 오늘은
강사장님 되게 저기압.
대식 왜? 밤나비한테 딱지를 먹은 모양이군.
계영 언닌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시골 내려갔어요. 아무리
괄세를 당해도 옥이 언니만 있음 눈꼬리가 축 처지시는걸.

#42 다른 일실
강사장 젠장 술 맛 안난다. 이봐 김군, 마담보구 이 집에 있는
주전자 운전수를 있는 대로 다 이 방에 디려보내라구 해.
비서 예? 주전자 운전수라뇨?
강사장 이 새끼야, 요정에 그만큼 따라 다녔으면서 여태
그것두 몰라?
비서 즉... 말할 것 같으면 주전자를 운전하는 사람이 주전자
운전순데...
선화, 얼른 주전자를 들어 비서 보라는 듯이
강사장의 잔에 술을 따러 입가에 갖다 주며.
선화 (짓궂게) 밤나빈 아니지만 밤나비 대용이거니 하구
한 잔 받으세요. (우스워 죽겠다는 듯) 모르는 게
약이지 알면 울화병 생기는 거예요.
비서, 고개를 갸웃 갸웃하며
주전자를 들었다 놨다 하다가
별안간 큰소리로.
비서 앗 알았습니다. 주전자 운전수... 즉 기생 말씀이죠?
미향 알아 모셔야 돼!
좌중에 웃음이 터진다.
강사장 잘 논다. 저 머저리 같은 새끼 훈장 좀 줘라!
아심이 서투른 솜씨로 비서의 잔에 술을 따른다.
비서 예, 황공무지로소이다.
강사장 밤낮 황공무진 뭐 말라빠진 황공무지냐. 에잇 술맛 안 난다!
벌떡 일어서자
비서, 마시려든 잔을 놓고 후다닥 따라 일어서며.
비서 가시는 겁니까?
강사장 가만있어. 소변 좀 보구나서.
#43 먼저 일실
계영과 대식의 잔이 오고 간다.
계영 미스터 강, 정말 진심으로 내가 좋아요?
대식 상상에 맡겨두지.
계영 그런 대답이 어딨어요.
대식 정말 대답할까?
계영 응...
대식, 계영을 확 끌어당겨 입을 맞춘다.
문이 확 열리며 강사장이 들어서려다 멈칫 선다.
두 사람, 당황해서 떨어지려는 순간.
강사장, 잘못 들어온 것을 알고.
강사장 이크 이거 실례!
하고 밖으로 뛰어나가며 문을 닫는다.
#44 유락원 복도
문을 닫고 돌아서려는 순간.
강사장의 고개가 갸우뚱해지며.
강사장 ... 가만 있자 누구드라? 많이 보든 얼굴인데...

#45 일실
목을 움츠리고 숨을 죽이고 앉아 있는 계영과 대식.
정중한 노크소리가 들린다.
대식이 눈을 찔끔 감아버린다.
살며시 문이 열리며 강사장이 들여다본다.
대식 아버지. (각오하고 웃음을 띄운다.)
강사장 (들어서며) 그럼 그렇지 항! 이 녀석 너 여긴 웬일이냐?
대식 아버진 웬일이세요?
강사장 난 교제할 일이 있어 왔다.
대식 저두 좀 그럴 일이 있어서...
강사장 하, 이놈 봐라 분명히 오늘 아침에 너 나한테서
등록금 타갔겠다.
대식 아버지가 여기 갖다 뿌리는 돈의 백분의 일두
안되는 돈 아닙니까.
강사장 인마 난 오늘 처음 왔다.
대식 거짓말 마세요. 밤나비는 누구죠?
강사장 그러고 보니 너두 오늘밤이 처음이 아니구나 응?
대식 전 거짓말은 안 했어요.
히쭉 웃는 강사장, 덥석 앉으며.
강사장 하핫, 그렇지. 그 애비에 그 아들인데 너두 대갈통이
컸으니까 이런 곳에 올만도 하지 자, 대식아 한 잔 다오.
대식 네. (잔을 내어 민다.)
강사장 (쭈욱 비우고는) 자, 내 잔도.
대식 아, 아니에요. 아버지.
강사장 받어. 이런 기회두 만들기가 힘들다.
대식, 마지못해 받는다.
강사장 하하핫... 이놈 여기 오는 목적이 나변애 있지. (계영을
가리키며) 요놈이렸다. 밤나비만은 못하지만 응 짭짤해
좋아, 오늘밤 우리 친구로 맘 턱 놓구 실컷 마시자. 응?
하하하핫...
계영, 어째 행복해진다.
#46 뒷골목 (밤)
메밀묵장수 지나간다.
취한 강사장과 대식이가 어깨동무를 한 채
비틀거리며 온다.
대식 윽.
강사장 윽 임마 대식아?
대식 예, 말, 말씀하세요.
강사장 너 어머니한텐 꼭 비밀을 지켜줄 테지.
대식 조건이 있습니다.
강사장 무엇이든 들어주지. 비밀만 지킨다면!
대식 계영이하구 결혼하겠습니다.
강사장 뭐? 기생하구? 그건 안돼!
대식 그럼 불가불 어머니한테 비밀을 폭로하겠습니다.
강사장 이 자식 날 올가미에 걸어 넣는구나. 응?
대식 우린 순정으로 사랑하구 있죠.
강사장 순정으로라... 그럼 말야 잠깐.
하고 어느 집 담에서 오줌을 눈다.
대식이도 마찬가지다.
강사장 인마 어머니한텐 네 애인이 기생이라구 했단 국물도 없어.
대식 기생은 인종이 다른가요? 정권이 바뀌어서 시세가
떨어졌다 뿐이지 옛날엔 날리든 집 딸이란 말예요.
대학도 졸업반에서 포기했죠.
강사장 그럼 현재 직업만 속이면 되겠군.
대식 오케이, 오케이, 오케이.
강사장 그 대신 밤나비 건은 절대 비밀 지켜야해.
대식 어머닐 버리자는 건 아니겠죠?
강사장 허- 그 무슨 소리! 네 엄마는 내 조강지처야. 버리다니.
대식 (피식 웃으며) 그럼 협상은 끝난 겁니다.
둘은 다시 얼싸안고 비틀비틀 걸어간다.
(F.O)
#47 (F.I) 대학 교정
세월.
현대식 석조건물.
강희와 경자 몇몇 여대생이 강의를 마치고 걸어나온다.
박태호 교수가 지나가자.
강희 선생님, 오늘밤 선생님 댁에 놀러 가두 좋아요?
박교수 허헛, 또 깨엿 사다놓구 청춘의 의미를 찾자는 건가?
경자 후훗, 오늘밤은 결혼의 의미를 토론해야겠어요.
박교수 그 대신 오늘밤은 내가 좋아하는 박카스의 신을
불러야겠는데.
강희 좋아요. 저희들두 술 마실래요.
박교수 더욱 좋지! (간다.)
경자 너 혹시 박교수 좋아하는 게 아냐? 호래비라며?
강희 후훗, 미안하지만 우리 아버지를 약간 방불케 하는
모습이라 좋을 뿐이야.
경자 작년까지 공과대학에 있었드라면서?
강희 여학생 다루기가 무섭다구 하드라. 돌아가신 부인이
굉장히 히스테리였었나 봐.
경자 너 정말 애인 없니?
강희 있으면 밤낮 따분해질까?
경자 믿기지 않는 얘긴데... 넌 너의 언니가 학비를 댄다면서?
강희 응, 미안해 죽겠어. 나두 아르바이트나 할까봐.
경자 사실은 말야 나두 그럴 맘이 굴뚝같애.
강희 어머? 너야 뭐 환경두 좋구 뭣 하러 그런 생각을 하니.
경자 ... 너만 알아둬... 나 사실은 사생아야. 우리 엄마 직업이
뭔지 아니? 네온 속에만 피는 꽃... 요정마담이야...
강희 그래...?
경자 넌 모를 거야... 어쩌다 한 번씩 얼굴을 대해두 엄마한테서
술 냄새, 사내들 냄새가 풍기는 것 같구 영 기분 안나...
강희, 무언지 골똘히 생각에 잠겨 버린다.
경자 비어홀 같은 곳엔 말야. 돈벌인 고만이래... 홀에서 주는 건
백원이지만 손님들 팁이 잘하면 한달에 육천원 가까이
된데나봐.
강희, 끄덕이면서도 딴 생각을 하고 있다.
#48 E L I 문 앞
양장의 윤옥 손에 데카스트 북을 돌돌 말아 쥐고 문을 나오며
같이 나오던 청강생들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다.
#49 비어홀 안
개업 준비에 바쁜 종업원들.
계영과 대식, 벽의 디자인에 바쁘고
윤옥이가 들어서며.
윤옥 어머 굉장하구나.
감탄하자 계영, 반색하며.
계영 언니 어쩐 일이우? (다가온다.)
대식 어서 오십시오.
윤옥 안녕하세요? 비어홀을 개업한다기에 한 번 들렀어.
계영 무얼 하나 할려구 오랫동안 벼루다 결국 이걸 생각했다우.
대식 결혼 일주일 기념일과 더불어 개업할 생각입니다.
윤옥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부부야. 부러워!
계영 언닌 뭐 불행하우. 그분한테서는 여전히 편지 오지?
윤옥 응, 일주일에 한번씩.
대식 머지않아 돌아오시겠군요. 훌륭한 엔지니어로서 그땐?
(웃는다.)
윤옥, 행복해진다.
#50 마포 아파트 정원
강희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생각에 잠겨 걸어 들어온다.
