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K
02........댁의 부인은 어떠십니까
03........동양영화흥업주식회사
04........이성구
05........정진건
06........신봉승, 홍은원
07........
08........오리지널
09........스탭
제작 : 이종벽
기획 : 이병익
원작 : 정진건
각본 : 신봉승, 홍은원
감독 : 이성구
촬영 : 민정식
조명 : 차정남
미술 : 박석인
녹음 : 한양녹음실
편집 : 유재원
현상 : 한양현상소
제작부장 : 정익영
캐스트
강정숙(36, 가정부인)
장재석(30, 정숙의 연인, 비서)
조동식(38, 정숙의 남편, 회사상무)
김소희(35, 박사장의 첩, 정숙의 동창)
최민아(36, 과부, 정숙의 동창)
안명옥(24, 재석의 애인)
현자(19, 정숙의 집 식모)
조미애(13, 정숙의 딸)
길성기(재석의 친구)
박사장(소희의 남편, 한성무역)
김소장(한성무역 부산지점장)
갑순(소희의 집 식모)
하녀아이(비밀 홀에서)
부인A(홀에서)
부인B(홀에서)
부인C(홀에서)
깡패A
깡패B
깡패C
순경
의사
간호원
#1 (F.I) 소희의 방 (낮)
흐트러진 오백원짜리 지폐. 십만원 오만원짜리 보증수표.
다이야반지의 매니큐어 칠한 손이 익숙하게 지폐를 세어 나간다.
토닥토닥 화투장 때리는 소리와 함께 들리는 전축의 땐스 뮤직.
민아 (소리) 어머 이이는? 아 똥하나 하자구 팔싸리를 올리는
사람이 어딨어!
여인 (소리) 그럼 진광을 올릴까?
다른여인 (소리) 아주 까놓구들 허시지...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많다구요.
너부러진 맥주병들. 그 사이를 누비고 부인들 끼리 맞잡은 춤이
돌아간다. 부인A, 부인B를 리드하고 있다.
부인A 그래 궁뎅일 빼지 말구 누가 잡아 먹을거 아니니까 척 몸을
맡겨야 해! 슬로 슬로 퀵퀵 옳지!
돌아가는 전축. 으리으리하게 차려논 부잣집 안방. 계주 김소희의
방이다. 세어논 돈을 차곡 차곡 옆에 쌓놓고 있는 소희. 화투판에
둘러 앉은 네 부인. 유한(有閑)이 몸에 밴 부인들 가운데 민아가
끼여있다. 대부분이 속치마 바람이다.
민아 이 예펜네들아 춤은 좀 마루에 나가 출수 없어? 시끄러워
몸살나요 몸살!
부인A 얼씨구? 얼마나 잃었길래 신경질인구.. 유치하게 화툿장
투닥거리면서...
부인C (화투판) 한 칠팔천원 나왔겠지 잃긴 뭘 잃어.
소희 정숙이 얜 뭘하구 있는거야!
일어나 전화통에 매달린 부인D 옆으로 간다. 춤 멤바는 마루로
나간다.
부인D (어리광이 징그럽게 느껴지는 말투) 몰라 몰라! 그따위 소리
할래면 전화 끊어..
소희 그래! 전화 좀 끊어요. 무려 이십분이야 이십분!
부인D의 볼을 꼬집는다.
부인D 아야야... 호호 아니야... 응 그럼 일곱시에 거기... 안녕!
소희 불장난 그렇게 하다 당신 인제 큰 코 다친다니까.
부인D 큰 코 다쳐봤자 이혼 밖에 더 할라구 흥.
소희 힛덥게 큰소리 치네!
다이알을 돌린다.
소희 ...응 현자냐? 아주머니 나가셨니? 학교 다녀서 온대?
알았다!
민아 어련할라구 자모회 간부쯤 되면 치맛바람 날려야지!
부인C 요새 치맛바람 되게 뚜드려 맞드라 얘.
민아 흥! 뚜드려 맞는다구 기여들어갈것 같애? 뒷 구녕 거래가
더 커질 뿐이야.
소희 얘 민아야 오늘 정숙이 계집애 치도곤이 한번 놔 줄까?
민아 좋두룩! 허지만 난 뒷책임은 안진다.
소희 오부인 좀 와 봐요!
마루에서 춤추던 부인A가 들어서며.
부인A 됐어?
소희 (돈을 내밀며) 정숙이 돈이 안들어 와서 구십칠만
오천원인데... 어떻게 할래 저번 돈 오십만원 여기서 갚어
버리지?
부인A 글쎄... 그 쪽이 다급한 돈이 아니면 한달만 더 쓸까
하는데...
소희 좋을대루!
부인A 그럼 이자 돈 삼만원만 제하구 줘.
소희 거기서 오천원만 날 주면 돼.
부인A 빼구 줘.
소희가 돈을 세는 동안.
부인A (손벽을 치고) 자아 따분하게 이러구들 있을 판이야? 오늘은
기분 바꿔서 교외루 원정가는게 어때?
부인들 좋아요! 좋지...
한마디씩 하며 자리를 걷고 일어선다. 매미 날개 같은 치마들이
부인들의 허리에 걸쳐지며 메인 타이틀 "댁의 부인은 어떠십니까"
#2 아르바이트. 홀
어두운 조명 속. 부인들의 치마폭이 제비 같은 남자들의 다리와
엉크러지며 맵시있게 돌아간다. 그와 반대로 숫제 부둥켜 안은채
움직이지 않는 쌍쌍. 뚱뚱한 중년 여인과 이십대의 청년이 도취되어
있는가 하면 여자의 귓밥에 거친 호흡을 불어 넣는 대머리 중년의
뒷통수 등. 탁하고 지저분한 아르바이트. 홀의 단면이 소개되는
가운데 타이틀이 끝난다.
#3 소희의 방 (저녁)
바시시 웃으며 청아한 모습의 정숙이 들어선다.
정숙 미안해 늦어서... 글쎄 헌 얘기 되하구 헌 얘기 되허구.
소희와 민아 만이 남아 있고 깨끗하게 치워진 방안.
소희 듣기 싫어 변명하지마.
민아 너 땜에 우린 놀러두 못가구 기다리구 있는거야 어떡할래?
정숙 아이 그러게 미안하다잖아.
민아 미안하다면 다니?
소희 그럴거 없어 오늘 집에 안들여 보내면 고만이지.
정숙 어머 큰일 날 소리.
민아 야 이 예펜네야 그렇게두 서방이 무섭니?
정숙 어머 누가 무서워서 그러나 뭐.
소희 놓칠까봐 그러지? 조전무 핸썸이거던... 얘 요리집 계집들이
느이 서방을 놓구 경쟁이 대단하대드라...
정숙 아무리?
민아 아무린 뭐야 나두 그런 소문 들었어.
정숙 그렇다구 그건 상대방 얘기지 아빠가 어쨌다는 얘긴
아니잖어?
소희 이런 쑥맥! 느이 남편은 부처님이라든 목석이라든... 계집이
달려드는데 싫단 놈팽이가 있는줄 아니?
정숙 (웃으며) 예외라는게 있잖어.
민아 예외? 홋호호 믿어라 믿어! 믿는 자에게 복이 있다드라!
정숙 아니야... 정말... 아빤 원래... 그런걸 좋아하지 않어 일에만
정력을 기울이니까...
민아 그럼 나만 과분줄 알았드니 정숙이두 과부구나 동성연애
할까? 홋호.
정숙 얜 농담이라두 그런 소리 마. 내가 왜 과부니?
민아 그까짓 남편 있으나 마나지 뭐야 넌 그걸루 만족하니
만족해?
정숙 만족 안하면 어떡허란 말야 바람 피우지 않는것만두
다행이지...
소희 바람피우지 않는다는걸 뭘루 단정하니?
정숙 출장 이외의 날 외박하는 법이라구 절대루 없...
그 말이 소희와 민아의 폭소로 의아하게 멈춘다.
소희 (웃음을 걷으며) 이 쑥맥아! 출장은 왜 그렇게 잦다든?
그리구 외입쟁이가 외박하는줄 아니? 진짜 한량은 초저녁에
일을 보는 거야.
정숙 설마... 그렇게 못 미더우면 어떻게 사니 살길.
소희 서방 보구 사니? 돈 보구 살지 그러니까 자꾸 계를 들래는
거야 요 맹추야.
민아 저년 본바탕이 드러난다.
소희 달래 첩인가 그러니까 첩이지... 생각하면 더럽고 치사하고
몸써리가 나지만...
정숙 아이 화제가 왜 이렇게 되지... 내 계돈 이만오천원이든가?
빽을 열고 수표와 돈을 꺼내며.
정숙 난 가봐야겠어...
소희 못 가!
민아 넌 오늘 꼼짝없이 잡힌 몸이야.
소희 아빠 출장갔잖어!
정숙 그래두 안돼! 애들이 기다려서.
일어나려는 정숙을 잡아 나꾸는 민아. 소희는 수화기를 들고
다이알을 돌린다.
소희 ...아 미애니? 아니 나 김아줌만데 느이 엄마 오늘... 좀
늦어지니까 먼저 저녁들 먹어!
정숙 (잡힌채) 안돼! 안돼! 나 이럼 정말 화낼테야.
민아 정숙인 화낸 얼굴이 이뻐서 조전무가 반했다드라.
소희 응 그래 학부형들하구 선생님 모시구 저녁 먹어야 해
알았지? ... 그래 끊어.
정숙 ...느이들 너무 헌다 정말...
민아 잔소리 말구 일어나.
정숙 (단념한듯) 어딜 가자는거야 극장?
민아 (웃다가) 그래 인생극장.
소희 한번 구경 시켜줄께 또 가자 소리는 마 제발.
#4 가로 (밤)
네온의 쟝글을 헤치고 달리는 자동차의 물결.
#5 택시 안 (밤)
무료하게 앉은 정숙.
정숙 (간신히) 나 정말 가고싶지 않어...
민아 두 선배의 말을 들어 참한 가정부인 일수록
사회견학이라는게 필요한거래두.
정숙 얘...
소희 느이 남편은 출장 핑계하구 지금 어떤 계집을 끌어안구
향락에 취해 있을지두 모른는 거야.
정숙 (맥이 풀린다.) ...
#6 어느 한식가옥 대문 앞 (밤)
택시가 들어와 서고 민아, 소희, 정숙이가 내린다.
정숙 여기가 누구집이니?
민아 친구집이야.
하며 부자를 누른다.
#7 대문 안 (밤)
하녀아이가 나와 대문을 연다. 들어오는 민아.
하녀 어머나! 오랫만에 오시네요.
민아 모두들 있니?
하녀 네... 어서 들어 오세요.
뒤따라 소희에게 밀려서 들어 오는 정숙.
민아 (들어가며) 문단속 잘해라.
하녀 네...
#8 복도 (밤)
겉보기와는 달리 양식을 절충한 집이다. 어느 방문 앞을 지나간다.
발속으로 춤을 배우는 몇쌍의 남녀가 보인다.
남자 (소리) 왼발, 오른발... 퀵 퀵... 스로우, 스로우 퀵 퀵...
정숙의 가슴이 뛰는듯 숨을 크게 쉰다. 소희가 정숙의 등을 민다.
정숙은 밀려서 민아의 뒤를 따른다.
#9 홀 (밤)
비밀 땐스홀 (아르바이트).
어두운 조명속을 돌고있는 5,6쌍의 남녀들.
입구의 문이 열리며 민아를 선두로 소희에게 정숙이가
끌려서 들어온다. 이들이 소파에 가서 앉는다. 어리둥절한 정숙.
측은한 무드 음악이 출렁인다. 조용한 춤을 추는 남녀들.
민아 정숙아 저 사람들이 모두 너같은 가정부인이라는 것만
알아라.
정숙 (그저 놀랍다.) ....
이때 음악이 끝난다. 모두들 소파로 간다. 다른 음악이 깔린다.
남자들이 정중하게 춤을 청한다. 따라 나가는 여자들. 민아의 자리로
오는 길성기.
성기 (민아에게) 추시겠읍니까?
민아 서툰데요.
성기 저도 마찬가집니다. 자..
민아는 성기를 따라 나간다.
정숙 (소희에게) 저 남자 민아 아는 사람이니?
소희 모를걸...
정숙 그런데 따라나가?
소희 정 싫으면 거절이야 하지만... 여기 들어온 이상은 피차의
감정을 상하게 할 필요는 없는거야.
정숙 정말 너무하구나...
소희 너두 청하면 춰줘야 되는거야.
정숙 춤을?
소희 어떠니? 그렇다고 연애를 하는것도 아닌데... 길어야
삼분 아냐?
정숙 안돼! 그런 소리 할래면 나 먼저 갈래.
소희 그래 그래 알았어... 허지만 너 이런데 와서 촌닭 노릇
하지마 상판데기 아깝게시리...
정숙 하는수 없이 웃어버린다. 중년신사 하나가 다가와 정중히
정숙앞에 선다.
중년신사 잡으실까요?
정숙 (쩔쩔매며 미소짓고) 저... 저... 아직 못 배웠어요.
중년신사 유감입니다.
정숙 죄송합니다.
중년신사 간다.
소희 어때 신사적이지? 강욘 안한다 너.
정숙 콧등의 땀을 씻으며 웃고 끄덕인다. 바로 이때다. 핸섬한
청년인 장재석이가 다가와서 정숙에게 정중히 춤을 청한다.
재석 추실까요?
정숙 (조용히) 전 못춰요.
재석 저도 이제 배우는 길입니다.
정숙 정말이예요.
소희 얘. 나가봐 누군 뭐 별나게 잘추니?
정숙 얘..
재석 자아...
설득력있는 독촉이다.
소희 기다리고 계시잖어.
하며 밀어낸다. 할 수 없이 일어섰을 뿐인데.
재석 감사합니다.