강희(E) 내가 왜 진작 그걸 몰랐을까... 틀림없이 언닌 술집에
나가구 있는걸 꺼야...
#51 윤옥의 방
새로 이사한 아파트 방.
윤옥, 부엌에서 끓는 냄비를 내려놓고 있다.
강희, 들어선다.
강희 언니, 아직 안 나갔우?
윤옥 (부엌에서 손을 씻으며 나온다.) 응, 네 저녁이나 지여
놔주고 나갈려구.
강희 아이 또... 취사반장은 내가 한대는데.
윤옥 (웃으며) 앓으니 죽지. 밤낮 돌만 씹으면 맹장수술 하게
될까봐 어디 너한테 매끼겠든.
강희 밥 다 됐으면 저녁 같이 먹구 나가 언니.
윤옥 아냐, 갔다 와서 먹을래.
윤옥, 양장에 화장기도 없이 코트를 걸치고 나가며.
윤옥 나 그럼 다녀 올께.
강희 응.
갸우뚱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본다.
#52 포도
오고 가는 사람들.
윤옥, 지나가는 택시를 기다린다.
저만치 숨어서 보고 섰는 강희.
이윽고 윤옥, 택시를 잡아타자
다른 택시를 잡는 강희.
강희 저 차 뒤를 따라 가세요.
하고 오른다.
윤옥이가 탄 택시를 따르는 강희가 탄 택시.
#53 유락원 앞
와서 멎는 택시에서 윤옥이가 내려 안으로 들어간다.
저만치 뒤이어 멎는 택시에서 강희가 내다본다.
그 눈에 비친 고급요정 「유락원」이란 간판.
택시에서 내다보는 강희의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54 유락원 뒷방
미향이 소주를 병째로 들여 마시고 있다.
어지간히 취해 있다.
미향 (울며) 그놈의 자식 날 버리구 가면 제가 어디까지
갈꺼야... 어느 년이 나만치 절 사랑할 년이 있다구.
국향 (여전히 연필을 핥아가며 수첩에 적고 있다.) 그러게 내가
뭐래든 진작 그따위 애숭이 녀석한테서 손을 떼라구
그랬지.
미향 듣기 싫어! 내 고놈의 연놈을 찾기만 해봐라.
당장에 끝장을 보구 말 테니.
윤옥이 들어선다.
윤옥 어머 웬일이유 초저녁부터...
미향 흥! 너두 놈팽이 믿지 마라... 한 이불 속에 자면서두 딴 맘
먹는 게 사내들인데 이년동안이나 타국에 나자빠진 놈팽일
어떻게 믿니. 다 글렀어. 글러. 세상에 믿을 놈팽인 한 놈도
없단 말야.
윤옥의 눈매가 살짝 치켜 올라간다.
아심 (조그만 소리로) 옥이, 참아둬. 미향인 몹시 취했어.
윤옥, 그 말에 하는 수 없이 끄덕이며
잠자코 캐비닛 앞으로 가 코트를 벗어 걸고
한복을 끌어내린다.
초심 (문을 열고 들어서며) 윤옥이 나완? 엣다! 서독서
편지 왔드라.
확 밝아지는 윤옥의 얼굴.
얼른 달려가 편지를 받아들고 밖으로 나간다.
한구석에 숨을 죽인 듯이 앉아 있던 뉴- 페이스 비취(20)가
방긋이 웃으며 아심을 바라본다.
아심도 무언중에 미소로 끄덕인다.
초심 아니 미향이 넌 왜 대낮부터 울구 짜구 이 야단이가.
걷어 치우라! 계집년이 영업 장소에서 문두 열기 전에
이 야단이니 재수가 있을께 뭐가.
초심, 화가 나서 홱 문을 열어붙이고 나간다.
국향 그것 봐라. 요새 가뜩이나 공무원들 요정출입 금지령에
언니 신경이 돋을 대루 돋았는데...
미향 흥! 공무원 요정출입 금지령은 내가 내렸나. 날보구
신경질이게.
아심 미향이 이제 그만 걷어치우고 화장이나 해요.

#55 유락원 정자
윤옥은 편지를 펼쳐든 채
먼 하늘을 바라보며 행복에 젖어있다.
윤옥(E) 여보... 인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군요... 당신 품에
안길 날이... 그날이... 그날이 아아!
#56 호젓한 거리
또박 또박 발걸음을 새기며 외롭게 걸어가는 강희.
강희(E) 화류계 여자... 기생... 뭇 남자들의 조롱을 받아가며
벌어들인 그 돈으로 내가 공부를 하다니... 그렇게밖에
언닌 살 길이 없었을까. 어머니가 아셨드람... 결국 모르구
돌아가시길 다행이었어... 가엾은 어머니!
강희의 눈에서 두 줄기의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린다.
#57 유락원 일실
아코디언이 블루스를 흘린다.
학생 티를 벗지 못한 맑은 눈의 청년 도수(24)가 치고 있다.
손님A와 살포시 볼을 맞대고 춤을 추고 있는 윤옥.
손님B의 품에 안긴 채 울듯이 도수를 바라보고 있는 비취.
손님C가 권하는 술잔을 받아 마시고 잔을 돌리는 아심.
이제는 제법 기생 티가 몸에 배인 듯
도수의 눈동자가 비취에 간다.
비취는 손님B의 품을 빠져 나오려고 애쓰며
긴 눈썹을 덮는다.
손님B 너 몇 살이냐 열 여덟?
비취 ... 스무살이에요.
손님B 고거 참 묘하게 생겼다. 쪼고만 게.
손님C 핫하하... 난짝 집어 초고추장 찍어 먹으면 알맞겠나?
저 덜 떨어진 친군 비린내 나게 고런 거 보면 사죽을,
사죽을 못쓰지.
손님B 신사는 새것을 좋아한다! (다시 비취를 끌어당기며)
너 요년 암만 새침 띠여봤대자 기생은 기생이야.
한달이 못 가서 제 손으로 사내 품을 헤치고 들께 뭘 그래!
도수의 슬픈 눈동자가 비취에게 간다.
비취, 울듯이 입술을 깨물며.
비취 잠, 잠깐만 놔주세요...
손님B 어딜 가는 거야?
비취 화장실에... 잠깐 갔다 오겠어요.
손님B 가만있어!
도수의 아코디언이 끝난다.
윤옥, 손님A의 팔에서 손을 내리며 그 손을 벌린다.
윤옥 저 학생 용돈 좀 주세요.
손님A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 동안
비취는 억지로 손님B의 팔을 벗어나
도수의 눈을 피해 달려나간다.
애처로이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아심의 팔을 왈칵 끌어안으며.
손님C 계집은 이쯤 돼야 진짜 오입쟁이 구미를 돋구는 거다.
어때 밤나비 내 말이 틀려?
윤옥 지당한 말씀이죠. (웃으며) 한 번 나꿔보세요.
아심 아이 옥인! (곱게 흘긴다.)
#58 유락원 정원
어두컴컴한 나무 그늘 밑 비취가 기대선 채
하늘을 바라보며 울고 있다.
아코디언 메고 걸어 나오는 도수.
인기척에 문득 그쪽을 보고 발걸음을 멈춘다.
도수의 슬픈 눈동자,
무엇인가 말을 건네려다 고개를 돌린다.
묵묵히 사라지는 도수의 뒷모습.
비취의 젖은 눈이 아련히 그 뒤를 쫓는다.
#59 윤옥의 방
키 소리가 나며
윤옥이 취한 티를 보이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들어선다.
책상 앞에 앉은 채 돌아보지 않는 강희.
윤옥 강희야.
강희 ......
윤옥 (의아해서) 강희야, 너 어디 아프니?
강희 ......
윤옥 (어깨에 손을 얹으며) 왜 그래?
강희 싫어! 손대지 말아요!
윤옥 너...?
강희 (소리친다.) 기생!!
확 굳어지는 윤옥의 얼굴.
강희 내가 언닐 기생으로 팔아서 공부 하겠댔어?
어머니 살아계실 때부터 죽 우릴 속여온 거죠?
윤옥 강희야!
강희 난 그런 돈으로 공부하고 싶진 않아요! 차라리 어머니,
아버지 묻혀 계신 고향에 내려가 농사를 짓고 사는 편이
마음 편해요.
윤옥 (울며) 그래, 난 기생이야. 서울 올라와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너 알다시피 식모사리 밖에 할 일이 없었어.
식모사리... 생각만해두 지긋지긋해. 아무리 일거리가 많아두
난 그걸 고통으로 느끼진 않았어... 밤만 되면 뻗혀지는
주인 남자들의 악마 같은 손길이 무서웠을 뿐이야. 피를
나눈 동생인 너까지 경멸하는 기생... 그래두 난 그 기생이
되구서 차라리 나 자신을 지키기가 수월했단 말이다.
믿어두 좋구 안 믿어두 하는 수 없는 일이지만 네가 좀더
어른이 되면 그때는 유락원의 요정에서 밤나비라구
불리우는 기생의 역사를 알게될 거다. 강희야, 흐흐...
강희 언니!
그만 윤옥의 품에 안기며
강희 언니, 용서해 줘!
윤옥 강희야.
강희 언니, 언니의 역사가 어쨌던 날 공부 시킬려구 희생된
언니 미안해요... 미안해요... 흐흐흐흐...
윤옥 강희야!!
#60 갑돌의 집 마당 (밤)
뒷뜰에서 살금살금 나오는 갑돌.
사랑 쪽으로 기어간다.
#61 갑돌 부의 방 (밤)
곤히 잠든 갑돌 부와 그의 처.
사랑 문이 살며시 열리며 갑돌이가 숨을 죽이고 들어온다.
갑돌, 갑돌 부의 이불을 제치고 열쇠를 허리춤에서 뺀다.
돌아눕는 갑돌 부.
갑돌, 그 열쇠로 장롱을 열어 돈 다발을 꺼낸다.
그것을 보자기에 싼 갑돌, 부리나케 뛰쳐나간다.
문소리에 깜짝 놀란 갑돌 부, 벌떡 일어나며
갑돌 부 도둑이야.
소리를 친다.
벌떡 잠이 깬 갑돌 모.
갑돌 모 에그머니 도둑이야!
#62 시골길 (밤)
돈 보따리와 빽을 든 갑돌이가 죽어라고 뛰어온다.
그 뒤를 따라오는 삼순, 소리치며.
삼순 갑돌이. (운다.)
갑돌 이 기집애야. 난 서울 가서 강희 선생님을 만나
행복하게 살 거야. (소리친다.)
삼순 갑돌이, 가지 말어, 가지 말어... 난 갑돌이 없이는 못살아...
갑돌 육갑하네. 왜 쫓아오는 거야.
삼순의 뒤를 추격해오는.
갑돌 부 도, 도둑놈 잡아라 도둑놈.
허득이며 소리친다.
그 뒤를 허우적거리며 달려오는 갑돌 모.
#63 뮤직홀 안
강희와 경자가 앉아서.
강희 그래? 그 비어홀이 어디 있지?
경자 명동에 새로 생긴 아담한 홀인데 수입두 괜찮을 것 같아.
강희 소개해 줘.
생각이 깊다.
경자 정말 할 작정이야?
강희 ... 응... 사실은 말야... 너두 나한테 네 비밀 얘기했잖아...
나두 알구보니까 너하구 똑같은 환경이었어... 사생아는
아니지만... 우리 언니두 유락원이라는 요정에 나가는...
경자 뭐? 유락원! 어머 우리 엄마가 경영하는 요정야.
강희 어머!? 그래? (말문이 막힌다.)
경자 (확 밝아지며) 강희야 얘! 우린 그럼 여러 가지 의미루
떨어질 수 없는 친구구나... 잘 됐어. 우리 콤비루
거기 취직해.
강희 응...
경자 구질구질하게 술 냄새, 사내 냄새 풍겨가면서 벌어다주는
돈으로 공부해 봤댔자 별로 떳떳하지도 못하잖니...
강희 ... 아니야. 난 조금이라두 언니한테 도움이 돼서 거길
벗어나게 하구 싶어서 그래...
#64 보도
상경을 한 쫄바지에 양복을 입은 갑돌,
과자 봉지를 들고 그것을 먹으며
빌딩들을 신기하게 보며 걸어온다.
마침 지나가는 여대생을 붙들고.
갑돌 혹시 박강희라는 여학생 모르시오?
여대생 (킬킬 웃으며) 남대문 가서 물어봐요...
갑돌 헛참 서울 인심두.
하고 아스팔트를 유유히 건너간다.
이때 저편의 교통순경이 이 광경을 보고 달려오며.
순경 이봐요, 이봐.
갑돌 (돌아보며) 왜 그러쇼?
순경 이리 와요.
다시 보도로 와서.
순경 시민증 좀 봅시다.
갑돌 시민증이 뭔데? 그런 거 없수다!
순경 뭐요?
갑돌 혹시 내가 뭐 잘못한 거 있어요?
순경 왜 함부로 횡단도로도 아닌 델 건너다니느냐 말이요.
갑돌 뭐요? 다시 말해 보시요.
순경 이리 와요.
하고 갑돌을 끌고 간다.
#65 파출소 안
교통순경 앞에 선 갑돌.
순경 벌금 백오십원 내시요.
갑돌 그건 왜 내라고 해요. 서울은 눈 감으면 코 비여간다드니
순경 아저씨까지 이럴 수 있어유?
순경 하, 이 사람 당신 군대 갔소?
갑돌 군번 보여드려요?
순경 하 그럼 오늘밤 즉결 재판에 회수하겠소.
갑돌 다시 한 번 말씀해 봐요.
갑돌, 시종 뭐가 뭔지 모른다.
순경 (혼잣말) 이건 진짜 되민증이군!
#66 어느 대학 정원
쏟아져 나오는 남녀대생들.
그 가운데 섞여 도수도 나온다.
그들을 하나 하나 지켜보며 섰는 갑돌,
군고구마를 먹는다.
#67 보도
다시 걸어오는 갑돌, 너무나 초라하다.
맞은편으로 강희가 걸어온다.
갑돌, 마침 옆 노점으로 와서.
갑돌 낫가치 담배 하나 주시요.
하고 오원을 준다.
옆으로 강희가 지나간다.
갑돌, 담배를 물고 돌아선다.
#68 유락원 내실
편지를 읽고 있는 윤옥의 얼굴.
갈수록 희열에 넘친다.
초심 (바로 보며) 돌아온다니?
윤옥 네... 한국에서 제일 큰 한성 방직에서 그 일을
계약했다잖아요.
초심 저런... 쨍쨍 울리는 기술자 대우를 받겠구나.
윤옥 (웃음이 번지며) 장춘동에 우리가 결혼하면 들어갈
아담한 사택까지 마련해 줬대요.
초심 지성이면 감천이라구 네 정성이 결실을 본거지... 그나저나
네 서방님 돌아오면 네가 여길 고만 둘 테니 우리 어카간...
윤옥 (웃으며) 틈 봐서 살짝살짝 나올까요?
초심 (웃으며) 미친년! 어엿한 사모님이 이런 델 나와?
이담에 길가에서 만났을 때 사람 괄세나 말아라.
윤옥 언니두...

#69 거리
비취가 시름없이 걸어온다.
문득 한곳에 눈을 준 비취,
부끄러움과 반가움에 방황이 스친다.
맞은 편에서 웃으며 도수가 걸어오고 있다.
도수 이런 데서 만나니까 인사하기가 쉽군요.
비취 학교 갔다 오시는 길이세요?
도수 네... 바쁘세요?
비취 아뇨...
도수 그럼 좀 같이 걸어두 괜찮겠죠.
비취 가냘프게 끄덕인다.
#70 명동 X X 바 앞
보이가 물을 뿌리고 앞을 소제하고 있다.
바- 마담이 된 선화가 꽃을 사들고 다가온다.
보이 아, 마담 나오세요.
선화 세금쟁이 왔다 갔어?
보이 밤에 또 들리겠다구 하든데요.
선화 (미운 살이 꽂힌 듯) 맥주 한 타스만 엥겨 버려라... 앗?
(반색이 되며) 어머 강사장님!
강사장이 한성방직의 모 사장과 걸어오고 있다.
강사장 아 여긴가? 선화가 경영한다는 빠-가...
선화 어쩜 너무하시지 뭐예요. 옛날 정의도 없이 한 번도
안 찾아주시니.
강사장 하하... 미국 시찰 갔다 돌아와서 유락원 밤나비두
아직 못 찾아봤다.
선화 어머나 그래요? 강사장님 잠깐 들어갔다 가세요.
양주 진짜 감춰온 거 따서 대접할께.
강사장 야야. 이거 대낮부터 사람 유혹하지 마라.
선화 아이 잠깐요. 밤나비에 관한 정보제공 할께요.
더두 말구 한 잔씩만 괜찮으시죠?
모 사장에게 농후한 추파를 던진다.
모 사장 헛허... 여자가 애원을 할 때 신사 체면에 안 들어주면
촌놈 되지 않겠소 강사장.
선화 어머 이 분 통하셔. 가요, 어서 들어가세요.
문을 열고 안내한다.
#71 장충단 길
비취와 도수가 걷고 있다.
도수 피아노 한 대두 없는 가난한 작곡가 학생이니까
아코디온 나가시를 하구 다니는 거죠...
비취 제 꼴이 참 추하게 보이시죠? 다른 사람한테 보다
민선생님 뵙기가 왜 그런지 제일 민망하구 부끄러워요.
도수 추하긴... 허지만 비취씨가 남자들 품에서 벗어나려구
참새처럼 바들바들 떨 땐 아코디온을 내동댕이치구
달아나구 싶어지죠.
비취 (눈물이 글썽) ... 전 어떻게 되든지 괜찮아요... 올해
고등학교 들어간 남동생 하나만 공부 잘해서 집안
대들보를 다시 세워준다면...
도수 ... 유혹이 심하겠죠...?
비취 ... 완력이 무서워요... 힘으로 감당하기가 어렵거든요...
가끔 소름이 끼칠 때가 있어요... 이렇게 살아가는 동안에
신경마비가 되면 요정의 대부분의 언니들처럼 그렇게 그냥
하룻밤 하룻밤을 위주로 살아가게 되지나 않을까
하구요...
#72 바- XX 안
활짝 웃어재끼는 선화의 빨간 입술.
다른 손님은 아직 없고
복스에 선화와 강사장 모 사장이
벌써 어지간히 취해 있다.
강사정 너 참 밤나비에 관한 정보란 뭐냐?
선화 듣구 싶으시죠? 호호... 거저 얘기해드릴 순 없어요.
강사장 자아 이래노니... 거저 얘기할 수 없다면 그래
얼말 내란 말야?
선화 아- 이 제가 뭐 수전논 줄 아세요.
모 사장 도대체 밤나비란 뭐야?