소희 이럴땐 안나가면 욕먹어.
어쩔수 없이 후로아로 들어선다. 재석은 정중하고도 능숙하게
정숙을 리드하기 시작한다.
재석 (조용히) 잘 추시면서 절 놀리시느라고 그러셨군요?
정숙 아니예요 정말은 구경을 왔을 뿐이예요.
재석 리듬에 맞추어 스텝을 옮기는 것쯤 못하시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정숙 그야뭐 학교때.
재석 아 네..
정숙 (발등을 밟은듯) 어머.. 정말 못추겠어요.
재석은 약간 끌어당기는듯 하며.
재석 괜찮습니다. 이제 곧 나아 지실겁니다.
정숙 정말이예요. 온몸이 떨리는걸요.
재석 (따뜻하게 미소 지으며) 정 그러시다면..
무안해 하는 정숙을 부드럽게 이끌고 자리로 온다. 소희도 나가고
없는 자리.
정숙 ...죄송합니다.
재석 뭘요 괜찮습니다.이런덴 정말 처음 오셨군요?
정숙 ..네..
재석 앉으시죠.
정숙 ..저 안됐지만 먼저 실례해얄까 봐요.
재석 왜 모처럼 오셨는데 구경이라두 하시지 않구...
정숙 ...구경하기두 불안해요 추자구 그럴까봐...
재석 핫하하... 그럼 가셔야겠군요.
재석 정중히 정숙을 인도해 나간다.
#10 한식가옥 대문 앞
대문이 삐끔이 열리고 정숙을 앞세워 재석이 나온다.
마침 와서 닿은 택시에서 내리는 신사들. 그 차를 잡아주며.
재석 실례 될까봐 모시진 않겠읍니다. 타시죠!
정숙 (너무나 고마워서) 정말 여러가지루 감사합니다.
차에 오른다. 그 문을 닫아주며.
재석 또 뵙고 싶군요 부인!
정말 섭섭한듯 미소 짓는다. 떠나는 택시. 뒷 창을 통해 정숙의
모습이 살며시 돌아보며 감사의 미소를 남기고 멀어져 간다.
#11 정숙의 집 앞
중류상급의 문화주택이다. 택시가 미끄러지듯 들어와 선다. 내리는
정숙 나다!
빗장을 열고 이 집의 식모 현자가 내다보며.
현자 늦으신다드니 아주머니 일찍 들어오시네요.
정숙 (들어서며) 음... 애들 밥 먹었니?
현자 네.
#12 정숙의 집 현관
정숙의 딸 미애와 아들 호민이가 달려 나오며 매달린다.
미애 엄마-
호민 엄마-
정숙 (호민을 얼싸 안으며) 호민이 울지 않았니?
호민 응! 엄마 아이스크림은?
정숙 에이구 엄마 정신 좀 보게 깜박 잊었지 고만.
호민 씨이! 엄만 거짓말쟁이야.
미애 정말!
정숙 미안 미안! 누나보구 사오랠께.
돈을 꺼내 현자에게 주고 방으로 가는데.
미애 나두 갈래!
호민 나두!
정숙 (돌아 서며) 미앤 안돼! 너 숙제 다 했니?
미애 우물 쭈물.
정숙 어서 냉큼 들어가 공부해!
미애 혀를 낼름하고 방으로 사라진다.
#13 정숙의 방
좋은 취미로 알뜰하게 가꾸어진 방안이다. 들어선 정숙 치마
저고리를 훌훌 벗어들고 장 문을 열려다 문뜩 거울에 비춰지는 자기
모습을 바라보기 한참. 느린 동작으로 옷을 걸어 놓고 피로한 듯
자리에 앉는다. 다시 경대에 비춰지는 정숙의 모습. 무언지 자꾸
허전해지는 정숙이다.
정숙 (소리) ...모레가 결혼한지 꼭 십삼년... 아직 뼈저린 불행이
우리 가정을 휩슬어 본 일은 없어... 가끔 아빠가 일에만
정신을 쏟는 나머지 나를 지나치게 등한시하는 경향이
없지는 않지만...
여기 느닷없이 들리는 부드러운 남자의 소리.
재석 (소리) 또 뵙고 싶군요 부인.
문득 놀라는 정숙의 얼굴.
정숙 (소리) 어머 내가 미쳤어!
고개를 약간 갸우뚱하며.
정숙 아니야... 그 청년의 따뜻한 호의가 고마웠을 뿐이야...
그 청년이 아니였드람 내 꼴이 뭐가 됐겠어...
호민 (소리) 엄마-
정숙 문득 제 정신이 들어 달려드는 호민을 끌어 안는다. 현자가
포장된 아이스 모나까를 정숙 앞에 갖다 놓며.
현자 아주머니 저녁은 잡수셨어요?
정숙 ... 응 생각 없다 별루... 호민아 이거 누나 방에 가지구 가서
논아 먹어.
호민과 현자 나간다.
정숙 얘 현자야.
현자 네?
정숙 아저씨한테서 전화 없었니?
현자 아뇨...
정숙 알았어...
자꾸 허전해지는 정숙이다.
(O.L)
시계가 열한시를 가리킨다. 자리에 잠든 호민. 옆 자리 베개위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 부채를 만지작 거리고 있는 정숙 불현듯
신경질조로 부채질을 한다. 전화벨- 벌떡 일어나 수화기를 든다.
정숙 네.. 아 부산요 네... (반가운 눈초리) 아 아빠세요... 네 다들
아무일 없어요... 내일 몇시 차예요?... 네? 왜요?
(시무룩 해지며) .... 모레가 무슨 날인지 알고 계시죠?...
할수 없죠 뭐... 아녜요 괜찮아요... 안녕히 주무세요!
수화기를 놓고 깊은 생각에 잠기는 정숙.
(F.O)
#14 (F.I) 거리 (이틀 후) (낮)
가로수 그늘에 생각에 잠긴듯 파라솔을 만지작거리며 지나가는
차를 잡으려고 서있는 정숙. 휙 지나간 택시 한대가 저만치서 멎드니
사람이 내려선다. 쫓아가 잡으려는 정숙과 돈을 치루고 돌아선
남자의 시선이 마주친다.
정숙 ...아..
하고 놀라 멈칫 한다.
재석 (미소지으며) 역시 부인이셨군요 또 뵙게 되서 정말
기쁩니다.
정숙 요전날 정말 고마웠어요.
재석 원 별말씀을...
서 있는 차에 오를수도 없고 망설이는 정숙.
재석 부인... 부인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제가 차 한잔 대접하고
싶은데요.
정숙 ...글쎄요...
정말 어쩔줄 몰라서 망설이는 태도다.
재석 가시죠!
거절하기 어려운듯 끄덕여 버리는 정숙.
#15 공 다방
둘은 들어선다.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재석 앉으시죠!
에티켓을 깎듯이 지키는 재석이다. 정숙 자리에 앉는다. 재석도
비로소 맞은 쪽에 앉으며.
재석 뭘 드시겠읍니까?
정숙 전... 아이스 티를.
다가온 레지 물수건을 놓는다.
재석 아이스 티 두잔!
레지의 눈초리에 약간의 질투 비슷한 것이 스치며 사라잔다.
재석 ... 제 직장이 바루 요 뒷편에 있읍니다.
정숙 어디 다니시는데요?
재석 뭐 직장이라야 챙피해서 말씀 드릴만한 것도 못되지만 제
친구놈하구 D.P점을 경영하구 있읍니다.
명함을 한장 꺼내 준다.
정숙 (받아보며) 장선생님이시군요. 좋은 직업인데요 뭘.
재석 네. 핫하... 허긴 예술 사진의 대부분이 저의 집을 거쳐
나가긴 합니다만... 뭐 사나이로서 할만한 큰 사업은 못 되지
않습니까?
정숙 그래두 취미를 살리실 수 있잖아요.
재석 네... 그저 그 재미 뿐이죠.
레지가 차를 갖다 놓며 또 슬쩍 그들을 곁눈질하고 지나간다.
재석 드시죠...
정숙 바시시 웃고 글라스를 들어 다소곳이 스트로를 빤다.
재석 (응시하며) 부인!
정숙 네...(당황이 스친다.)
재석 전 부인을 모델로해서 고궁의 스켓취를 꿈 꿔 봤습니다.
입을 열려는 정숙을 가로 막고.
재석 허지만... (쓸쓸히) 저 같은 위인에겐 너무 과남한 꿈이란
것을 알기 때문에 참겠읍니다.
정숙은 이 선량한 호청년에게 동정이 간다. 애처롭기까지 하다.
정숙 ..과남하긴.. 뭐 제가 특별한 인종인가요?
재석 ...부인께선... 용서하십쇼 이건 제 추측입니다... 첫눈에
삼십세 정도... 허지만 삼십오,륙세 되셨을꺼고... 결혼생활
십이, 삼년에 국민학교 다니는 애기가 둘쯤 있으신 어느
고관댁 사모님이실꺼라구...
정숙 어마나... 어느 정도 맞추셨어요.
재석 허구 많은 인물 사진을 다루어 내자니까 자연 관상쟁이 같은
관찰력이 생긴다구나 할까요.
정숙 재미있는 말씀이시네요...
재석 ...부인! 제 소원 꼭 하나만 들어 주시갰읍니까?
정숙 (넌지시 기대가 간다.) 뭔데요?
재석 ... 사진은 단념하겠읍니다. 그대신 꼭 한번만 부인과 함께
조용히 춤을 춰 봤으면 하는게 제 소원입니다.
정숙 춤을 못 추는걸 아시면서...
재석 못 추시는게 아닙니다... 부인께서 불안하셨을 뿐이죠.
정숙 ...
재석 딱 한번... 전 그 이상 바랄 아무것두 없읍니다. 부인!
착잡한 감정이 오가지만 이미 유혹을 물리칠 수 없는 정숙의
얼굴이다.
#16 비밀 땐스 홀
밤인지 낮인지 시간이 없는 홀 안의 분위기, 무드. 춤에 한숨을
토할듯 젖어 있는 부인들의 얼굴. 그 물결속 역시 뭔가 가누기 힘든
감정에 휩쌓인 정숙이 재석에게 포근히 안겨 돌아가고 있다.
재석 부인! 이대로 시간이 정지되 버렸으면 좋겠읍니다.
귀를 간지럽히며 녹아내릴듯이 속삭이는 말투다.
정숙 ...아뭇소리 말아 주세요 서로가 괴로울 뿐이예요...
어느 자리. 막 들어선것 같은 소희와 민아가 한바퀴 둘러보다가.
민아 (깜짝 놀라며) 얘! 저거 정숙이 아니니? (가리킨다.)
소희 설마... 어디? 앗! 정말 정숙이야...
민아 저 망할 기집애!
소희 (악마적인 미소) 마약굴과 같은 곳이 바루 아르바이트
홀이긴 하지만 쟤가 그렇게 될줄은 꿈에두 몰랐다.
민아 별수 없는거라구 봐야지 뭐 시대의 조류니까.
재석과 정숙의 춤은 점점 가경에 든다. 할딱이는 정숙의 숨결.
재석 부인! 내일... 두시에 비원입구에서...
정숙 (고개를 돌이질하며) 안돼요 약속한대루 이 시간 이후론...
영원히 모르는 사람...
약한 말투다.
재석 꼭... 한번 뿐입니다. 한장만 찍게 해주십쇼 다신 조르지
않겠읍니다. 부인!
정숙 ...그러심 안돼요 전 가정이 있어요.
재석 전... 오실때까지 몇시간이구 며칠이구... 기다리겠읍니다.
정숙 안돼요... 기다리심 안돼요.
자기에게 다짐하듯 괴로운 한숨. 바로 뒷 켠 얼굴을 가리운채 그들의
거동을 살피며 다시 소악마적인 미소를 띠우는 소희.
(O.L)
#17 비원 입구
재석이가 카메라를 매고 서성거리고 있다. 시간을 본다. 팔뚝시계.
두시 십분.
#18 정숙의 집 (마당)
현관을 나서는 정숙. 현자가 뒤따라 나서며.
현자 아주머니 뭐 잊으신것 없으세요?
정숙 응...?
현자 가지고 가셔야죠...
하며 뒤에 들었던 핸드빽을 내민다.
정숙 (받는다.) 그만 둘까...
현자 그만 두시다뇨?
정숙 (고통스럽게) 아냐...
현관쪽으로 들어서다가 다시 대문쪽으로 나간다.
현자 나가시게요?
정숙 응... 일찍 들어온다.
현자 다녀 오세요...
정숙 전화 잘 받구 호민이 깨거든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
꺼내주구...
현자 네...
#19 비원 입구
사십오분을 가리키는 시계. 재석은 아직도 있다. 재석은 입맛 쓰게
담배를 빨고 있다. 초조가 감도는 재석의 눈길.
정숙 (소리) 전 가정이 있어요. 기다리심 안돼요...
#20 비원 길 건너편
소희와 민아가 살피고 섰다.
민아 안 온다 얘... 어쩌다 한번이지 걔 뱃장으로선 역시 불가능한
일일거야.
소희 (자신만만) 남편이 아직 안돌아 왔잖어 그런 애니까
빠지는거야 물불 가릴줄 모르게 되거든...
민아 정말 그렇다면 정숙이가 가엾어지지 않니! 우리 장난이
걜 불행하게 만든 결과가 되잖어...
소희 (차게) 너나 나나 걜 동정할 입장이야? 난 두다리 뻗구
느긋하게 잠자는 본처들이 미워!
민아 얜 미쳤나봐... 앗 왔다 얘!
#21 비원 입구
정숙은 긴장한 얼굴로 택시 삯을 치루고 돌아선다. 풀이 죽은듯
다가와서는 재석.
재석 나오시라구 한걸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정숙 ...지나가는 길에 기다리시면 어쩌나 하구 들렸어요...
재석 두구두구 잊지않겠읍니다 부인! 불안하시죠?