선화 홋호... (놀리듯) 이년 전 강사장님한테 하룻밤 몸값으로
오십만원 수표를 떼게한 유락원 기생!
모 사장 호? 그거 거물이군. 딱 하룻밤 뿐인가?
선화 홋호... 하룻밤두 짧은 하룻밤이죠. 열두시부터 네시 사이...
홋호... 강사장님 잠이 깼을 땐 이미 밤나비는 달아나구
없드라나요.
강사장 계집년들 끼린 도대체 안 하는 말이 없군! 오죽해야 돈에
팔리는 기생인가. 그래 밤나비가 어쨌다구?
선화 비- 밀!
강사장 (바싹 몸이 달았다.) 돈 줄께 얼마?
선화 돈 필요 없어요. 앞으로 일주일동안 우리 빠-에 출근하심
가르쳐드리죠. 단 저하구 강사장님 단둘이 있을 때 아님
얘기 안 해요.
#73 유락원 뒷방
윤옥을 중심으로 간단한 술상이 벌어져 있다.
국향 옥이 너 출세했구나. 사모님 꽃방석에 앉게 되구
하루아침에 상팔자가 되게 됐으니...
아심 하루아침이 뭐유, 그만큼 지성을 디렸으면 목석이라두
감동했을 텐데...
미향 암만 정성을 다려두 달아나는 놈두 있드라.
국향 헹! 네 놈팽이 하군 인종이 달라!
미향 건건사사에 왜 내일이라면 그렇게 쌍지팽일 들구 나스지?
아심 이러다 또 쌈 나겠네... 그나저나 옥이가 여기 관두면
섭섭해서 어떻거지?
윤옥 그동안 정말 여러 언니들한테 신세 많이 졌어요...
아심 눈물도 많이 흘렸지... 뭘.
국향 이제 유락원 밤나비는 훨훨 자유천지루 날라가는 거지.
우린 이게 뭐야... 희망두 기대두 없이 만날 요 모양이
요꼬라지...
미향 넌 도대체 먹지두 않구, 입지두 않구 혼잣몸이 돈을 벌어
뭘한다구 그렇게 악착같이 돈 노래 하니?
국향 기생은 기껏해야 사십이 정년이야. 것두 뭐 아심이 모냥
가야금 정도라두 특수 기능만 있다면야 별문제지만
우리 같은 거 몸뚱아리 하나루 벌어먹는 놈이 당장 관두게
되면 뭘 할래? 허다 못해 교외에 꽃이라두 가꿔서 꽃장술
해먹드라두 필요한 건 돈 아냐?
윤옥 언니, 꿈이 참 멋있네요. 그땐 우리 집에 꽃은 전부
언니네 화원에서 사드릴께요.
윤옥의 꿈은 자못 부풀어오르는 듯-
웨이터(E) 윤옥씨, 전화 받으세요.
윤옥 네... 누굴까?
의아하듯 나간다.
#74 동. 복도
놓여진 수화기.
와서 수화기를 드는.
윤옥 네 누구세요? 네? 네 밤나비예요.
#75 호텔 일실
강사장, 수화기를 든 채 화가 났다.
강사장 나야 나 강사장. 이봐! 날 뭘루 알구 병신 만들어
논거야 응? 날 뭘루 알았냐 말야!
#76 복도
윤옥 한참 안 오시드니 뭘 그렇게 화가 나셨죠?

#77 호텔 일실
강사장 잔소리 말구 사기해 먹은 돈 오십만원 내놔!
그 돈으로 넌 네 서방 유학을 보냈지!
침대에 누워서 킬킬거리고 있는 선화.
#78 복도
윤옥 (놀라움이 가시자 차가워지며) 알았어요! 한달 안에
밤나비가 아니라 박윤옥이라는 어엿한 염집 부인으로
그 부채를 갚어 드리겠어요... 네? (조소하듯) 이년이나
몰르구 지나신 걸 한달쯤 못 기다리세요?
하구 수화기를 놓는다.
돌아서는 윤옥의 입가에 분노가 스친다.
(F.O)
#79 (F.I) 공항
터미널을 미끄러져 오는 거대한 제트 여객기.
환송대의 윤옥, 기쁨도 초조에 싸인 채 사람들을 헤친다.
이윽고 타랍으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여객들.
그 틈으로 상준이가 의젓하게 내려온다.
환송대의 윤옥, 발돋움을 치며.
윤옥 여보! (만감이 교차된 혼잣말이다.)
그녀의 시야로 그를 맞이하는 회사직원들, 박교수 등.
걸어나오는 상준의 목에 여비서가 꽃다발을 걸어준다.
사진기자가 열심히 셔터를 누른다.
상준의 눈이 환송대 쪽을 향해 무엇인가 찾으려는 듯
윤옥은 눈물에 젖은 안타까운 눈초리로 하얀 장갑을 흔든다.
그 손에 쥐어진 새빨간 장미 두 송이.
#80 공항 대합실 밖
대기하고 있는 최신형 자가용차.
상준을 중심으로
박교수 회사중역 직원들이 쏟아져 나와 차에 오른다.
저만치 안타까운 모습으로 서있는 윤옥.
그녀를 발견한 상준, 차에 오르려다.
상준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하고 윤옥 앞으로 다가간다.
박교수 ?......?
누구더라 하는 얼굴로 얼굴을 갸우뚱한다.
#81 호텔 일실 (밤)
윤옥과 상준의 몸부림치는 포옹.
윤옥 보구 싶었어요. 죽도록 보구 싶었어요!
상준 나두! 윤옥이... 베를린의 밤거리를 거닐며 얼마나 윤옥일
그리워했는지 몰라!
윤옥 여보!
희열의 흐느낌이 계속된 후.
윤옥 정말... 꿈만 같아요...
상준, 웃으며 윤옥을 꼬집자.
윤옥 아얏!
상준 핫하... 꿈은 아니지?
윤옥 꿈이 아니군요... 이젠 제 곁을 떠나지 마세요.
상준 그럼! 앞으론 출장 갈 일이 있어두 우리 사모님 동반일껄...
윤옥 결혼식은 언제 해요?
상준 모래 저녁에 사장댁에서 환영파티를 열어준다니까
그때 우선 약혼 발표를 하구...
윤옥 (매달리며) 너무 행복해서 무서워요.
상준 바보!... 모두 깜짝 놀랠 정도루 이쁘게 하구 가야 돼!
윤옥 (만감이 서린 눈동자로 한숨 지며) ... 당신의 아내가 된 지
오년 만에 비로소 떳떳하게 햇빛을 보게 되는 날이군요.
상준 윤옥이!
둘은 다시 끌어안고 베드에 쓰러진다.
#82 윤옥의 방
한시가 지난 시계.
강희, 시계에서 고개를 돌려
화난 얼굴로 문쪽을 노려보다가
홱 불을 꺼버린다.
(O.L)
#83 대학교 앞
강희와 경자, 풀밭에 비스듬히 누웠다.
경자 너 왜 오늘 그렇게 우울하니?
강희 ... 암껏도 아냐...
경자 무슨 일이 있었지? 언니하구 트라블?
강희 ... 언니가 어젯밤에 안 들어왔어...
경자 하루 밤쯤 안 들어온 게 신경에 쓰이니? 우리 엄만
거이 매일 밤이다 얘.
강희 그래? 우리 언닌 여태 그런 일 없었어...
술이 곤드래가 되두...
경자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런 데 있는 여자가 그럴 수 있다는 게
종이 한 장 차이밖에 안돼는 것 같애... 나두 비어홀에
나가보니까 알겠드라. 안 그래 비어홀 정도에서도 그렇게
유혹이 심한데 요리점이야 오죽하겠니.
강희 글쎄... 난 죽어두 그 유혹엔 안 넘어갈 자신 있어...
경자 물론 어중이떠중이 아무한테나 넘어가니 뭐. 만약에 말야
단골손님 가운데서 마음에 쏠리는 인간이 생긴다구 해봐...
감정이 흐르는 인간인데 그럴 수두 있게 될 것 같잖어?
강희 넌 서울서 자란 애라 역시 나보단 좀 진보적인가 보지?
경자 얘, 저기 박교수 온다... (벌떡 일어난다.)
박교수, 그들을 발견하자 싱글싱글 웃으며 다가온다.
박교수 봄을 씸보라이즈하는 두 여신이 여기 있군!
경자 홋... 선생님 눈엔 저희가 봄의 여신으로 보이세요?
가을에 접어든 인생을 고민하구 있는 참인데...
박교수 에끼 이놈들!
하고 가려다가 다시 돌아서며.
박교수 참! 내가 내일 밤 좋은 데 데리구 가지...
강희 어디요? 고민이 풀리는 데야요?
박교수 암 풀리구 말구... 공과대학에 있을 때 데리고 있던
내 조수가 이번에 독일 유학 갔다 화학섬유 권위자로
한성방직에 취직이 돼서 돌아왔지.
경자 우리들 고민하군 먼 거리의 얘긴데요. 뭐!
박교수 파-티에 데리구 간단 말야. 그 친구 두뇌가 좋은데다가
한국에선 보기 드문 핸섬인데 어때 그래두 구미 댕기지
않나?
강희 저희들은 아르바이트가 있어요.
경자 얘, 하루 밤 쉬자 얘.
강희 글쎄... (별로 탐탁치않다.)
경자 샴페인 있어요? 선생님.
박교수 샴페인이 문젠가 핫하... 경잔 언제부터 샴페인 맛을 아나.
경자 엄마 뱃속에서부터죠, 뭐.
세 사람, 까르르 웃어버린다.
#84 한성방직 사장실
사진기자의 플래시가 팍 터진다.
모 사장, 박교수와 나란히 앉아 사진을 찍고 있는 상준.
기자, 적고 있는 수첩을 걷으며.
기자 이건 여담에 속하는 질문입니다만 이기사님의 용모나
풍채로 봐서 독일 여성들의 유혹이 많었을상 싶은데요...
연문 한 토막 공개하십쇼.
모 사장 핫하... 한둘이 아니었겠지. 내가 딸이 있었으면 꼭
사위 삼았어야 했을 텐데...
박교수 나두 불행히두 딸이 없어서...
상준 핫하... 독일 어떤 여자라두 제가 아는 한국의 한 여성을
당할만한 여자가 없더군요.
기자 그 여성이 누군지 다음 호에는 꼭 좀 인터뷰하게 해주세요.
사진기자 귀국하시는 날 공항에 나왔던 여성 아닐까? 하얀 장갑에
새빨간 장미가 인상적이었는데...
박교수 참, 이제 생각이 나는군. 이군 자네 그 여잘 어떻게 아나?
유락원 밤나비라는 기생이 아니든가?
모 사장 밤나비요?

#85 윤옥의 방
윤옥이 즐거운 듯 콧노래를 부르며 꽃꽂이를 하고 있다.
강희가 학교에서 돌아온다.
윤옥 (반색을 하며) 어젯밤 기다렸지?
강희 (쌀쌀하게) 언닌 외박을 할 정도루 타락했우?
윤옥 너 화났구나... (즐겁기만 하다.) 좀 그런 일이 있었어...
홍차 마실까?
강희 싫어! 언니나 마셔요.
윤옥 (다정하게) 강희야... 언닌 얼마 안 있어 결혼하게 됐어...
강희 (야릇한 충격과 약간의 질투를 느끼는 얼굴로 바라본다.)
윤옥 모레쯤 너하구 인사시킬 작정이었단다... 구구한 설명은
지금 안할 테야. 네가 만나보구 난 다음에 자세한
얘기해줄께.
#86 사장실
박교수 음, 그런 역사가 있었군 그래.
모 사장 이기사 쭉 얘길 듣구 보면 하나의 미담은 미담인데...
(석연치 않다.)
상준 뭐 들으신 얘기라두...?
모 사장 응... 난 밤나비란 여잘 본 적은 없지만 어떤 기회에
술좌석에서 인상적인 얘길 들은 일이 있어서...
상준 어떤 얘긴데요?
모 사장 이기사 그 여성하구 결혼할 마음이 확정적인가?
상준 네...
모 사장 그렇다면 내가 들은 얘긴 할 필요두 없네.
자네 소신대로 나가게.
상준 무슨 얘긴지 안들은 것만 못하구 도무지 께름하군요.
모 사장 모르는 게 약이란 말이 있지 않나. 안 나왔던 얘기루
해두세 그려.
상준 (애가 닳았다.) 전 그 얘길 꼭 들어야겠습니다.
앞으로 아내로서 일생을 같이해야 할 여성에
관한 일이 아닙니까, 알아두는 게 어느 모로 보나
플러스가 되리라구 생각되는데요.
박교수 자넨 아직 인생을 몰라. 자넨 신념이 요지부동이라면
굳이 삼자간에 오고갈 얘길 뭣 때문에 들을려구 하나.
상준 선생님은 제 성격을 아시잖습니까, 한 가지 물구 늘어지면
끝장을 봐야 견디는 성격...
모 사장 이거 내가 괜헌 소릴 했나보군.
박교수 모 사장, 털어 놓구 얘길 하십쇼. 판단은 이군에게
맡기십시다.
모 사장 이건... 내게두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하는 얘긴데...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아무리 춘향이처럼 절개가 곧은 척
해두 기생은 역시 기생, 제 버릇 개 못 주더란 말일세...
상준 ...... (자존심이 상한 얼굴)
모 사장 내가 들은 밤나비의 얘기가 사실이라면 결국 그걸
증명하는 건데...
상준 네? (안색이 변한다.)
모 사장 내 사업상의 친구 강이란 사장하구의 얘긴데 꼭 자세한
진상을 들어야 속이 시원하겠다면 xx 빠 마담을 찾아가면
아마 장본인을 직접 만날 기회가 있을런지 모르겠군.
#87 호텔 복도
즐거운 듯 윤옥이 걸어온다.
209호 방문이 열리며 강사장이 나오다 마주친다.
강사장 세상이 숨어살진 못하게 돼있지.
윤옥 (정색을 하며)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강사장 잔말 말구 단판을 짓잔 말이야.
윤옥 약속한 날짜까지 해드리면 될 게 아녜요.
강사장 오십만원 희사할 쓸개빠진 놈팽이가 나 말구두
또 있는 모양이군.
윤옥 (조소하듯) 오십만원이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걸구
나를 원하는 분이 있더군요... 아, 말이 났으니 한계는
분명히 해둬야겠어요. 오십만원 가운데서 십만원이 누구의
손에 넘어갔는지 물론 아시구 얘기하시는 거겠죠?
강사장 이제 와서 그따위 단수를 써봤댔자 믿을 내가 아니지.
윤옥 얘기는 분명히 선화한테서 나온 얘긴 줄 알고
하는 소리예요. 선화한테 다짐해 보시는 게 어때요.
강사장 선화? 좋아 당장 삼자대면해서 다짐해보지.
강사장, 닫았던 문을 다시 연다.
이때 계단을 꼬부라져 윤옥의 저편으로
상준이 침울한 낯으로 걸어나오다가 걸음을 멈춘다.

#88 209호실
침대에 나체로 누웠던 선화가
가슴을 가리고 일어나 앉는다.
선화 어머 윤옥이 웬일야?
#89 복도
강사장이 윤옥의 어깨를 끌어안다시피 데리고
방 안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상준의 눈에 보인다.
닫히는 209호실의 문.
상준의 눈에 분노가 불길처럼 치솟고 입가엔 경련이 인다.
209호실 앞으로 맹렬한 기세로 걸어오려다가 뚝 걸음을 멈춘다.
#90 호텔 카운터
차분하게 내려온 상준, 카운터로 가서.
상준 혹시 내가 착각을 했는지 몰라서 묻는데 209호실 손님이
강사장 아니십니까?
웨이터 네, 분명히 동진물산의 강사장님이십니다.
상준 같이 들어가신 부인하군 자주 이곳에 나타나시는
모양이든데...
웨이터 네?... (경계의 빛)
상준 아니 좀 내가 알아볼 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하고 몇 장의 지폐를 꺼내 주자.
웨이터 네이 요지간 거이 동거생활 하시다시피...
그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상준은 지하 바로 달려 내려간다.
#91 비어홀
지배인이 된 대식, 바쁘게 왔다갔다하고 있고
카운터에 앉은 계영이도 바쁘다.
윤옥이 그 앞으로 다가가며.
윤옥 계영이!
계영 어무나 어서 와요. 언니 웬일이우?
윤옥 나 유락원 고만 뒀어...
계영 그랬우? 난 것도 몰랐지. 언니 애인 돌아오신 거 아냐?
윤옥 응... 나 청이 하나 있어서 왔어.
계영 뭔데? 아 여보, (대식을 부른다.) 윤옥 언니 오셨잖우.
대식 아이구! 이거 오래간만입니다.
윤옥 안녕하셨어요? 굉장히 잘 되네요.
대식 네, 뭐 그럭저럭... 앉으세요. 오신 김에 맥주나 드시구
가시죠.
윤옥 아이 그럴 틈이 있나요?
계영 호호... 언닌 애인이 돌아오셔서 바쁘다나요.
그렇지만 예까지 왔다가 어떻게 그냥 가우.
대식 귀국하셨습니까? 이거 날 잡아서 성대하게 두 분을
초대해야겠군.
윤옥 아이 말씀만 들어두 고마워요.
계영 그래 부탁이란 게 뭔데?
윤옥 일주일 안으로 돈 쓸 일이 좀 있어서 그래.
계영 얼마나?
윤옥 삼십만... (하다가 한곳에 눈이 못 박히며) 아니 쟤가?
윤옥의 시야로
저쪽에서 맥주를 나르고 있는 강희.
계영 누구?
윤옥의 눈이 살짝 치켜 올라간다.
#92 호텔 일실
그 사이로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상준.
모 사장(E) 기생은 역시 기생이야. 아무리 춘향이처럼
절개가 곧은 척 해두 말일세.
분노에 이글이글 타는 그의 두 눈.
노크소리가 나며 윤옥이 들어선다.
윤옥 미안해요. 여보, 당신 들어오시기 전에 와 있을려구
한 것이...
가까이 오는 윤옥을 무섭게 쏘아보고 있는 상준.
윤옥 아니 왜 그런 얼굴을... 아이 미안하대두요.
그의 품에 안기려하는 윤옥의 볼 위에
다짜고짜 상준의 억센 손이 날은다.
윤옥 악! (빙그르 돈다.)
상준 이 쓰레기통보다도 못한 화류계의 기집년. 당장 내 앞에서
사라지지 못해! 나가 나가란 말야! (소리친다.)
윤옥 아니 도대체 당신은 뭘 오해하구 계신 거예요. 네?
상준 오해? 개버릇 남 못준다구 기생은 기생이지 기생 이상의
행동을 바란 내가 미친놈이다!
윤옥 ...... (어처구니없이 바라본다.)