정숙 (어린애처럼 끄덕이고) 아는 사람 만날까봐 겁이 나요!
재석 그럼 이 표 찢어버리구 장소를 옮길까요? 교외 능 있는데
쯤으로...
정숙 교외까지요?
재석 네 스피드를 내서 달리면 잠깐입니다 조용하게 아는 사람두
피할수 있구...
정숙 허지만... 그건 다음 기회루 (당황의 웃음) 어머나 나 좀 봐
다음 기회는 없긴데...
재석 씁쓸히 웃는다.
재석 약속이니까 ...지켜야겠죠...
정숙 섭섭하세요? 정 그러시담 오늘 뿐이니까 가두 좋아요.
재석 부인! 감사합니다.
둘이 차를 잡으려고 돌아서는데 한편에서 걸어오는 듯이 다가오는
민아와 소희와 딱 마주친다.
정숙 (새빨개지며) 어머나!
민아 어머 정숙이 아냐 웬 일이냐 여긴...
정숙 응... 저어...
소희 ...어디서 뵙든 분 같은데... 소개 해 얘!
재석 저 장재석입니다.
입술을 깨물고 섰는 정숙.
#22 정숙의 집 대문 앞
택시가 미끄러지듯 들어와 서고 조동식이가 빽을 들고 내린다.
부자를 누른다.
현자 (E) 나가요...
대문 열린다.
현자 어머 아저씨 지금 오세요!
동식 그래 잘 있었니?
현자 네...오늘은 왜 전보 안치셨어요?
동식 (웃으며) 아주머니 계시지?
현자 나가셨어요..
동식 그래?
현자는 동식의 빽을 받아 들고 안으로 들어간다.
#23 그 내실
들어오는 두 사람. 전화벨이 울린다.
현자 (재빠르게 받는다.) 네 아줌마예요? 아저씨 오셨어요...
#24 어느 다방
카운타에서 전화를 하고 있는 정숙.
정숙 뭐? (입술을 파르르 떨며) 알았다 곧 갈께.
수화기를 놓고 돌아서는 눈에 실망이 떠오른다. 재석과 소희 민아가
다가오는 정숙을 바라본다.
정숙 ...아빠가 돌아 왔어...
민아 어머 실망인데!
금시 풀이 죽는 재석.
소희 얘 그까짓 맨날 볼 영감 몇시간 기다리라구 내버려 두렴!
재석 그건 안됩니다! (다시 풀이 죽으며) 역시 들어가셔야죠
전 없었든 일로 단념하겠읍니다.
정숙 미안해요...허지만 아무때구 이 약속은 꼭 이행해
드리겠어요 얘 미안하지만 장선생하구 셋이만 가 응?
참 느이들 만나길 잘했어...
민아 동창생 좋다는게 뭔데 이래서 존거지...
소희 앞으루두 많이 이용 당해줄께 염려마!
#25 XX D.P점
재석과 친구 성기가 네가 필림을 들여다 보며 싱글 벙글.
성기 좋은데요 이여자 프롭니까?
손님 (싱글벙글) 아마츄어라구 자신은 우기는데.
성기 핫하... 믿을 순 없군요 요새 그런게 많습니다.
손님 좌우간 두장씩 궈 놓슈.
성기 네 안녕히 가십쇼.
손님 나가는데 엇갈려 들어서는 이십오세 정도의 때 벗은 여인
안명옥이 들어선다. 차고 이지적이기는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화류계 내음이 풍기는 인상이다.
성기 어? 미스 안 어서오쇼.
명옥 미스터 장 아직 안들어 왔어요?
성기 ... 오늘은 좀 늦어질것 같은데...
명옥 어딜 갔는데요?
성기 (싱글벙글) 왜 또 며칠 콧빼길 못보신 모양이군!
명옥 묻는데 대답이나 하세요.
성기 글쎄... 어딜 간다드라...아 참 사진 전시회장 문제 때문에
나갔지.
명옥 거짓말 마세요!
성기 이거야 원! 그럴바에야 뭣허러 묻는거야? 물으나 마나지.
명옥 ....
새침해지는 명옥.
성기 오늘 밤엔 내 꼭 장형을 집에 보내줄께... 사실은 요새
새 일거리가 하나 생겨서 장형이 눈코 뜰새가 없었단 말야
남자의 사업은 부인이 없드라두 가장 가까운 여성이
이해하구 도와줘야 잘 된다는걸 미스 안이 잘 알잖아.
자못 타이르듯 점잖아진다.
#26 정숙의 집 대문 안
정숙 들어오며 뒤따르는 현자에게.
정숙 어디 갔냐구 물으시든?
현자 아니요...
정숙 (안도하며) 어느 방에 계시니?
현자 큰 방에요.
정숙 애들은?
현자 미앤 아직 안돌아 왔구 호민이 하구 아저씬 한참 장난
하시든데.
#27 정숙의 방
동시과 호민은 서로 끌어 안은채 잠들어 버렸다. 들어서서 그들의
모습을 내려다 본 정숙 절로 웃음이 솟으려다가 문득 얼굴이
굳어진다.
정숙 (소리) 비행기 한시간쯤 탓다구 이렇게 고단한걸까...?
소희 (소리) 이런 쑥맥! 느이 남편은 부처님이라든 목석이라든...
계집이 달려드는데 싫다는 놈팽이가 있는줄 아니?
민아 (소리) 호호... 나만 과분줄 알았드니 너두 과부나
마찬가지지 뭐야!
소희 (소리) 출장은 왜 그렇게 잦다든? 밤낮 돌아온다는 날보다
왜 그렇게 늦는다든!
정숙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질투의 불길에 싸여 동식을 잡아 흔든다.
정숙 일어나세요 무슨 잠을 그렇게 주무시는거예요!
동식 응... 당신 왔어? 아- 피곤하다 깜빡 잠이 들었었군!
(손을 잡으려 한다.)
정숙 (쓱 뿌리치며) 좀 더 계시다 오시지 어쩌자구 벌써
오셨어요!
동식 (일어나 앉으며) 헛헛허... 미안 미안! 어제 안 돌아왔다구
사모님 화나셨군! 그대신 내 당신한테 좋은 선물 사왔어.
머리장에 놓인 것을 가리킨다.
정숙 (눈물이 핑 돌며) 그까짓 선물 누가 기다렸나 뭐.
동식 끌러 봐요 당신 에메랄드 반지 갖구 싶어 했잖소.
#28 D.P점 안
명옥은 없고 성기와 재석이 마주섰다.
재석 간신히 설득시켜 O.K가 됐단 말야 그런데 척 나타난게...
성기 아뿔사 남편 조동식이였군!
재석 이거 왜 이래... 그 여자 친구들이였단 말야 왜 그날 거기
같이 왔든...
성기 응 내가 조거다하구 점 찍었든 여자 말이지.
재석 그래! 그것들이 막 만난 김에 춤추러 가자구 다방에서
성화를 놨거던... 그러니까 이 순진파 사모님이 이왕 둘이
몰래 교외가기는 글른거구 집에 전화나 걸어 놓구 가자구
건것이 남편이 돌아 왔다는 죽두 밥두 안될 일루 뒤집혀
버린거야.
성기 알았는데... 너 내 말대루 사실은 그 귀 좀 크구 뚱뚱한 여잘
택했어야 했든거다.
재석 야 아무리 돈 있는건 다 후려버려라 하는게 우리 신조지만
그래두 이왕이면 다홍치마... 마음에 드는걸 골르구 싶은게
인정이 아냐 임마.
성기 자식 넌 아직두 멀었다 빼가 좀 더 고파봐야 정신을 채릴까.
재석 핫하... 염려 말어 이쪽두 털면 얼마든지 나올께 있을테니까.
#29 정숙의 방
매니큐어도 없는 이쁜 손가락에서 빛나는 에메랄드 반지. 공기에
밥을 푸고 있는 정숙의 손이다. 동식 정숙 호민 세식구가 둘러앉아
화기 넘치는 저녁상을 받고 있다. 이때 미애가 들어온다. 아빠가
사온듯한 새옷을 입었다.
미애 아빠 딱 맞아요 그지 엄마?
동식 그렇게 입으니까 다 큰것 같은데.
미애 그럼 내년엔 중학생인데.
정숙 (이쁘게 흘기며) 붙어야 중학생이지 어서 어서 먹구 공부 좀
하다 자야 해.
동식 그 공부 공부 소리... 애들은 신물이 날거요.
아빠를 바라보는 눈이 공감한다.
#30 명옥의 방 (밤)
침대속의 재석과 명옥.
명옥 나 속썩이면 정말 죽어 버릴테야...
재석 공갈이야?
명옥 결혼을 빙자한 간음은 형법에 명시되어 있어요...
재석 이거야 원... 맨날 협박이니 마음을 놓을 수가 있나?
명옥 오죽하면 그럴까 바람둥이 같아서 영마음이 안 놓이는걸 뭐.
재석 그런 소리 하지마라... 여자라면 질색이다...
명옥 정말이지? 여자란 약하게 보이지만 때로 뱀처럼 차겁다는걸
잊지 말아요.
재석 글쎄 엉뚱한 걱정은 하지 말래두...
명옥 그럼 믿어! 믿을래요.
명옥 와락 재석의 목을 끌어 안는다. 격렬하게 번져가는 두 사람의
페팅.
#31 정숙의 방
아이들은 없고 자리에 누운 정숙옆에 엎드려 열심히 서류를
뒤적이는 동식.
정숙 여보... 고단하시다면서 그건 내일 회사에 나가서 보심
어때요.
동식 당신 안잤어? 자요 어서 걱정말구.
따뜻하다.
정숙 (기가 막히다.) 여보 당신 내가 싫어졌우? (조용한 음성으로
떨려 나온다.)
동식 별안간 무슨 소리야.
정숙 ...당신은... 당신은...
확 돌아누우며 오열한다.
정숙 날... 죄 짓게 하지 말아요... 나두 목석은 아니란 말예요...
동식은 비로소 생각이 든듯 서류를 덮으며 정숙의 얼굴을 돌려
눕힌다.
(F.O)
#32 (F.I) 정숙의 집 앞 (아침)
자가용 찝차에 오르는 미애. 정숙과 호민 현자가 나와 서 있고
동식이 앞자리에 오르며.
동식 호민이 유치원 갔다 와서 떼쓰지 말구 있어야 아빠가
아이스크림 사다 준다.
호민 응! 아빠 안녕!
정숙 다녀오세요 일찍 들어오시죠?
동식 응 되도록...
정숙 미애야 한눈 팔지 말구 공부 잘해야 해.
미애 (내다보며) 응-
찝차는 떠난다.
#33 XX사립국민학교 앞
그 차가 와서 멎으면 미애가 깡총 뛰여내린다.
미애 아빠 안녕!
동식은 으례히 미애하구만 통하는 말투로 찡끗 웃어주며.
동식 공부는 적당히 건강은 각별 주의!
미애 응 후훗!
동식 오늘은 아빠가 바쁠것 같아서 차가 못 올지 모른다.
차조심해 가거라...
미애 응... 아빠 안녕!
손을 흔들며 교문으로 간다.동식도 흐뭇하게 웃는다.
동식 차를 한성무역으로 돌리게 박사장을 먼저 만나구 사에
나가야겠어.
찝차는 떠난다.
#34 한성무역의 삘딩
높직한 삘딩의 어느 창문을 잡아서.
#35 박사장 실
박사장과 동식이가 마주 앉았다.
박사장 핫핫하... 애들 말 문자루 난 조전무한테 언제나 두손 두발
번쩍 들게 된단 말야...
동식 그럼 이따가 집의 사장 결재 나는데루 곧 명세서를 보내죠.
일어나려는데.
박사장 조상무! 저녁에 한잔 합시다.
동식 해야죠! 우리 사장께서 아마 그냥 넘기지 않으실겁니다.
박사장 핫핫 바가지야 누가 쓰든간에 조상무쯤 하구 대작을 해야
술맛이 나거던!
(E) 노크소리.
박사장 들어와요...
소희가 들어온다.
동식 아이구 김여사 안녕하셨읍니까...
박사장 웬일이야? 아침부터.
소희 당신이 밤엔 절대루 나가지 말라고하니까 아침에
나왔죠...(가시 돋혔다.)
박사장 쳇! 말은 잘한다.
소희 곗돈좀 주셔야겠어요...
박사장 알았어 (수표한장 주며) 자, 회사엔 나오지 말랬는데...
소희 당신 며칠째 콧배기도 볼수 없으니까 나왔죠.
박사장 바빠서 그래요 바빠서... 아 그리고 오늘 밤은 꼭 가긴
가는데 말야 좀 늦겠어...
소희 왜요?
박사장 조상무랑 민사장이랑 사업관계상 한잔 해야겠어 알았으면
가봐요.
소희 가지 말래두 가요!
박사장 하하 쓸데없는 소리...
소희 (웃으며) 저 먼저 실례해요.
동식 네 안녕히 가십시요.
소희가 나가고 나면.
박사장 돈만 주면 해실거리구 조상무는 저런 두통거리가 없으니까
행복할거요.
동식 핫핫 박사장은 그 두통거리가 즐거우신거 아닙니까.
박사장 핫하... 그런가? 것두 팔자지 팔자야! 나두 조상무 부인의
반정도만 따라가는 예펜네만 됐었어두 그런 생활 안해요
안해! 머리위루 떠받들구 다니지...
동식 핫하... 제가 세계 제일가는 행운아가 된것 같군요.
박사장 행운아지 행운아야... 행운아구 말구...
#36 D.P점
전화벨이 울린다.
성기 (받는다.) 여보세요? 네 그렇습니다... 어디신지?... 잠깐
기다립쇼 (수화기를 가리고 재석에게 주며) 야! 이건 제물에
걸려든다... 강정숙이래!