상준 물론 나를 위해 청춘을 짓밟혔다 하자. 그래두 육체만은
깨끗할 줄 알았는데 내가 귀국한 오늘만 해도...
윤옥 오늘? 아이 당신 역시 오해를 하셨군요.
상준 나가라면 나가! 이제 와서 구구한 변명 늘어놓지
말란 말야.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잡고 있단 말야.
윤옥, 그만 흑흑 울음을 터뜨리며
소파에 얼굴을 묻는다.
상준 너를 믿었던 내가 바보였어.
불현듯 상준의 가슴에 매달리며.
윤옥 오해예요. 여보 오해예요 저의 몸만은 깨끗해요. 오해하시면
안돼요. 저의 몸은 당신 이외의 사람은 아무도 몰라요.
뭇 남자들의 가슴에 안기구 그들에게 가슴을 타기구 얼굴을
부비며 술을 판 것만은 사실이지만 저는 더러운 여자가
아녜요. 이해를 하셔야죠. 여보 네?
하염없이 울며 애타게 호소한다.
상준 (밀어제치며) 듣기 싫어! 어서 나가란 말야.
윤옥 여보, 저의 진실만은 믿어주세요. 당신이 절 오해하시면
전 어떡하죠? 내게 남은 건 뭣이 있어요. 아무 것도
없잖아요. 네?
상준 (벌떡 일어나며) 굳이 네가 진실을 믿으랜다면 믿어두 좋다.
허지만 내 마음은 이미 돌이킬 수 없단 말야. 너는 어쩔 수
없는 기생이니까 내 명예에 하나의 티를 남기기 마련야.
윤옥 여보!
하고 매달리는 윤옥을 팽개치고는
상준, 이내 밖으로 나간다.
방바닥에 쓰러진 윤옥은 통곡한다.
#93 윤옥의 방
침대 위에 석고처럼 걸터앉은 윤옥-
문소리에도 까딱 않고 굳어있다.
강희가 들어온다.
강희 어머 언니 오늘 못 들어온다드니...
윤옥 ......
강희 언니 왜 그러우?
윤옥 (쏘아보며) 가정교사가 비어홀에서 맥주 날르는 게
가정교사냐?
강희 앗...
윤옥 (자조적으로) 별 수 있니. 기생동생이니 너두 술을
따를 수밖에.
강희 언니!
강희, 그만 울음을 터뜨린다.
윤옥 이미 나는 이따위로 짓밟힌 더러운 기생이지만 그래두
너만은 훌륭한 여자를 만들어 놓겠다는 게 내 간절한
꿈이었어. 그 너마저 그런 곳에서 술을 따라야 하다니...
강희 언니, 미안해요!
와락 그의 품에 안긴다.
힘껏 강희를 끌어안으며
윤옥 울지 말어. 강희야 내겐 이제 너밖에 없어.
강희 나 때문에 고생하는 언니를 생각하니 어째 나두
벌어야할 것 같애서 그만...
윤옥 (눈물이 주루룩 흐르며) 강희야, 너만은 행복한 가정을
꾸미구 살아야 해. 내 꿈은 깨졌지만 너만이라두...
강희 언니... 결혼하게 됐다드니 불행한 일이 생겼우?
윤옥 강희야, 묻지 말아. 묻지 말어... 결국 내가 기생되기가
잘못이란다.
우는 윤옥의 가슴에 강희도 새삼 눈물이 흐른다.
#94 (F.I) 유락원 정원
손님들이 들어오고 나가며
바쁘게 왔다갔다하는 기생들과 웨이터들.
여기에 은은히 들려오는 아코디언 솔로.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95 동. 일실
낯설은 손님들을 접대하고 있는 초심과 미향.
국향, 아심 등.
옆방에서 들려오는 아코디언 솔로.
술잔을 비우며.
손님D 저 곡이 한참 유행한 때가 낭만주의 절정의 시대였지...
초심 밤나비가 무던히두 좋아하드니... (취했다.)
손님E 밤나비라니?
초심 우리 집에 그런 애가 하나 있었어요. 영원히 밝은 세계로
날아간 줄 알았드니 홍등가의 네온이 그래두 따뜻하다면서
찾아들어 왔답니다.

#96 뒷방
도수의 아코디언이 그친다.
조그마한 술상 앞에 비취와 함께 앉은 윤옥,
또 술잔을 비우며.
윤옥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사랑두 명예두 호...
송충인 솔잎 먹구 살아야 해.
비취 언니, 진정하세요. 이렇게 취하심 어떡해요.
윤옥 도수 학생.
도수 네.
윤옥 내가 한 가지 묻고 싶은데 괜찮아요?
도수 네, 물어보십시오.
윤옥 가령... 가령 말이에요. 학생한테 사랑하는 여인이 한 사람
있었다구 해요. 그 여인은 학생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청춘을 희생했다구 가정을 해요.
도수 네... 계속 해주십시오.
윤옥 그런데 그후 그 여인이 창녀라는 것을 알았다면
학생은 어떻게 그 여인을 대하죠?
도수 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다면 그녀가 창녀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여자라두 저는 그녀를 사랑할 것 같군요.
윤옥 고마워요 도수 학생!
윤옥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윤옥 비취, 들었지? 세상엔 창녀라구 알면서두 진실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남자두 있단 말이야.
비취, 눈물 어린 눈으로 도수를 바라본다.
도수도 눈물이 핑그르 돌며 다시 한 곡 조용히 연주한다.
윤옥, 눈물을 입으로 빨며 그것을 따라 부른다.
#97 모 사장 집 홀 (밤)
상준의 귀국을 환영하는 파티가 벌어졌다.
모두들 칵테일로 저마다 얘기의 꽃을 피운다.
상준, 모 사장, 그의 부인, 몇몇 사원들. 여비서.
강희, 경자의 얼굴이 보인다.
박교수, 강희와 경자의 손을 잡고 상준의 앞으로 오며.
박교수 이군, 인사를 나누지.
강희 처음 뵙겠습니다. 박강희예요.
경자 전, 오경자구요.
상준 이상준입니다.
박교수 우리 학교 화공과에 다니는 말하자면 수재들이지.
상준 아, 그렇습니까? 저두 학교에 다닐 땐 말하자면
수재 층에 들었죠 선생님.
네 사람, 웃음이 터지는데
밴드 연주가 시작되면 저마다 쌍쌍이 춤을 춘다.
상준, 강희에게 손을 내밀며.
상준 추시겠습니까?
강희 전 서툴러요.
상준 제가 리드를 하죠.
두 사람, 블루스의 스텝을 밟는다.
상준 박강희라구 하셨죠?
강희 네.
상준 성이 같군. (혼잣말)
강희 네?
상준 아, 아닙니다. 앞으로 사겨두 좋겠습니까?
강희 ...... (미소한다.)
상준 아까 처음 강희씨를 보았을 때 굉장히 청초하다구
느꼈습니다.
강희 전 선생님을 보았을 땐 너무 빈틈없는 모습을 가지셔서
쉽사리 친해질 수 없을 것 같은 거리를 느꼈어요.
상준 며칠 후 제가 저녁 식사를 초대하면 응해주시겠습니까?
박교수와 춤을 추는 경자,
힐끗 상준이 쪽을 보며.
경자 저분 애인 없어요? 선생님.
박교수 있었데. 그런데 어제 그 믿었던 애인은 몸을 파는
여인이란 것을 알았다는 거야.
경자 어머 비극이네!
#98 호텔 앞 (밤)
한 쌍의 아베크가 안으로 사라진 후-
상준의 자동차가 와서 멎는다.
윤옥, 담벽에 숨어서 차에서 내리는 상준을 보자
가까이 다가온다.
술이 엉망으로 취해 초췌해진 얼굴.
윤옥 여보- (부른다.)
상준, 돌아본다.
윤옥 어제 일은 오해예요. 정말이야요.
상준 끝까지 내 뒤를 밟으며 나의 명예를 더럽힐 작정이야?
윤옥 당신한텐 명예가 그다지 중요한지 몰라두 저의 순정이
너무도 가엾잖아요. 당신이 저를 버리면 제겐 남는 게
뭐가 있죠? (애원하듯) 절 버리지 말아줘요. 네 여보!
상준 두 번 다시 내 앞에 나타나지 말어!
상준은 상대도 하기 싫다는 듯
홱 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윤옥, 허탈한 사람처럼 한참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비칠비칠 걸음을 옮긴다.
주제가 흐르며-
#99 거리
윤옥, 걸어온다.
눈물조차 말라버린 윤옥의 눈매에
싸늘한 죽음의 유혹이 깃들었다.
#100 다른 거리
마냥 걷고 있는 윤옥.
외롭게 뒤따르는 그림자.
주제가가 흐른다.
(F.O)
#101 (F.I) 남산 길
강희와 상준이가 걸어온다.
강희 선생님, 언젠가 어떤 여자하구 여길 거닐어 본 적이
있으세요?
상준 ... 있었죠.
강희 사랑하셨어요?
상준 네... 하지만 제가 바보였죠.
강희 왜요, 배신 당하셨나요?
상준 (그 말에 대답 없이) 내가 왜 강희씨를 첫눈에 좋아했는지
아십니까?
강희 ?
상준 어쩐지 그녀의 순결했던 옛날의 모습이 강희씨의 얼굴에
환상처럼 느껴진 탓입니다.
강희 싫어요! 전 그런 대용품 노릇하기는...
상준 핫하... 개성이 굉장히 강하시군. 현대 여성의 매력은
미모보다 개성에 있다구 보는데 강희씨는 양쪽이
겸해 있으니 만점이군요.
강희 어머 정말요?
상준 정말이구 말구요.
강희 아- 행복해라!
상준 핫하... 어린애 같군!
강희 행복하니까 배가 고프네요. 인제 저녁 사주세요.
마냥 귀엽게 구는 강희에게 쏠리는 상준의 눈매에도
행복이 깃들었다.

#102 극장 앞
울어서 퉁퉁 부운 눈으로 걸어나오는 윤옥과 초심,
차를 기다린다.
초심 얘, 이 영화 주인공에 비하면 네 경우 같은 건 약과 아니가.
애초에 동생 공부시키는 게 목적으로 고향을 떠났으면 그걸
목적으로 다시 새 출발하면 되지 않간.
윤옥 ...... (한숨뿐)
초심 세상에 발길에 채이는 게 남잔데 그까짓 새끼
잊어버리라우.
윤옥 잊다니요... 어떻게 잊어요.
초심 말 마라. 나두 경자 아버지한테 버림받구 몇 번 자살할려구
했길래... 그래두 세월이 흐르니까 잊어지더라.
윤옥 세월이... 흐르면... (한숨) 잊어질까요?
초심 그럼! 잊어지구 말구 아 스톱! 타라우 계영이한테
가겠다며? 내 데려다줄께!
#103 그릴 안
들어오는 상준과 강희.
웨이터가 된 갑돌이, 한 테이블에 물컵을 갖다 놓며.
갑돌 어서 오십시오. 저리 앉으십시오. 네.
하고 소리친다.
갑돌과 강희, 서로 못 알아본다.
갑돌 (다른 테이블 손님에게) 뭘루 하실까요? 뭐든지 있습니다.
슾라이스를 비롯해서 돈까스, 카레라이스, 하이라이스 런취,
비후스틱 샌드위치, 오트밀, 토스트, 맥주, 그리구 짜장면
아, 아니 짜장면은 없습니다. 헷헷...
상준 강희씨 가족은 어떻게 됩니까?
강희 언니 하나 뿐예요.
상준 결혼하셨겠군요.
강희 아녜요. 아직 큰 회사에 다니구 있죠. 굉장히 큰 회사에...
상준 굉장히 큰 회사엘? 하핫...
두 사람, 크게 웃는다.
갑돌, 웃음소리에 문득 그쪽을 주시한다.
얼굴을 살짝 돌리는 강희.
갑돌, 깜짝 놀라 달려오며.
갑돌 앗 강희, 강희 선생님!
강희 어머 갑돌이!
갑돌 아이구 인제야 만났군요.
강희 정말 이게 어떻게 된 일야요. 여기서 만나다니.
갑돌 그러게 말입니다. 흐흐...
설움에 복받쳐 흐느껴 운다.
상준 ?
강희 갑돌이 챙피하게 울면 어떡해요.
갑돌 내가 울지 않게 됐나. 한 번 얘기를 들어보세요, 네?
하고 또 울음을 터뜨린다.
#104 비어홀 안
이른 저녁이라 손님은 별로 없다.
윤옥과 초심이 들어선다.
대식 (놀라며) 아 이거 마담이 웬일이십니까?
윤옥 안녕하셨어요?
계영 (달려오며) 아니 초심 언니 아니우?
초심 한 번 와본다구 벼르던 참에 옥이가 올 일이 있다기에
따라왔단다.
계영 암튼 잘 오셨어요. 참 옥이 언니 그거 말유. 그믐께나
돼야 만들어질 것 같아...
이때 쨍그렁 병 깨지는 소리.
모두 그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손님하고 부딪친 경자가 아찔해서 서 있다.
초심 앗! 쟤가 경자 아냐?
계영 아세요?
초심 알다니... 아니 저년이 환장을 했나. (달려가며) 얘 경자야!
경자 (병이 깨졌을 때 보다 더욱 놀라며) 엄마!?
#105 밤거리
네온의 물결들.
자동차들의 헤드라이트를 받으며
강희와 상준, 갑돌이가 걸어온다.
강희 갑돌이!
갑돌 예.
강희 나 때문에 그 동안 갑돌이가 서울서 굉장히 고생을 했군요.
갑돌 예!
강희 허지만 아무래도 갑돌인 고향으로 내려가야 해요.
갑돌 네? 이렇게 만나기를 얼마나 고대했는데...
강희 난요... 갑돌이 보다시피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있잖아요.
하고 살짝 상준에게 눈짓을 하며 그의 팔을 낀다.
갑돌 ......
강희 살구꽃 피는 고향이 그립잖아요? 그리구 누구보다도
갑돌이를 사랑하는 삼순이가 애타게 기다리구 있을텐데요...
갑돌 예.
강희 갑돌이는 정말 좋은 분야요.
갑돌 (눈물을 주먹으로 쓱 닦고) 고향으로 내려가겠습니다.
그리구 삼순이와 결혼하겠어요. 이분이 나보단
잘 생겼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강희 고마워요, 갑돌이.
웃음을 삼키고 살짝 상준을 올려다본다.
상준, 쓴웃음으로 윙크한다.
#106 유락원의 일실
오늘도 손님들은 가득 모였고.
#107 자동차 안
윤옥과 초심, 경자가 흔들려간다.
초심 기집애가 미쳐두 분수가 있지. 그래 에미가 밥을 굶기든
학비를 안대주든? 어쩌자구 학교 다니는 기집애가 그런 델
나가, 나가기를...
경자 엄마가 버는 불결한 돈 쓰구 싶지 않아서예요.
초심 뭐라구? (와락 경자의 팔을 움켜쥔다.)
윤옥 언니, 참으세요. 이제 와서 얘기지만 제 동생두 저 몰래
글쎄 거길 나가구 있었잖아요?
경자 어머? 그럼 강희 아녜요?
윤옥 그래... 강희하구 친했어?
경자 친하다니요, 같은 반인데...
#108 거리
호젓한 거리.
갑돌은 없고
상준과 강희, 다정하게 걸어온다.
상준 아까 분명히 강희씬 대용품은 싫다구 했죠.
강희 네...
상준 나두 마찬가집니다. 대용품은 싫죠.
강희 네? 앗 참 미안해요. 아깐 저도 모르게 그렇게 돼버렸어요.
상준 백분의 일의 진실도 없이?
강희 백분의 구십구는 환각으로 정말 애인인 것 같았어요.
상준 강희!
멈춰 서며 조용히 강희를 끌어안는다.
상준 환각으로 말구 날 사랑해줄 수 있어?
강희, 불안과 기대에 찬 눈으로 끄덕인다.
조용히 다가오는 상준의 입술.
#109 윤옥의 방
잊을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윤옥의 눈길.
윤옥, 창 밖을 넋없이 바라본다.
도어가 열리며 강희가 가볍게 들어온다.
강희 언닌 벌써 들어왔네.
윤옥 늦었구나.
강희 어쩌다 훗.
윤옥 시장하지? 밥 먹을래?
강희 먹었지만 또 먹을래.
윤옥 (웃으며) 돼지같이.
하고 부엌으로 들어간다.
강희, 옷을 벗으며
강희 언니는 먹었수?
윤옥(E) 응, 혼자 먹어.
강희 싫여 같이 먹어야지 뭐.
윤옥(E) 기집애두... 참 오늘 경잘 만나봤다.
하며 나온다.
강희 어머 어떻게?
윤옥 세상이 좁긴 하더라. 마담 언니 딸이라잖니.
강희 참 나두 들었으면서 언니한테 물어본다는 게
흐지부지 됐네.
윤옥 비어홀에서 모녀가 딱 마주쳤지 뭐니.
강희 나 고만둘 때 같이 고만 두자니까 사회 공부하기 위해서
당분간만 더 다니겠다잖우. 고집퉁이가...
슈미즈 바람에 거울 앞에 선 강희.
강희 언니 나 이만함 인제 어른이지?
윤옥 왜 연애하고 싶니?
강희 후훗... 지금 아이엔지야. 맹렬하게.
윤옥 정말? 언제부터...?
강희 오늘부터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두시간 전부터...
윤옥 기집애두 그런 소리 마. 연앨 그렇게 간단하게
하는 법이 어딨니?
강희 어렵게 생각한다구 꼭 정확할 수 있수? 사람에겐
영감이라는 게 있으니까 순간에 캐치할 수도 있잖아.
윤옥 (무언지 대견한 마음이 든다.) 대학생이니?
강희 아-니 비린내 나게 누가 대학생하고 연앨 하우.
윤옥 그럼 뭘 하는 남잔데?
강희 언니한테 한 번 살짝 선 뵌 다음에 얘기할께.
윤옥 언제?
강희 내일 할까? 모래 할까... 언니 맘에 꼭 들 거야.
윤옥 자신이 만만하구나.
강희 응... 허지만 우연히 만난 걸루 해야돼.
내가 굉장히 설치는 것 같구 부끄러우니까.
윤옥 그래 너 좋을 대로...
하고 일어나 부엌으로 들어간다.
강희, 다시 거울 앞에 가 서며 살며시 눈을 감고
행복한 듯 볼을 어루만진다.
(F.O)
#110 (F.I) 달리는 자동차 안
강희와 상준이가 탔다.
강희 오늘밤 열시 차로 떠나시는 거예요.
상준 음. 같이 갈까?
강희 어머 어떻게 같이 가요?
상준 왜? 겁나?
강희 솔직히 말해서... (미소한다.)
상준 하핫, 그 문제는 염려하지마. 박교수도 같이 내려가기로
했으니까.