재석 뭐? (믿어지지 않아서) ...아 여보세요 장재석입니다...
#37 공중전화 박스
소희가 생글거리고 있다.
소희 이것봐요 미스터 장... 강정숙이라구 해서 좋았다 실망했지?
홋호... 나 누군지 알아요?
재석(소리) (필터) 아, 김부인이시군요? 영광입니다 이렇게
전화주셔서... 어쩐일이십니까?
소희 저기 말야요... 오늘 시간 좀 내주겠어?
재석(소리) (필터) 좀 어렵겠는데요.
소희 그래요? 강정숙이랑 같이 가기로 했는데.
#38 D.P점
당황하는 재석.
재석 아... 그러시다면... 그럼 가야죠.
소희(소리) (필터) 홋호... 알았다구요... 둘이 벌써 그렇게 됐나...
재석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십쇼... 그날 헤지구 그만인데요.
어쨌든 가겠읍니다 몇시 어딥니까? (열성적이다.)
#39 동성산업 사장실
민사장 앞에 선 동식.
민사장 (기분이 좋게 명세서에 도장 찍으며) ...그까짓 술 안마셔두
좋으니 조전무를 자기 회사루 양보하라구 막 공갈을
때리드군 핫하하...
동식 (웃으며) 박사장 허풍이 대단하시다니까요.
민사장 아닐세... 조전무가 간다구 해두 놔줄 내가 아니지만
박사장은 반 진담이야... 그래 에이 여보슈 누구 회사
망하는꼴 봐야 시원하겠냐니까 에라 모르겠다 오늘밤
술값으루라두 동성산업 망하게 진탕 마셔야 겠다구
웃어대드군!
동식과 민사장 한바탕 웃는다.
#40 정숙의 방
소희가 정숙을 꼬이고 있다.
소희 글쎄 틀림없단 말야... 우리집 영감태기하구 약속하는걸
내 귀루 들은걸.
정숙 그래두... 안돼... 자꾸 그러지 마! 아빠한테 죄짓군 살 수
없어...
소희 그럼 너 왜 미스터 장한테 약속은 이행한다구 약속했니? 그
미스터 장이 온단 말야!
정숙 (충격을 받듯) 미스터 장?
소희 흥? 귀가 번쩍 뜨이지?
정숙 얜...?
좋지만 귀엽게 눈을 흘겨준다.
소희 민아도 오라구 했구... 오래간만에 놀자 얘!
(E) 전화벨이 멀리서 울린다.
정숙 에이 또 현자란 년이 전활썼군! 전화받고 올께...
하고 나간다.
#41 동. 응접실
들어와서 수화기를 드는 정숙.
정숙 여보세요 아, 아빠세요? 오늘 늦게 들어 오신다면서요?
동식 (소리) (필터) 아니 어떻게 알어?
정숙 (상냥하게) 소희가 왔어요... 약속하시는걸 들었다나요?
동식 (소리) (필터) 헛허 비밀이 없군! 푹 좀 쉬고 싶은데 또
그렇게 됐어.
정숙 그건 할 수 없지만 너무 많이 잡숫지 마세요.
동식 (소리) (필터) 응... 가능한한 일찍 들어 갈께...
정숙 (웃으며) 가능한한 일찍...이면 열한시 반이겠군요...
알았어요.
수화기를 놓며 무언지 안도의 한숨.
#42 XX아르바이트 홀 건너 길
한대의 택시가 와서 닿고 내리는 사람은 없다.
#43 택시 안
재석과 성기가 담배를 물고 홀쪽을 살피고 있다. 성기,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들고 있다.
성기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어.
재석 글쎄 정말 강여사가 올지 안올지도 모른다니까.
성기 안오긴 왜 안와... 안오면 또 어때? 몇번쯤 허탕치는게
보통이지.
재석 제기 돈 벌어먹기 힘두든다!
성기 야 야 이 직업이야말루 천당에나 있을 직업이다. 계집 골라
잡을 수 있겠다 돈 생기겠다 스릴 있겠다... 저런 미친년들!
춤바람에 신세 쫑치는건 모르구...
#44 홀 앞길
그들이 내다보는 시야로 홀의 정문이 ZOOM UP 된다. 여인 A가
장바구니를 들고 들어간다. 다른 여자 몇몇 들어간다. 택시가
달려와서 서고 소희, 민아, 정숙이가 홀안으로 들어간다.
성기 (소리) 왔다! 왔어! 흥! 임마 강여사가 안올지두 모른다구?
#45 홀
대낮이지만 침침한 불빛. 예상외로 많은 부인들로 들끓는다. 흐느적
거리는 무드 음악. 춤의 물결도 천천히 출렁인다. 입구쪽으로
재석이가 쑥 나타난다. 그는 홀안을 눈치빠르게 훑어보고난 다음
어느 테이블로 걷는다.
#46 테이블
민아, 소희, 그리고 정숙이가 있는 자리다. 사나이가 다가와서
민아에게 허리를 굽히며.
사나이 추시겠읍니까?
민아 (힐끗보고) 쉬고 있어요...
사나이 (다시 한번) 제가 미안하지 않습니까!
민아 죄송합니다... 쉬고 있어요...
사나이 ...
입맛을 쩍 다시며 미연적게 간다.
소희 왜? 한번 추지 그랬어?
민아 얘, 너 날 어디다 취직을 시키냐? 아무리 아르바이트
홀일망정... 사람이야 가려가며 춰야할게 아냐...
여기에 재석이가 성큼성큼 다가온다.
재석 늦었읍니다.
소희 왔구먼...
재석 안녕하셨읍니까?
정숙 ...
말없이 고개만 숙이는 것이나 정감이 있다. 이무렵 음악이 끝났다가
다시 시작된다.
재석 (조용히) 부인, 추시겠읍니까?
정숙 (웃는다)...
재석 나가시죠..
두 사람은 후로아로 나간다. 춤의 물결속으로 금새 파묻히고 만다.
(O.L)
후로아. 기둥을 중심으로 거기 움직이지 않고 흔들거리기만 하는
남녀들. 재석과 정숙의 느긋한 춤. 민아와 소희는 춤을 추면서
정숙을 응시하고 있다.
재석 (속삭이듯) 부인...
정숙 말씀하세요...
재석 댁의 전화번호가 24국의 1966번 이드군요...
정숙 (무료히) 어떻게 아셨죠?
재석 조동식씨의 직장도 알았읍니다... 부인의 일을 모조리 알고
싶습니다.
정숙 ...
정숙의 팔이 재석의 목으로 올라가서 짙게 감는다.
재석 부인 지난번에 약속한 드라이브... 오늘은 이행해
주시겠읍니까?
정숙 지금?
재석 네... 가장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정숙 같이 온 친구들은 어떻게 하죠...?
재석 그분들은 그분들대로 짜여진 스케줄이 있을 겁니다...
정숙 그래도 우리끼리만 어떻게 나가죠...
재석 부인... 나가시죠...
속삭이면서도 강력한 엑센트다.
정숙 ...
재석의 억센 팔이 정숙을 끌어들인다. 눈이 감기는 정숙. 멀리서
이들을 보는 소희와 민아.
소희 정말 저 기집애 녹아 떨어진다...
민아 무섭다 얘... 어떡허지?
소희 저 알아서 할 일이지 뭐!
#47 홀 앞
재석과 정숙이가 나와서 차를 잡는다. 그 차가 사라지자 건너편
성기의 차가 스르르 그 뒤를 따른다.
#48 갈대 밭
유유히 흐르는 흰구름.초가을 햇살에 눈부시게 출렁이는 갈대밭을
정숙과 재석이가 걷고 있다.
정숙 미스터 장!
재석 네...
정숙 내가 미친년이죠?
재석 ... 그렇게 말씀하시면 전 슬퍼집니다.
정숙 어차피 이 시간 이후론 남이지만 말야...
재석 부인! (부르짖는다.) 제발 그 말씀은 지금 말아 주십쇼... 전
미칠것 같습니다.
정숙 ... 안할께요...
재석 아... (신음)
정숙 ... (괴롭다.)
재석 ...부인! (울듯이)
정숙 ... 그러면... 못써요...
재석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하며 와락 안는다.
정숙 (숨가쁘다.) 미스터 장 제발... 이러지... 이러지... 마아...
형식적인 저항일 뿐이다.
재석 사랑합니다... 부인... 저를 욕하십시요.
안기는 정숙. 입술을 더듬는 재석. 황홀하게 받아들이는 정숙.
두 사람은 갈대위에 쓰러진다. 정숙은 숨이 찬듯 재석의 가슴을
밀어내며.
정숙 그만! 그만해...
재석 죄송합니다.
정숙 아냐... 우리 둘은 입술 이상을 넘어서지 마아...
재석 부인...
정숙 응...
재석 오늘고 일찍 들어가셔야 하나요?
정숙 (눈물이 사르르 번지며) 가고싶지가 않어... 메꿔지지 않은
집인걸... 허지만 가야되겠지...
재석 부인, 오늘 하루만이라도 부인을 놔드리고 싶지가 않습니다.
정숙 ... (눈물이 흐른다.) .....그건 안돼요... 죽어두!
재석 아... 부인...
끌어 안는다. 넓은 갈대밭. 흐르는 구름. 갈대잎은 파도처럼
출렁이고.
#49 언덕 위
나무 그늘에 숨어서 짜증스럽게 렌즈를 들여다 보며 투덜대는 성기.
성기 저거, 저거, 저 새끼! 장사할 생각은 잊어버리구 정말
홀려버린거 아냐? 임마 여자 얼굴을 보이게 해줘야 찍을거
아냐! 에이 쌍!
성기 렌즈에서 눈을 떼고 펄썩 주저앉아 버린다.
(F.O)
#50 (F.I) 정숙의 방
동식의 출근준비를 돕고 있는 정숙. 넥타이를 집어 준다.
전화벨. 정숙 받는다.
정숙 여보세요...
#51 D.P점
재석 아! 강여사!
#52 정숙의 방
정숙 (당황하며) ...잘못 거셨읍니다...
놓고 돌아서는데 (E) 다시 울리는벨.
정숙은 다시 돌아서 전화대로 가며.
정숙 (수화기 들고) 여보세요... (더욱 난처해서) ...여긴
가정집이예요!
수화기를 놓는다. 미처 돌아 서기도 전에 또 다시 울린다.
동식 전화 이리 주...
정숙 괜찮아요... (수화기 들고) ... 여보세요...
#53 D.P점
수화기를 든 재석.
재석 부인 정말 너무 하십니다!
정숙 (소리) 글쎄 아니라잖아요!
찢어질듯 놓이는 소리에 재석은 수화기를 떼며 상을 찡그린다.
성기 곁에 남편이 있는거야... 지가 이기나 우리가 이기나
장기전으루 가 장기전으루... 그 식모 계집애는 뭘하고
있기에 전화도 안 받누?
재석 그러기에 말이다... 그애만 받아도 나오건 안나오건 장소와
시간 약속은 됐을텐데 말야...
성기 야 또 걸어! 자꾸 걸어봐 남편이야 어차피 출근할거 아냐?
하면서 다이알을 돌린다.
성기 야, 신호 간다...
하면서 수화기를 준다. 재석은 수화기를 받아든다.
#54 정숙의 집 (응접실)
울어대고 있는 전화벨. 황급히 들어와서 스읫치를 올리며 수화기를
드는 현자.
현자 여보세요... 네 그렇습니다...
재석 (소리) 강여사 계십니까?
현자 아, 선생님 이시군요!
재석 (소리) 아, 아가씨군! 인사가 늦었는데 아가씬 누구시죠?
현자 (장난스럽게 웃으며) 나 이집에 있는 사람인데요... 선생님
전화를 하두 받으니까 인젠 금방 알아요... 선생님은 우리
아주머니 좋아하시죠?
#55 D.P점
재석 무슨 소리죠? (놀란다.)
현자 (소리) 호호호... 아무한테도 얘기 안할테니 걱정마세요...
재석은 기회를 잡은듯 눈을 반짝이며.
재석 허허... 아가씬 이쁘게 생긴것 같은데?
#56 다시 응접실
현자 (능란하게) 뭘요 이쁘진 않지만 귀여운데는 있데요!
재석 (소리) 목소리만 들어도 만나고 싶은데...
현자 아이 목소리를 듣고 어떻게 이쁜지 알아요... 아주머닌요?
지금 아저씨 출근하시는데 대문까지 나가셨어요.
(목소리를 떨구며) 선생님 오실라면 오셔두 돼요. 낮에는
괜찮아요... 안녕...
속이 후련한듯 즐겁기만 하다.
정숙 (들어서며) 웬 수선이냐?
현자 조금만 일찍 들어 오실걸 그랬어요... 지금 막 장선생님
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즐거운 수선이다.
정숙 (질린다.) 장선생이라니?
현자 아이 있지 않아요?... 아줌마들이 얘기하시는거 다
들었어요...
정숙 (따끔하게) 너 주둥일 함부로 놀렸다가 경칠줄 알아라
괜히...
하며 소파에 지친듯 앉아버린다.
현자 (시무룩 해지며) 전 아무한테두 그런 얘기 안해요...
정숙 (누그러지며) 그래 알았어.
현자 입을 삐쭉하며 나간다.
#57 D.P점
재석 야, 식모 계집애가 여간내기가 아닌데...
성기 그런집 식몰수록 응큼하고 눈치 빠른거야...
재석 잘못하면 우리가 큰 코 다치겠어...
성기 자식... 시작도 하기전에 엄살야.
재석 야, 근데 말이다 이번에는 좀 이상한 예감이 든단 말야...
성기 이상한 예감이란 뭐야 도대체! 너 정말 그 여자한테
반해버린거 아니냐?
재석 설마!... 그렇지야 않겠지...
성기 그럼 됐지 뭘 그래... 자 어서 가봐! 연락 잊지말구...