강희 정말이세요?
상준 왜 내가 거짓말을 해? 강희두 데리구 갈까요 했더니
더욱 기뻐하시더군.
강희 그럼 같이 가두 좋아요. 공장 견학해서 손해 볼일
없으니까...
상준 깍쟁이군!
살짝 손을 잡는다.
#111 그릴 안
두 사람, 들어와서 자리를 잡고 앉는다.
강희, 홀을 둘러보나 윤옥은 보이지를 않는다.
웨이터 뭘 드시겠습니까?
강희 비후스틱요.
상준 나두.
두 사람, 마주보며 웃는다.
이때 윤옥이가 들어선다.
강희와 윤옥의 시선이 마주치자
강희, 눈짓으로 이분이라는 것을 눈짓으로 알린다.
윤옥, 빙긋 웃으며 상준이가 잘 안 보이는 식탁에 앉는다.
상준 강희, 고향 제자는 실연의 고배를 마시고 떠났나보군.
윤옥, 가만히 고개를 돌려 상준의 얼굴을 보다
윤옥 아니? (소스라쳐 놀란다.)
한 대 얻어맞은 사람처럼 뚫어지게 보다
그만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간다.
웨이터 ? (본다.)
윤옥이가 뛰쳐나간 것도 모르고
행복에 젖어 상준을 바라보고 있는 강희.
#112 윤옥의 방
창으로 어둠이 내린다.
테이블 앞의 윤옥, 울다 울다 지친 얼굴을 들어
담배를 피워 문다.
윤옥(N) 세상에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세상에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윤옥의 얼굴 위로 담배연기가 피어오른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른다.
도어가 열리며 가볍게 들어서는 강희, 밝은 표정으로.
강희 언닌... 인사시킬라구 보니까 자리에 없지 뭐야.
난 또 한참 찾았잖우.
윤옥 ...... (허공을 본다.)
강희 언니 봤지? 그만함 최고지?
윤옥 최고였다. (허탈해 있다.)
강희 서독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두 않은 화학섬유
엔지니어예요.
윤옥 (고개를 끄덕인다.)
강희 (당황하여) 아니 언니 왜 그러우?
윤옥 (나직이) 너 정말 그 남잘 사랑하니?
강희 응, 죽도록 사랑하구 싶어.
윤옥 아직 깨끗하니?
강희 물론이지. 뭐
윤옥 ... 끊어라 (차갑게 떨리는 목소리다.)
강희 (놀라며) 왜요?
윤옥 이유는 묻지 말어. 그 남잔 안돼!
강희 안된다면 안될 조건이나 이유가 있을께 아냐.
윤옥 이유도 조건도 없다.
강희 언니두 너무해요. 날 그 사람한테 뺏기기 싫은 거죠?
죽는 한이 있더래도 그 사람하군 헤어질 수 없어요.
그만큼 우린 사랑하구 있단 말예요.
윤옥 정말 못 헤어지겠니?
강희 (도도하게) 못 헤어져요.
윤옥 정말이지?
강희 언니를 버리는 한이 있드래두...
윤옥 뭐라구?
그만 강희의 뺨을 후려친다.
쓰러질 듯 하다가 꽂꽂이 도사리며.
강희 날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겠다든 언니가 한낱 째째한
질투심 때문에 내 앞길을 막아요?
윤옥 강희야, 제발 부탁이다. 넌 그 남자하구 헤어져야 해.
응, 강희야 제발...
강희 왜 막을려구 하죠? 정말 막을 수 없는 건 우리들의
진실이란 말예요!
윤옥 이 세상에 진실한 사랑이 있는 줄 아니?
강희 왜 없어요? 그 사람은 술집에서 여자를 하룻밤 노리개로
데리고 자는 족속하군 다르단 말예요.
윤옥 강희야 안돼! (붙잡는다.)
강희 언닌 정말 이해 못하겠어 놔요! 아무리 나 때문에
기생이 된 언니라두 이 문제만은 죽어두 양보 못해요!
격하게 쏘아붙이고 보스톤 백에 짐을 챙긴다.
#113 서울역 플랫홈
열시를 가리키는 시계.
서서히 움직이는 열차.
창구에 기대앉아 무언지 석연치 않은 불안감에 싸여
밖을 내다보고 있는 강희.
그 옆에 박교수 맞은편 쪽 자리에서
상준이 웃으며 얼굴을 가까이 한다.
#114 호텔 일실 (밤)
가만히 도어가 열리며
파리하게 지친 윤옥이가 들어온다.
시트에 앉았던 강사장, 문득 고개를 든다.
윤옥 (또박 또박 외우듯이) 오늘은 박윤옥이가 아니라
창녀 밤나비로 강사장님을 뵈러 왔어요. 이제 제겐
그 돈을 갚아 드릴만한 능력두 기력두 없어요.
윤옥, 하나 하나 입었던 옷을 벗어 내린다.
강사장 ......
강사장, 예감이 느껴지는 불안과 공포에 싸인 눈으로
그 거동을 주시한다
윤옥, 슈미즈 바람이 되자
비틀비틀 강사장 곁으로 다가오며.
윤옥 저를 마음대로 하세요.
눈을 감고 강사장 품에 쓰러진다.
강사장, 극도의 불안으로 벌떡 일어선다.
강사장 바, 밤나비! 집으로 돌아가요! 돈 안 갚어두 괜찮아.
내가 괜히 그런 거야. 그럼 난 바뻐서 먼저 갈 테니까.
앞으로도 어려운 일 있으면 날 찾아오라구...
허둥지둥 밖으로 나가 버린다.
문 닫히는 소리에 가만히 고개를 드는 윤옥의 모습은
처절하기 짝이 없다.
(F.O)
#115 서울역 광장
쏟아져 나오는 여객들.
그들 틈에 상준과 강희와 박교수가 걸어나온다.
#116 윤옥의 방
문을 열고 들어서는 강희.
깨끗하게 정돈된 방 안에는 하얀 꽃이 가득 꽂혀 있다.
침대 위에 잠든 너무도 아름다운 윤옥의 모습.
강희 (미안한 듯) 언니! 나 돌아왔어!
가슴 위에 얹은 윤옥의 손에 시들은 흰 장미 한 송이.
그 밑에 유서 한통.
강희 언니!
윤옥의 어깨를 흔들려던 강희의 손이 굳어지며.
강희 언니!!
경악과 동시에 와락 윤옥의 품에 쓰러진다.
강희 언니! 이게 무슨 일이에요. 뮛 때문에 언니가 죽었어야
한단 말예요. 언니! 흐흐... 얘기해 봐요. 날 두고 혼자만
가버리다니 언니두... 언니두 너무해요. 언니!!
윤옥의 얼굴 위에 흐르는 편지의 내용.
윤옥(E) 사랑하는 강희야... 이토록 모질고 쓰라린 나의 청춘의
운명을 불태운 사람이 바로 너의 지금의 애인
이상준씨였단다. 한낱 조그마한 오해로 나를 헌신짝처럼
버린 그이... 그이 때문에 기생이 되었고 기생이기 때문에
다시 그이에게 버림을 받은 나... 강희야 네가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이란 이제 짓밟힐 대로 짓밟히구 인간의 쓰레기가
된 이 언니가 정말 밤나비가 되어 훨훨 저 하늘로 날아가는
것밖엔 없구나. 사랑하는 강희야 너만은 나의 불행을
되풀이하지 말아 줘 행복하게...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117 성당 종탑
윤옥의 죽음을 애도하듯 종이 울린다.
#118 아파트 현관
영구차에 오르는 윤옥의 관.
울부짖으며 매달리는 애절한 강희의 모습.
초심, 미향, 국향, 아심, 비취 그 밖의 기생들이
모두 소복으로 서있고
대식, 도수, 계영, 경자의 모습도 보인다.
저만치 떨어져
박교수와 고개를 떨구고 서있는 상준의 모습.
기생들의 울음바다.
사람들이 구름 같이 모였다.
도수, 자꾸만 하늘을 보며 눈물을 참는다.
구경꾼의 한 여인, 도수를 붙잡고.
여인 거 누가 죽었길래 이렇게 하얀 옷 입은 여자가 많아요?
도수 (혼잣말처럼) 날아갔습니다. 밤나비가 훨훨 저 하늘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여인 ......?
도수 ... 천사처럼 아름다운 여인이었죠.
도수가 마지막으로 영구차에 오른다.
사람을 헤치고 떠나는 영구차.
#119 망우리 고갯길
능선을 타고 드문드문 무덤이 보이는 망우리.
고갯길.
강희가 혼자서 외롭게 걸어 내려온다.
앞을 향한 강희의 눈이 무엇을 발견했는지
잠깐 갈팡질팡하다 이내 차가워지며 걸음을 재촉한다.
강희의 빠른 걸음.
저편에서 다가온 남자의 발길이 그 자리에 우뚝 선다.
돌아보지 않고 걸어가는 강희의 뒷모습.
서있던 남자의 발길이 한참만에 돌아서서
한발두발 옮겨진다.

#120 윤옥의 새 무덤 앞
강희가 갖다 논 꽃다발 옆에 놓여지는 다른 꽃다발.
상준이 서 있다.
#121 하늘
높고 푸른 하늘.
한 마리의 새가 한가하게 날고 있다.
#122 능선
아득한 능선.
무덤 앞에 그냥 서있는 상준의 까마득한 뒷모습에
고독의 그림자가 길에 뻗혀 있다.
거기 END MARK 떠오른다.
(F.O)
(끝)
 

처음 오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