망원경을 끼운 카메라를 들어 보인다. 일어서는 재석.
#58 정숙의 방
소희와 민아가 와 있다.
민아 얘, 정숙아 미스터 장 요새... 치근거리지 않니?
정숙 (얼른) 아니... 굉장히 순진한 청년인가부지?
소희 얼씨구... 네가 뭘 안다고 춤방 놈팽일 보고 순진이구 뭐고
하니?
정숙 아이 왜 모르니? 사실은 말야... 오늘 아침에 미스터 장이
전활 거는 바람에 혼났어...
소희 아빠 있는데?
정숙 응. 그러니까 혼났지... 잘못 걸렸다고 했더니... 세번씩이나
계속해서 거는거야... 막 울구싶드라 정말.
민아 그랬을 거야 그래서?
정숙 가슴이 아프지만 할수 없이 아니라구 소릴질렀드니 부인!
정말 너무하십니다 그러는데 우는 것 같이 들리잖아...
민아 얘 조심해! 느이 남편이 그런걸 알아 봐라... 까닥하면 신세
조진다...
소희 그 녀석 배짱이 여간 아닌데?
이때 현자가 들어선다.
현자 아주머니... 손님 오셨어요...
정숙 손님? 누구든?
현자 아저씨 회사에서 오셨다나 봐요. 응접실에 오셨어요...
정숙 그래?... 나좀 나갔다 올께...
하며 현자를 따라 방을 나간다.
#59 동. 응접실
재석이가 앉아 있다. 들어오는 정숙.
정숙 (까무러칠듯) 어머...
재석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 왔읍니다. 어쩔수 없었읍니다.
정숙 ...(동요를 억제하고 있다.)
재석 ... 무례를 용서하십시요...
정숙 (가라앉은 소리로) 아침에 전화 했을땐 아빠가 곁에
계셨어요...
재석 그런걸로 짐작이 갔읍니다...
정숙 앉으세요...
재석 (앉으며) 올때까진 그저 부인 얼굴만이라두 봐야겠다는 일념
때문에 몰랐는데 막상 들어오니 불안해 지는군요...
정숙 아빤 퇴근전에 들어오신 일은 없어요...
재석 네...
정숙 얘 현자야... 저 좀 나갔다 오겠어요...
하며 나간다. 재석은 담배에 불을 당긴다.
#60 정숙의 방
들어오는 정숙.
소희 누구야?
정숙 (조심스럽게) 얘 어떡허지? 미스터 장이야...
민아 뭐? 그친구 정말 보통 뱃보가 아닌데?
소희 정숙이 너 꼬릴 친거 아냐?
정숙 꼬린 내가 무슨...
그러나 불안속에 무언가 생기가 감돈다.
소희 얘! 기왕 춤추는 남자가 왔는데... 우리 춤이나 출까?
정숙 어머 큰일 날 소리!
소희 느이 남편 낮에는 안들어 오잖어!
정숙 그야 그렇지만...
소희 그럼 됐지 뭐냐... 괜찮어 얘!
저고리를 입으며 수선을 떤다.
#61 정숙의 방 응접실
재석이가 전축 앞에서 선채 레코들 고르고 있다. 들어 오는 민아,
소희, 정숙.
소희 (신이 나서) 미쓰터 장... 강철 심장인데...
재석 아! 두분께서두 오셨군요 죄송합니다...
소희 훗후 어련 하겠어? 이렇게 모이기두 힘든데 미스터 장 우리
춤이나 춥시다!
정숙 판이 좋지 않은데...
소희 배부른 소리 그만해라... 아무렴 전축이 뺀드 따라 가겠니?
하면서 전축에 판을 건다. 멋진 블루스가 새어 나온다.
소희 우리 둘이서 추자...
지긋이 바라보며 다가드는 재석의 눈초리에 못이기는듯 정숙은
재석과 포즈를 취한다. 바로 이때다.
(E) 부자 울리면서.
동식 (소리) 현자야... 현자야...
정숙 흑!
하고 놀라 떨어진다.
소희 아빠 아냐?
모두들 질린다.
(E) 대문 흔드는 소리.
정숙 (파래져서) 어떻게 하지...?
대단히 긴장들이다.
소희 할 수 없지... 뒷일은 내게 맡기고 어서 나가봐...
정숙 (울상이다.) 이렇게 해 놓고 어떻게 나가나...
소희 글쎄 나가봐... 안나가면 더 수상하단 말야... 어서!
정숙 너만 믿는다...
하며 나간다. 소희와 민아 재석은 소파에 앉는다.
동식 (소리) 손님이 오셨군!
정숙 (잦아들듯) 다 당신이 아시는 친구예요!
정숙과 동식이가 들어온다.
소희 안녕하세요? 조전무님...
동식 아이구 어서 오십시요... 최여사도 오셨군요.
민아 죄송합니다...
소희 얘 참! 인사드려라... 매부가 늘 얘기하시는 동성산업의
조전무님이시다... 제 외사촌이예요...
재석 첨 뵙겠습니다... 장재석입니다...
동식 (사무적으로) 반갑습니다... 조동식입니다... 여보 귀하신
손님들인데 맥주라도 내오지 그래...
정숙 네...
하며 방을 나가는 동안.
소희 호... 귀하긴요... 매일 같이 오는게 미우시면서...
동식 핫하... 그럴리야 있겠읍니까? (재석에게) 편히 앉으세요.
어려워 마시구.
소희 어머나... 말씀 낮추세요...
동식 그래도 될까요!
소희 그럼요... 재석 너 오늘 원 풀었구나.
재석 하두 매부께서 조전무님 말씀을 하셔서 사실은 한번 회사루
찾아가 뵐까 하든 참이였읍니다.
동식 허허 이거 영광인데요...
소희 미국에서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62 정숙의 방
화장대 앞에 앉아 있는 정숙. 두근거리는 가슴 때문인지 숨만 가쁘다.
한숨을 푹 쉰다. 또아 벌컥 열린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정숙. 경대에
들어선 동식.
동식 (경대 속에서) 당신 어디 아퍼?
정숙 아뇨...
동식 (경대속에서) 얼굴 빛이 좋지 않은데? 나 짐좀 챙겨야겠는데
현잘 시킬까?
비우시는 시간이 훨씬...
동식 핫하... 그럼 어떻게 하나... 아주 직장을 고만둬 버릴까?
정숙 ...전 불안해서 그래요...
동식 내가 바람피울까봐? 염려 말아요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 테니...
정숙 저두 목석은 아니란 말에요.
동식 핫하... 알았어 내 요다음 해외 여행 갈땐 당신도 동행
합시다 응? 그렇게 하지 자, 기분 고쳐요...
그제야 놀란듯 돌아 앉으며.
정숙 짐을요?
동식 음... 부산 좀 다녀와야겠어...
정숙 또 출장이세요?
동식 음! 이번엔 한 이틀 정돈데 뭘 그래...
정숙 당신은 집에 계시는 시간보다.
#63 응접실
제법 맥주병들이 놓여 있다.
민아 넌 어쨌든 알아줘야 해. 악당치구 최고 악당이야!
소희 흥! 늙은일 바라구 사는 년인데 그런 재간두 없으면
어떡하란 말야...
재석 좌우간 전 십년 감수했읍니다...
소희 이것봐 미스터 장이 십년이면 우리 정숙이는 이십년
이라는걸 알아야 돼...
도어 열리고 동식이가 들어선다.
동식 이거 손님들 계신데... 전 이만 실례해야 겠읍니다...
소희 아니 왜요?
동식 부산에 출장을 가게 되서...
소희 아이 이걸 어째 전무님이 들어오시길래 진탕 좀 먹을려구
했는데...
동식 허허... 집사람에게 잔뜩 사내라고 하십시요... 자 미스터 장
이거 안됐어...
재석 별 말씀을... 다녀 오십시요...
동식 자... 많이들 노시다 가십시요...
#64 대문 밖
나오는 동식. 뒤따라 정숙과 현자 나온다.
동식 들어가요.
현자 아저씨 안녕히 다녀오세요.
동식 오냐... 아직 꼬마 안데릴러 가두 되니?
현자 인제 갈꺼예요...
정숙 (알수 없어) 조심하세요...
동식 문단속 잘해요...
하며 차에 오른다.
#65 D.P점
명옥 들어서며.
명옥 어머 미스터 장 어디 갔어요?
성기 글쎄...?
명옥 (시계를 보며) 한시에 여기서 만나기루 했는데...?
성기 그래? 그럼 들어오겠지 뭐! 미스 안 마침 잘 왔어 잠깐 가게
좀 봐줘.
명옥 왜 점원두 어디 갔어요?
성기 응 심부름 보냈어... 부탁해.
성기 나간다. 명옥 안쪽으로 들어와 앉는다. 그리고 이것 저것
책상 위의 물건들을 뒤적여 본다. 두툼한 장부책 갈피에 4,5매의
사진이 끼워져 있다. 무심코 명옥의 손이 들어 올린 사진. 여자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지만 재석의 도취된 듯한 갈대밭의 키스 장면.
명옥이 바르르 입술을 떨며 질투의 불꽃을 튀긴다. 이윽고 그
사진들을 자기 빽속에 집어 넣는다.
#66 동성산업 전무실
동식이 막 문을 나서려고 하며 남자 비서에게서 가방을 받아든다.
동식 나오지 말게... 있다 서국장 한테서 연락이 오거든... 아
내가 댁으루 장거릴 걸기루 하지!
전화벨. 비서 달려가 받는다.
비서 네 전무실입니다... 방금 떠나시는 길인데요 네 알았읍니다.
(수화기 놓고) 전무님 사장님께서 좀 올라오시랍니다.
동식 그래?
동식 가방을 놓고 나간다.
#67 민사장실
민사장, 심각한 얼굴로 앉아있다.
노크소리.
민사장 들어와요.
동식이 들어선다.
민사장 아 조전무... 아무래두 자네가 내려가면 상공부 일이 묘하게
어긋날것 같은데... 부산건은 오상무를 내려 보내세... 오늘
안으루 결정을 봐야겠어.
동식 그러잖아두 밤에 장거릴 걸 생각을 하구 있었읍니다.
민사장 전화 가지군 힘들어... XX각에 예약을 하세!
#68 박사장실
박사장과 부산서 올라온 김소장이 앉아있다.
박사장 헛허... 내 그럼 위로 술한잔 사지!
김소장 헤헤... 이왕 한턱 하실 바엔 아르바이트 홀이 좋습죠!
박사장 에이 여보게! 거기야 어디 점잖은 체면에...
김소장 하하 모르시는 말씀... 거기야 말루 점잖은 가정 부인들이
모이는 곳이죠 외도야 유부녀를 뺄수 있나요? 비밀이 샐
염려두 없구...
박사장 흠- 그래?
김소장 서울 장안에 00개소가 있읍니다... 하루에 동원되는
가정부인들의 수가 줄잡아 천 오륙백명... 이거 작은 숫자가
아닙니다...
박사장 아니 자넨 부산 출장소장이 서울 사정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아나...
김소장 헛허... 아르바이트 홀에 관해서는 묻지 마십쇼...
훤 합니다요... 헷헤 홀 가운데 쪽은 물결이 뜸한데 그리로
몰고 들어갈라 치면... 이그 몸살납니다 불은 어둡겠다
음악이 치근거려 몸안에 여자 있겠다...
박사장 으-ㅁ 이거 듣는 사람이 다 근질 근질해 지는 군!
김소장 (신이나서) 그 재미를 여태 모르셨다니...헷헤... 낮에 오는
부인 ...초저녁에 오는 부인... 늦게 오는 부인... 장바굴
들고 오는 부인...앞집에다 옷을 맞겨 놓은 부인...
귓바퀴에다 입김을 쏘여 놀라치면... 이그! 몸살을
냅니다요...
박사장 (침을 꿀걱 삼키며) 당장 가세... 낮에 오는 부인! 초저녁
부인!
김소장 핫핫... 저녁먹구 장소 바꿔서... 밤늦게 오는 부인까지
차례로 보여 드리죠!
#69 다른 아르바이트 홀
들어서는 박사장 김소장.
김소장 (만장을 둘러보고) 사무실 시간으로 따지면 오후 세시...
그러나 여긴 밤중입니다... 저리로 가십시다...
부인네들이 많은 곳으로 가리킨다.
박사장 있는 곳.
김소장 어떻습니까... 하나 골라 잡으십시요...
박사장 툇자를 맞지 않을까?
김소장 그야 으례 있는 겁니다... 조금도 당황하지 마십시요...제가
한번 시험을 하겠읍니다.
김소장이 의젓하게 간다. 어느 부인에게.
김소장 실례하겠읍니다... 한번 잡을실까요?
부인A 쉬고 있는데요...
김소장 미안합니다... (다른데에 가서) ...실례합니다 추실까요...
부인B 잘 못춰요...
김소장 겸손의 말씀이시겠죠... 자아...
부인B 나온다. 으젓하게 인사를 하고 리드를 한다. 박사장에게
윙크를 한다.
박사장 (혼자소리) 요지경속이군! 이속에 내 마누라가 와 있지야
않겠지...
슬며시 일어나서 어떤 부인에게 허리를 굽히고.
박사장 한번 추실까요?
#70 아르바이트 홀
소희가 일어선다. 젊은 청년들과 포즈를 취하고 춤의 물결로 싸여
들어간다. 어느 구석. 거의 움직이지 않는 정숙과 재석 서로의 볼은
맞닿아있고 정숙은 눈을 감았다.
재석 ...부인...
정숙 ...응...?
재석 ...조용히 단 둘 만이 얘기하고 싶군요.
정숙 ....(동감이지만 대답은 못한다.)
재석 ... 나갑시다...
정숙 ...어딜 가아...
재석 어디 조용한 곳에 가서 저녁이나 잡수시죠...
정숙 ...친구들은 어떡허구?
재석 그분들은 사라지셨읍니다.
#71 홀 건너편 길
비스듬이 택시 안에 대기하고 있는 성기 몸을 일으킨다.
성기 운전수 슬슬 움직여 봅시다.
발동이 걸린다.
#72 다른 택시 안
명옥 앞차가 눈치 채지 않게 따르세요!
택시 조용히 스타트 한다.
#73 아르바이트 홀 (밤)
소희가 새파랗게 젊은 청년하고 춤을 추고 있다. 무드 춤이라
아니 할수가 없다. 입구쪽으로 들어오는 박사장과 김소장.
김소장 보십쇼... 사장님 여기도 여전히 붐빕니다요...
박사장 알수 없는 일들이군... 그래 이 예펜네들의 남편들은
원한다는 거야...
김소장 헤헤... 오죽한 남편들이면 예펜네가 이지경이
되겠읍니까요... 저기로 가시죠... 저리...
역시 부인들이 많은 곳으로 안내한다. 그리고 가는 박사장과 김소장.
돌아가고 있는 소희. 김소장과 박사장이 하나씩 차고 나간다.
박사장이 춤을 추다가 한곳에 시선이 멎는다. 볼을 맞대고 추는 소희.
박사장은 거세게 파트너의 가슴을 밀고 소희에게로 간다. 버티고
선다.
소희 ...어머...
소스라치듯 포옹을 풀며 석상처럼 선다.
박사장 으-ㅁ 괘씸한 년!
소희 홱 몸을 돌려 달려 나간다. 체면도 없이 뒤따라 달려나가는
박사장.
#74 소희의 방
한 구석으로 쾅 나가 떨어지는 소희.
박사장 (씨근대며) 꼴 좋다! 이년! 만날 곗돈 곗돈 하구 돈 타다가
젊은 놈 끼구 겨우 그 지랄이냐?!
소희 이를 뽀도독 갈고 일어서드니 박사장에게 달려들어 확 얼굴을
할키며.
소희 그래 젊은 놈 끼구 내가 어쨌단 말얏!! 내가 가면 안될 데를
당신은 왜 왔어 왜 왓! 누군 밸딱지두 없는줄 알어욧!
소희의 볼에 따구가 올라가며.
박사장 이게 정말 죽구싶어 환장을 했나 어따대구 허는 버르장
머리야 버르장 머리가! 당장 나가!!
소희 (눈에 무서운 독기가 서리며) 누굴 보구 나가래는거야? 왜
나가! 이건 엄연히 내 집이야! 내 피둥 피둥한 몸뚱아릴
팔아서 산 내집이야 이 너구리 같이 늙은 영감태기...
생각만해두 몸써리가 난다. 몸써리가 나!
#75 소희 집 대청
부들 부들 떨며 엿듣고 있는 식모 갑순이.
박사장 (소리) 닥쳐! 이년.
쾅하고 나가떨어지며 와르르 유리 깨지는 소리.
#76 정숙의 응접실
돌아가는 전축. 현자가 석고 인형을 들고 서툰 춤을 추는 것이다.
현자 스로 스로 퀵 퀵... 스로 스로 퀵퀵... 하나 하나 스핑만 돌고
쭉쭉 나간다... 스로 스로우...
대단히 신이나서 추고 있는 것이다.
(E) 부자소리.
현자 에이 좀 천천히 오지...
인형을 제자리에 놓고 뛰어 나간다.
#77 대문 안
현자가 빗장을 열며.
현자 벌써 오세요?
동식 (들어서며) 나다...
현자 어머 출장 가신다드니...?
동식 못갔다... 아주머니는?
현자 나가셨는데요!
동식 혼자?
현자 김아주머니 서꺼랑 나가셨어요.
#78 정숙의 방
이불도 안깔고 그냥 방바닥에 엎으러져 잠든 호민. 동식이 들어서며
뒤따라 가방을 들고 들어온 현자에게.
동식 아이는 왜 제 자리서 재우지 않구...
현자 아이 지금 막 잠이 들어서 갔다 눕힐 참이였는데...
동식 미애는?
현자 과외 공부서 아직 안 돌아왔어요.
동식 (불쾌해진다.) 날마다 이렇게 늦냐?
현자 그럼요... 아 아주머니요? 아주머닌 곧 오신다구 하구
나가셨는데...
눈치를 보며 호민을 안고 나가려 한다.
동식 호민인 놔둬라 엄마 오면 데려가구.
현자 진지는요?
동식 먹었다...
#79 어느 호텔의 일실 (밤)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야경. 네온 불이 명멸하고 있다. 정숙이가
푸렘 인하여 창가에 선다. 장도 나란히 서서 어깨를 끌어 안으며.
재석 부인 여기 오신걸 후회하십니까...
정숙 글쎄... (적적하게) 미스터 장 나 미스터 장을 누구에게도
주고 싶지 않어...
재석 저도 마찬가집니다... 허지만 부인께는 가정이 있지
않습니까?
정숙 미스터 장! 난... 솔직히 말해서 가정도 버릴순 없어...
허지만 미스터 장을 다른 사람에게 뺏기긴 싫어...
재석 부인... 저의 소원입니다. 오늘 밤 하루만 이라도 부인을
갖고 싶습니다 안될까요?
정숙 ...(물리칠수 없는 유혹이다.)
재석 와락 정숙을 껴안는다. 입술에 귀에 목에 퍼부어지는 격렬한
키스. 드디어 침대위에 쓰러지며 재석은 정숙의 치마끈을 풀른다.
노크소리. 소스라치게 놀라는 두 사람. 정숙은 끌러진 치마끈을 매고
매무새를 고치며 떨고 있다. 다시 노크소리.
재석 누구야?
뽀이 (소리) 죄송합니다... 숙박계를 써주셔야겠는데요...
재석 숙박계는 뭐 새삼스럽게 숙박계야 임마! 적당히 써 놔둬!
뽀이 (소리) 알았읍니다...
재석 다시 정숙을 껴안으려 하자 불안한듯 바라보며.
정숙 ... 집에 전화라두 걸어야겠어...
침대머리의 수화기를 재석이 집어준다. 뚫어지듯이 지켜보는 재석.
정숙 (수화기 들고) 여보세요... 34국의 1966번 좀 대 주세요...
속히요...
#80 응접실 (정숙의 집)
현자가 전화를 받는다.
현자 예 그렇습니다... 어머 아주머니...
(내실쪽에 신경을 쓰며)...큰일 났어요...아저씨가
들어오셨단 말이예요... 제가 적당히 얼버무레 놨는데 글쎄
미애가 돌아와서 요새 엄마가 맨날 나가서 늦두룩
안들어 온다구... 지금 술 잡숫구 계세요... 빨리 오세요.
무서워 죽겠어요.
여기 동식이 침울한 얼굴로 들어선다. 쩔쩔매는현자.
동식 누구냐.
현자 제...친구예요...
동식 이리 내봐!
현자 얘! 전화 끊어..
재빨리 수화기를 놓는다.
#81 호텔의 일실
정신없이 서있는 정숙 간신히 수화기를 올려 놓으며 가볍게
오열한다.
재석 (다가서며) 왜 그러시죠?
정숙 (간신히) 미스터 장 난 어떻게 함 좋아...
재석 무슨 일 이시죠...
정숙 아빠가 돌아왔데...
재석 출장...?
정숙 안가셨나봐... 처음부터 거짓말인지도 몰라...
재석 흠...
정숙 (구원을 찾듯) 어떻게 하면 좋지?
재석 ...
정숙 (애처럽게) 미스터 장...!
재석 들어 가셔야죠...
정숙 어떻게 아빠 얼굴을 대하지...
재석 ... 태연하셔야죠... 우리가 뭐 저지른 일은 없잖습니까.
기둥에 얼굴을 묻는 정숙. 찢어지듯 아픈 가슴이며, 뭔가 의지할
곳을 찾는듯한 처절한 동작이다.
정숙 ...미스터 장... 미안해...
#82 호텔 앞 (밤)
서있는 택시. 명옥이가 지키고 있다. 질투와 복수에 이글거리는
무서운 눈초리. 잠시후 정숙과 재석이가 나온다. 택시를 잡는다.
정숙이가 탄 택시가 떠난다.
명옥 저 차를 따라가 주세요...
뒤따는 명옥의 차. 재석의 앞을 지날때 허리를 굽힌다.
(O.L)
#83 정숙의 집 대문 (밤)
정숙이 대문을 들어서자 문이 닫긴다. 명옥이가 나타나서 주소와
문패를 확인한다.
명옥 삼청동... 조동식... 조동식...
하고 돌아선다.
#84 정숙의 방
동식 들었든 그라스를 노며 의외로 부드러운 말소리.
동식 ...늦었구려...
정숙 (질린채) 죄송해요 여보...
동식 (바라보며) 당신 얼굴 빛이 왜 그래 어디 아픈 것 아냐?
정숙 ...(눈물이 글썽) 아니예요... 가끔 현기증이...
동식 거 병원엘 가 볼 일이지... 내일이라두 병원엘 가요...
너무도 부드러운 그 말에 그만 확 솟구쳐 느껴버리는 정숙.
동식 ...내가 너무 당신이나 애들한테 등한했어... 요새 당신이
자주 집을 비운다는 얘길 듣구 나 스스로의 반성을 해
본거야...
정숙 ...죄송해요...여보...
동식 자아... 피곤할텐데 어서 잡시다.
#85 명옥의 방
들어오는 명옥. 스위치를 올린다. 재석이가 거들떠 보지도 않고
멍하니 천정만 바라보고 침대에 누워있다. 명옥 쏘아 본다.
재석 ...(여전히 그 자세)
명옥 (빽을 홱 던지며) 흥! 인젠 나두 빠 그만두구 아르바이트
홀이라는델 나가야겠어요!
재석 무슨 소리야 거기가 돈 생기는 덴줄 알어?
명옥 돈은 벌어 뭘해요 여러 남자 상대하구 놀면 되지...
재석 (씩 웃고) 좋두룩! 딱지 맞구 울지만 말어.
명옥 웃기지 말아욧... 내가 왜 딱질 맞어! 미스터 장
조동식이라는 사람 알죠?
재석 (놀랐다.) 뭐? 누구야 그 사람이...
명옥 시침떼지 말아요...
재석 글쎄... 조동식?
명옥 그 부인하곤 언제부터 호텔 출입을 했느냐구요!
재석 뭐?! (비로소 벌떡 일어난다.) 개새끼 불었구나!
명옥 흥! 개새낀지 소새낀지를 미행했어요 아무리 둘이 짜구
빼돌려두 난 당당히 미스터 장의 행적을 알아야 할 권리가
있어요! (도어 열고)... 나가 줘요!
재석 아니... 왜 이래?
명옥 나가라구요! 앞으로 그따위 짓을 계속하면 철창 신셀
질거예요...
재석 이봐 명옥이...
명옥 지금 심정으론 같이 있고 싶지 않아요! ...나가 줘요...
재석 아주 절교 하는거지?
명옥 흥! 왜 절교예요? 난 미스터 장에게 의지할 권리가 있는
여자예요 아시겠어요? 난 숫처녀로 미스터 장을 알았구
지금 당신의 아일 임신하고 있단 말예요!
재석 알구 있어. 이것봐 명옥이...
명옥 얘긴 다음날도 할 수 있어요! 베기싫으니까 지금은
나가세욧!
재석 이거야 원... (나가며)...오해는 금물이다...
도어를 쾅! 닫어버리는 명옥.
명옥 망할 자식들!
하며 도어를 쏘아본다.
#86 정숙의 방
평화롭게 잠든 동식의 얼굴. 그 옆에 잠 못 이루는 정숙의 고뇌에
싸인 얼굴이 있다. 흥건히 눈물에 젖은 베개 카바. 어디선가 3시를
알리는 괘종 소리.
(F.O)
#87 (F.I) 공중 전화 박스
전화번호부를 뒤지고 있는 명옥.
명옥 (손가락으로 훑으며) 조, 조... 조. 동. 식... 조동식...음... 수화기를 들고 돈을 떨군다. 번호부와 대조를 하며 다이얼을 돌린다.
명옥 24에 1966...
통화중의 신호가 울린다.
#88 정숙의 응접실
수척해진 정숙이가 전화를 하고 있다. 조심스럽게 가라앉은 음성.
정숙 정말 미안해... 결국 우린 서로 만나지 말아야 했을
사이였어...
재석 (소리) 부인!...
정숙 자꾸 이러면 서로가 더욱 괴로워 질뿐야. 미스터 장! 전화
끊어 줘요...제발.
눈물조차 글썽이며 애원한다.
#89 D.P점
성기는 없고 재석이 혼자 앉아 우울한 얼굴.
재석 부인!... 마지막으로 한번... 그저 부인의 건재한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돌아서겠읍니다. 이대론 정말 헤어질 수
없읍니다.
#90 응접실
정숙의 볼에서 흘러 내리는 눈물. 정숙은 가만히 수화기를 탁자 위에
놓는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얼굴을 묻는다.
재석 (소리) 부인!... 부인!... 부인!...
오열하는 정숙.
#91 공중전화 박스
화가나서 다이알을 돌리고 있는 명옥. 통화중-
명옥 체! 누가 이기나 보지.
#92 D.P점
재석 지친듯 수화기를 놓는다. 그 눈에 서리는 고뇌의 빛. 문득
일어나 안쪽으로 간다. 암실이라고 쓰인 도어를 노크한다.
성기 (소리) 안돼... 좀 기다려라.
그 도어에 등을 대고 기대선채 착잡한 생각에 잠기는 재석.
#93 암실 안
현상액 속에서 윤곽을 나타내기 시작하는 재석과 정숙의 러브신
사진들. 중국요리집 방안. 호텔입구로 들어가는 두 사람.
갈대밭에서의 데이트. 성기의 눈이 만족스러운듯 웃는다.
#94 정숙의 응접실
고개를 드는 정숙. 탁자에 놓인 수화기를 살며시 올려 놓고 일어서서
나가려는데 따르릉 벨이 울린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정숙, 하는수
없이 수화기를 든다.'여보세요'하는 여자의 소리. 그제야 안도의
숨을 쉬며 귀에다 댄다.
정숙 네...
명옥 (소리) 조동식씨 댁이죠?
정숙 그렇습니다.
명옥 (소리) 부인이세요?
정숙 ... 그런데요 누구신지...?
명옥 (소리) 댁에선 절 모르시지만 전 부인을 잘 아는 사람이예요.
정숙 (약간 불쾌하다.) ... 그런데요...?
명옥 (소리) 부인을 만나서 할 얘기가 있어요.
정숙 (완전히 기분 상해서) 도대체 댁은 누구세요?
#95 암실 안
수조 속에 완전히 드러난 사진이 옮겨져 있다. 들여다보고 있는
재석의 착잡한 눈길.
성기 (아랑곳 없이) 오늘 당장 나오라구 해!
재석 ........
성기 왜 대답이 없어? 임마!
재석 야 성기야... 너 이 문제만은 손 떼다우.
성기 뭐? 어떡허겠다는거야 (비웃으며) 흥! 장재석이두 골루 갔군
야 임마 이제와서 네까짓 자식이 진실이니 양심이니 하구
깨달아 봤댔자 아무두 믿어줄 인간은 없는거야!
재석 아무두 안믿어두 좋다 강여사만은 속이구 싶지 않다!
성기 미친 자식! 그 여자가 가정을 버리구 너한테 온다든?
재석 .....
성기 집어쳐! 유치한 소리 작작하구.
재석 성기야 부탁이다!
성기 좋다 너만 빠져라 나 혼자 한다!
#96 소희의 방
소희는 환히 들여다 보이는 네그리제 바람으로 보료에 기대듯
누워있다. 그얼굴에 멍이들었고, 그 앞에 질린 정숙이가 앉았다.
소희 니나 내나 싸지 싸아... 눈치껏 놀지 호텔엔 왜 가니? 이
바보야...
정숙 장난이 아냐... 어떻게 하지?
소희 나간다고 그랬니?
정숙 그럼 어떻게 하니? 당장 아빠한테 간다는데...
소희 (일어나며) 에이구 이 원수 덩어리야... 바람은 아무나 필수
있는건줄 아니? 현장에서 붙들려 와두 최소한도 나 정도는
사내를 콘트롤 할줄 알아야지.
정숙 ...사실 난 아무 일 없었어...
소희 흥! 그걸 누가 믿어... 장은 알구 보니까 소문난 플레이
보이래드라.
정숙 ...정말?... 허지만 나한테는 신사였어...
소희 신사 좋아하네!
#97 공 다방
어느 구석진 자리에 명옥이가 앉아 있다. 손에 만지작거리고 있는 꽃
한송이. 입구 쪽에 정숙과 소희가 나타난다. 두리번 거리던 두 사람은
명옥의 꽃을 보고 가까이 온다.
소희 실례합니다... 강여사를 기다리시죠?
명옥 강여산지는 모르지만 조동식씨의 부인을 기다리고 있어요...
소희 얘 앉아라...
두 사람은 앉는다. 명옥은 소희를 쳐다본다.
소희 쳐다볼 것 없어! 용건부터 말해 봐...
명옥 댁에서 그렇게 세게 나오실 입장이예요?
소희 아니 무슨 말버릇이 그래? 어른한테... 왔으니까 흥정을
하자구? 얼마면 된다는 거야...
명옥 (차가운 미소) 얼마나 가지고 오셨어요?
소희 학생이 불러냈으니, 먼저 얘길 해야지?
명옥 조용 조용 말씀하시란 말씀이예요! 내 입 하나에 한여자가
죽고 살고 하는거에요!
소희 그걸 누가 몰라? 그러니까 나온게 아냐? 어서 얘기해 봐...
다분히 공갈로 대하는 소희를 보자 오히려 정숙이가 겁난다.
정숙 얘... 살살 얘기 해...
사정을 한다.
소희 넌 가만 있어... 딱 부러지게 얘기 하라구... 어서...
명옥 (웃는다.) 얼마를 생각하고 오셨어요?
소희 그럼 이번 한번으로 모든건 끝나는걸로 하는거야...
명옥 그야 물론이죠...
소희 약속할 수 있겠어?
명옥 있다지 않아요...
소희 좋다...
핸드백에서 만원다발을 꺼내주며.
소희 받어... 그리고 젊은애가 이런짓 하면 못써...
명옥 이것 보세요! 젊은애가 하는 일에 겨우 이걸 받자고 해요?
흥! 난 가야겠어요!
명옥은 가버린다.
소희 이봐 학생!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리는 명옥.
소희 별 치사한 기집앨 다아 보겠네...
정숙 차라리 아빠한테 고백해 버릴까?
소희 미쳤니? 용서해 줄것 같애...
정숙 우리 아빤 용서해 주실지도 몰라... 내가 아무 일 없었다는
것만 알면.
소희 누가 증명해 주니? 그걸...
정숙 (울상이다.) 아빠한테 가면 어쩌지?
소희 당장 뛰어갈 여자는 아니야 며칠 두고 보자...
정숙 아냐 곧장 간댔어...
소희 글쎄 안 간다구... 고 기집애가 필요한건 돈이야... 아빠한테
얘기하면 넌 파멸이지만 걔한테 돈은 안생겨 알겠니?
정숙 아냐... 아빠한테 전화 걸래... 내 입으루 고백할테야...
일어설 판이다.
소희 (잡아 나꾸며) 얘가 정말.. 글쎄 흥분한다고 되는일이
아니란 말야... 이럴수록 마음을 차게 도사리는거야...
정숙 으흐흐흐...
오장을 찢어내는듯 울음을 터뜨린다.
#98 전무실
전화에다 대고 소리치고 있는 동식.
동식 (화를 낸다.) 아니 당신 지금 나에게 공갈을 치는거요? 그럼
뭐냔 말야...
(E)노크소리.
동식 들어와요!
정숙이가 들어온다. 동식은 손으로 소파에 앉으라는 시늉을 하면서.
동식 (화를낸다.) 글쎄 공갈이 아니면 뭐야... 뭐든지 확실히 알고
난 다음에 따져야 할거 아냐!
정숙은 질린다.
동식 알았어요! 저녁에 만납시다... 그래... (수화기를 쾅 놓으며)
... 별 거지같은 전화기 다 있네...
하면서 정숙의 앞에 와서 앉는다.
동식 그러잖아도 전화를 할려는 참이었는데 잘 나왔어...
정숙 네?
소스라치듯 놀란다.
동식 여보! 당신 정말 안되겠어 병원엘 가봐야지... 얼굴빛이 말이
아니군!
정숙 아니에요.. 여보...
동식 응?
정숙 저어...
동식 뭔데? 어서 얘기해봐요...
정숙 지금 온 전화가 무슨 전화에요?
동식 (웃으며) 당신 노이로제가 분명하군.. 당신이 신경쓸 문제가
아니야.
정숙 그래요?... 후... (땀이 흐른다.)
동식 자 일어나요 나가서 차 한잔하구 병원에 가봅시다.
정숙 괜찮아요... 저 집에 들어가겠어요.
동식 고집 피우지 말구... 어서!
정숙 아녜요... 그럼 저 혼자 가겠어요 병원에...
동식 꼭 가는거지? 돈 가지구 가요.
정숙 돈... 있어요.
#99 에레베타 앞
3. 4, 5 케이지가 돌아 문이 열리며 명옥이 나온다. 다가온 정숙이
소스라치게 놀란다. 명옥 싹 째려보고 가려한다. 그 손을 꽉 잡으며.
정숙 학생!
명옥 (뿌리치며) 회담은 결렬에요!
정숙 학생이 요구하는 말 뭐든지 들을께...만나줘!
명옥 뭐든지라구 분명히 말했죠?
정숙 ...응!
명옥 좋아요!
에레베타가 열린다.
명옥 따라 오세요!
둘은 안으로 들어가고 문이 닫긴다.
#100 정숙의 대문 앞. 안
현자 누구세요?
성기 아주머니 계시지? (봉투를 들고 섰다.)
현자 안계신데... 어디서 오셨어요?
성기 정말 안계셔?
현자 어머 왜 사람을 의심해요 댁이 뭔데요.
성기 어? 헛허허... 이거 실례했군.
현자 (누그러지며) 무슨 일루 오셨어요?
성기 꼭 뵙구 말씀드릴 일인데... 또 오지 뭐!
현자 늦게나 들어오실꺼예요 꼭 뵈야할 일이면 밤에 오세요.
#101 어느 공원
오가는 사람 별로 없는 한적한 공원 어느 벤취에 고개를 떨구고 앉아
있는 정숙과 명옥.
명옥 그따위 불륜을 저질르구두 돈이면 다 해결이 되는줄
알았겠죠 비밀을 돈으루 바꾸시려거든 백만원 내노세요!
정숙 ...백만원.... (질린다.)
명옥 아주머닌 백만원이 중해요 가정이 중해요?
정숙 ... 그야 가정이...
명옥 그렇겠죠... 그럼 백만원하구 미스터 장은?
정숙 ........
명옥 왜 대답을 못하세요? 그 정도의 가치두 없는 인간을 왜
상대하셨죠?
정숙 ... 가치 판단이 아니야... 인간의 애정을 어떻게 돈으루...
명옥 흥! 그럼 진실로 장을 사랑했다는 얘긴가요?
정숙 ........
명옥 장은 제 약혼자예요 전 뱃속에 그사람의 아이를 갖고 있단
말예요!
정숙 ...약혼자?! (이그러진다.)
명옥 제가 치사하게 돈을 목적으루 아주머닐 만나자고 한건
아니란걸 인젠 아셨겠죠? 아주머니한테 가정이 중하듯
제게두 그 사람이 중한거예요 다신 미스터 장을 안 만나다구
약속하세요!!
정숙 ...할께...
명옥 백만원을 걸구 맹세 하세요.
정숙 ... 지금은 없어...
명옥 지금 달래는게 아니예요 ...앞으루 아주머니 태도 여하에
따라 영원히 그 돈은 안물어두 되는거예요 (차게 웃으며) ...
단 그걸루 진실하다구 믿었든 두 사람의 사랑이 얼마나
가소로운 것이였드냐 하는 환멸은 맛 보시겠지만요!
정숙 ........
분하지만 대꾸할 말이 없다.
명옥 얘기는 끝났어요... 허지만 약속을 이행 안하시는 경우
아주머닌 백만원을 미스터 장은 철창 신세를 지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명옥은 차거운 일별을 남기고 총총히 사라진다. 허탈하게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정숙의 눈에서 비로소 줄지어 흐르는 눈물.
#102 맥주 홀
조그마한 분수가 치솟는 노천홀. 재석과 명옥이 마주 앉았다.
명옥 (비웃듯) 그 여자는 저하구의 약속을 어길수 없을꺼예요...
백만원이 무서워서라두.
재석 (쏘아보며) 그따위 단수에 넘어갈 내가 아냐.
명옥 단수라구 생각하세요? 그렇게 해서라두 미스터 장을 갖고
싶은 제 심정엔 이해가 안 가세요?
재석 ...나두 명옥이 문젠 앞으루 보상할 의무가 있다구 생각하구
있었어.
명옥 뭘루? 돈으루요?
재석 뭐든지 원하는 걸루!
명옥 뭐든지라구 했죠? 결혼해 줘요 그럼!
재석 그건... 할수 없다!
명옥 왜? 왜 못해요?
재석 ........
명옥 흥! 남의 유부녀... 자식이 둘씩이나 달린 그 여자를
사랑한다는거죠?
재석 그렇다면 어쩔테야?
명옥 (쏘아보며) 날 허술하게 보지 말라구요... 난 한번 헌다면
허는 여자예요 결혼을 빙자한 간음죄 형법 제 삼백사조가
미스터장한테 해당된다는 사실을 알겠죠? 그리구 그여잔
조동식씨한테 얘기해서 제물로 짓밟아 버릴수 있는 자료를
가지구 있단것만 알아두세요!
재석의 눈에 서리는 고뇌를 뱀같이 차거운 눈초리로 바라보며
맥주를 들이키는 명옥, 빈 잔을 놓고.
명옥 난 먼저 가요 오늘밤 집으루 오세요! 오구 안오는건 미스터
장 자유에 맡기지만 안오시면 제 프라이드가 여지없이
꺾인걸루 알구 행동을 취하겠어요!
명옥은 싹 일어나 나간다.
#103 정숙의 방
옷을 갈아입고 있는 동식. 까운을 그의 어깨에 걸쳐주는 정숙.
동식 그래 병원에선 뭐래...
정숙 신경쇠약이래나 봐요...
동식 신경쇠약? 허허허 그것 봐! 내 진단이 비슷하게 들어 맞었지
않어.
정숙은 억지로 웃어보인다.
동식 뭐니 뭐니 해두 건강이 제일이야 당신 온천이나 어디
며칠 가서 휴양 좀 하구 오지 그래.
정숙 괜찮아요... 이러다 날꺼예요...
동식 신문을 집어든다. 바라보고 있는 정숙의 얼굴 위에.
정숙 (소리) ... 역시 고백 안하기를 잘한걸꺼야... 인젠 미스터
장을 잊어야 해... 차라리 아빠 말마따나 어디 며칠 멀리...
동식 (소리) 여보!
훔칠 놀라는 정숙.
정숙 네?
동식 놀래기는... 나 홍차 한잔 주구려... 당신 뭐가 그렇게
불안해서 그래... 마음을 느긋하게 가져요 난 바람 안
피울테니까 안심하구 핫핫...
정숙 여보...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나가 계시는 시간이 훨씬
더...
동식 핫하... 그거야 어떻게 하우 (달래듯) 아주 직장을 고만 둬
버릴까?
정숙 (차분히) 농담이 아녜요... 전 불안해서 그러는 거예요...
옷장 속에서 파자마 샤쓰 등을 꺼낸다.
동식 당신 안그러드니 요새 좀 노이로제 기운이 있는거 아니오?
정숙 당신의 잦은 출장 탓인지두 몰라요...
동식 여보! 이번 해외여행 때는 당신을 데리구 가지 응?
정숙 애들이 걸려서 어떻게 가요.
동식 그러니 이것두 안되구 저것두 안되구... 그럼 당신 나 없는
동안 영화구경두 좀 다니구 친구들하구 애들 데리구
교외에두 놀러가구 하구려 응? 그렇게 해요 당신 너무
집안에만 틀어 박혀 있으니까 노이로제가 된거야.
현자가 들어와서.
현자 아주머니 전화예요...
정숙 전화...?
질린듯 동식을 보는 순간 눈이 마주친다.
동식 누구냐?
현자 김아줌마예요...(우물쭈물)
동식 여보 밤에 하는 전화는 좀 삼가해 달라구 그래요...
정숙 네... 아 현자야 차물 얹어놔라.
하고 나간다.
#104 맥주홀 카운터 (밤)
수화기를 들고 있는 재석.
재석 강여사십니까? 접니다. 재석입니다... 강여사! 강여사!
#105 응접실 (밤)
수화기를 든채 말을 하지 않고 있는 정숙.
재석 (소리) 강여사! 강여사! 대답을 해 주십시요. 강여사!
#106 다시 홀 (밤)
처절하게 말하고 있는 재석.
재석 강여사! 제가 사과드리겠읍니다... 미스 안의 실례를 용서
하십쇼! 네? 강여사! 전 강여살 진실로 사랑하고 있읍니다.
#107 다시 응접실
정숙 미스터 장 인제 모든게 끝났다고 생각해줘! 난 미스터 장을
위해 약속을 한거야! 앞으로 제발 전화하지 말아줘.
이때 소리없이 들어서는 동식.
정숙 (모른다.) 자꾸만 전활하면 아빠가 오핼 하시는거야 끊어!
아이 그만 끊어!
조용히 수화기를 놓고 돌아서는데 동식이가 서있다.
정숙 ...헉!?
동식 잘했어! 아무리 친한 친구라두 전화라는 건 신경을 쓰기
마련인거야 당신 병에 해로워요.
정숙 쓰러질듯 소파에 주저 앉는다.
#108 D.P점
문앞에 떡 버티고 선 재석을 밀어 부치며.
성기 비켜 이 새끼야! 난 가야겠어!
재석 비겁한 자식! 너 정말 이러기냐?
성기 야 말귀 못알아 들어? 나 혼자 한다는데 왜 말이 많어?
그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재석의 주먹이 날으고 성기는 저만치
구석으로 나가 떨어진다. 흐르는 코피. 성큼성큼 다가가 성기 옆에
떨어진 봉투를 집자 박박 찢어버리는 재석. 성기 툴툴 털고 일어나며.
성기 너 날 쳤지? 맞구 가만 있을 나두 아니란 것쯤 알꺼다!
재석 야 맞어 죽기 전에 네가필름 이리 내놔!
성기 못내놓겠어.
재석 이놈의 집 몽땅 불 싸질르기 전에 어서 내놔!
재석 책상 서랍 선반위를 뒤지기 시작한다. 그사이 성기 재빨리
밖으로 달려 나간다. 눈이 뒤집힐듯 네가를 찾는 재석. 삽시간에
가게 안은 어질러진다. 재석 안쪽으로 가 암실 문을 연다. 수조 뒷쪽
쓰레기통 속까지 뒤진다. 현상되어 널려진 네가를 마구 뜯어 본다.
바닥에 너저분하게 널리는 네가 필름. 지친듯 의자에 주저 앉아
버리는 재석.
(O.L)
#109 밤 길
재석이 우울한 얼굴로 걸어간다. 골목에서 나타난 깡패 셋이 눈짓을
해가며 하나가 와서 재석의 어깨를 툭 어깨로 건드린다.
깡패A 이것봐! 조심해 걸어 왜 사람을 치는 거야?
재석 뭐? 이게 어따대구 시비야?
깡패A 어? 너 말 잘한다 야 이 제비같은 친구 어디가 좀 근지러운
모양이다.
말이 채 끝나기전에 재석의 주먹이 깡패A를 후려친다. 우루루
달려드는 세사람 치고 받고 치열한 격투가 벌어진다. 한 구석에
팔장을 끼고 숨어서서 잔인하게 바라보는 성기. 삼대일의 격투는
재석을 처참하게 몰아넣고 있다. 결국 피투성이가 되서 뻗어 버리는
재석.
(O.L)
#110 병원 입원실
머리에 붕대를 감은 재석이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채 링겔을 맞고
있다.
성기 (일어나며) 잘 좀 부탁합니다. 내일 아침 일찍 오죠! 상대방
부상자도 좀 들여다 봐야 할테니까.
간호원 네!
성기 그리구 이 방 꼭 지키셔야 합니다. 이친구 워낙 성미가
괄괄해놔서 정신이 깨나면 또 그놈들을 찾으러 뛰쳐
나갈려구 할꺼니까...
간호원 알았어요! 이 지경이 됐는데 무슨 기운에 또 싸우시겠어요.
성기 좌우간 부탁합니다.
#111 명옥의 방
열두시에 겹친 침대머리의 시게바늘.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복수에
불타는 침대의 명옥의 눈길.
(F.O)
#112 (F.I) 거리
러시아워의 붐비는 인파.
#113 D.P점
성기가 봉투를 들고 막 나서려는데 울리는 전화벨.
성기 (받고) 네... 아 미스 안! 그러잖어두 내 집으로 갈려든
참이였는데... 큰일 났어 재석이가 어제 밤 미스안 집으루
가는 길에 깡패들하구 싸워서 병원에 입원했단 말야!
#114 공중전화 박스
명옥 (소스라치게 놀라) 뭐라구요? 어디예요?
성기 (소리) XX동 XX병원이야!
명옥 알았어요!
경황없이 수화기를 놓고 달려나간다.
#115 입원실
혼몽하게 아직도 깨어나지 않고 있는 재석.
#116 갈대 밭 (재석의 환상)
출렁이는 갈대. 재석과 정숙의 으스러지는 포옹. 뜨거운 입맞춤.
재석 부인 사랑합니다.
몸부림 치며 재석의 가슴을 물리치고 갈대밭 저편으로 사라지는
정숙의 뒷모습.
#117 입원실
재석 부인! 부인!
문이 열리며 명옥이 들어선다. 처참한 재석의 몰골에 확 눈물이
덮이며 명옥은 가만히 그의 머리맡에 앉는다.
#118 정숙의 집 응접실
탁자 위에 흐트러진 재석과의 사진. 새파랗게 질려 떨고 있는 정숙.
성기 (도도하게) 비밀은 지켜 드리죠... 가정이란 돈으로 살 수
있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정숙 .....(졸도 직전이다.)
성기 마음대루 하세요. 아주머니 태도 여하에 달린거니까... 자
이렇게 네가필름도 내드릴 수 있다니까요.
주머니에서 꺼내보인다.
#119 입원실
재석이 얼굴을 찡그리며 몸을 뒤척이려 한다. 명옥 달려들어 그 손을
잡는다.
명옥 미스터 장 정신 채리세요!
재석 ...아 ...부인!
이그러지는 명옥의 얼굴.
재석 ...사랑합니다...
명옥 잡았던 손을 놓는다. 허공을 젓는 재석의 손.
재석 부인! 제 곁을 떠나지 말아 주십쇼! 부인!
벌떡 일어난 명옥 홱 핸드백을 나꿔들고 밖으로 달려 나간다.
#120 정숙의 방
정숙 (수화기에 대고) 뭐라구?
민아 (소리) 깨졌단 말야 계가...
정숙 ...깨진건 할 수 없지 어떡해... 그건 나중에 얘기하구 나
삼십만원이 당장 필요해서 그래.
#121 소희의 방
민아 (안타까운듯) 얜 지금 삼십만원이 어디 있니 소희가
사백만원 내가 이백만원 그년한테 물렸단 말야 계원이
돌아가면서 물렸어! 계획적으루 해먹은거란 말야.
#122 정숙의 방
멍하니 수화기를 들고 있는 정숙.
민아 (소리) 전화 끊는다! 나두 그년 집에 가봐야겠어! 찾게 되면
꿔줄께.
찰칵 수화기 놓이는 소리. 정숙의 갈피를 잃은 눈이 한곳에 멈춘다.
머리장 위에 놓인 보석함.
#123 전무실
명옥이 들어 선다.
동식 제가 조동식인데 어떻게 오셨는지...
명옥 댁의 부인에 관해서 말씀 드릴께 있어서 왔어요.
동식 (부드럽게) 앉으시죠!
#124 정숙의 응접실
뚜껑이 열린 보석함.
정숙 마음대로 가져 가세요! 제가 가진건 그게 전부예요!
성기 (능글맞게) 이까짓거야 가정을 찾아 행복하게 사시느라면
얼마던지 또 장만할 수 있을겁니다. 사진하구 원판은
약속대루 두고 가겠읍니다.
말을 하면서 보석함 물건들을 잔인하게 보재기에 쏟아 싸는 성기.
정숙 ..........
나가는 성기를 확인하고 난 다음에 지친듯이 소파에 엎드리며
처절하게 흐느낀다.
#125 전무실
동요를 억제하고 있는 동식.
명옥 근거 없는 공갈이나 협박이 아니예요. 전 그 사람의 애정을
되찾기만 하면 그만인거예요. (울고 있다.)
동식 알았읍니다! 집사람 문제는 내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죠.
#126 응접실
책상에 돌아앉아 흐느끼며 무엇인가 쓰고 있는 정숙. 부자소리.
질린듯 고개를 들며 서랍 속에 종이를 감추는 정숙. 얼른 눈물을
닦고 밖을 향해 시선을 던진다. 나무 사이로 침울하게 걸어들어오는
동식의 모습. 정숙의 얼굴에는 절망 뒤에 오는 허탈만이 남아 있을
뿐. 조용히 도어 열리고, 동식이가 들어 선다.
정숙 (일어서며) 일찍 들어오시는군요.
동식은 말없이 소파에 와서 앉는다.
정숙 ...(선채로)...
동식 (무겁게) 앉지.
정숙은 기계처럼 앉는다. 폭풍 전의 고요가 스친 다음.
동식 안명옥이란 여자가 날 찾어 왔더군.
정숙 ........
동식 일방적인 애기만 듣고 당신을 의심하진 않겠어. 당신의 얘길
들어 봅시다! (담담하다.)
정숙 (지친듯 느끼며 고개를 저을 뿐)...
동식 할말이 그렇게두 없단 말이요?
정숙 으흐흐....
동식 (무겁게) 가령 그 청년과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는건 말할 수
있질 않소?
정숙 이제 와선... 구차한 변명 밖에 안돼요! 당신과 애들에게 제
할일을 다하지 못한거 사과드릴 뿐이예요.
동식 당신 그 입으로 애들 얘길 할수 있소? (거칠게) 어머니의
자격으로 하는거요? 동네 부인의 자격으로 하는거요?
정숙 ... 이렇게 되리라는걸 알면서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휘말리고 말았던거예요... 내가... 내가...
도무지 말이 이어지지 않는다.
동식 어리석었다는거요?
정숙 (울음이 터지며) ... 간신히 마음을 진정하려구 제 정신을
찾았을땐 이미... 이미 늦었던 거예요! 결국 이 지경까지
되구 만거니까요... 그저 당신 앞에 용서를 바랄 뿐예요.
동식 용서를 하라구?
정숙 ..여보!
동식 여보?
정숙 ...그대로 부르게 해주세요! 어차피 마지막 부르는 소리
아녜요...
동식 ......
정숙 ... 애들을 내보내구 나면 ... 전 할일이 없었어요! 당신이
일에만 신경을 쓰시는게 전 버림 받은것 같이 외롭기만
했어요...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듯.. 전 허망한
일인줄 알면서... 자꾸 수렁에 빠져들어 갔어요!
동식 그래서 좌우간 어떻게 하겠다는거야? 생각은 있을께 아냐.
정숙 그거야 저보다 당신이 더 잘 아시는 일이 아니예요?
동식 그거 나가겠다는 얘기요?
정숙 흐흐흐...
막혔던 설움이 또 한번 터지는듯 하다.
동식 (조용히) 잘 생각한거요. 그게 최선의 방법일거요. 가보오.
정숙 느껴 울며 응접실을 뛰쳐나간다.
#127 현관 앞
나오는 정숙.
현자 (울고 있다.) 아줌마!
정숙 현자야!
현자 가지 마세요 아줌마!
정숙 현자야! 호민이 말야 밤에 이불을 차내거든 꼭꼭 덮어
줘라!
현자 네.
정숙 그리고.. (목이 메인다.) 미애 새벽과외 갈땐 간식
잊어버리지 말구...
현자 네... (서러운듯)...
정숙 아저씨 와이샤츠 잘 봐드려라... 잘 있어.
그대로 대문쪽으로 나간다.
현자 아줌마 가지 마세요.
#128 응접실
석상처럼 움직이지 않는 동식.
#129 거리
흐느적 흐느적 초점을 잃고 걸어가는 정숙.
(O.L)
#130 육교 위
초가을 궂은 비가 내린다. 목적도 없이 올라와 선 정숙.
그녀가 내려다본 시야. 자동차의 홍수가 흐른다.
정숙은 아찔한듯 난간을 움켜잡고 눈을 감는다.
그 얼굴에 솟는 땀방울.
#131 응접실
그냥 앉아있는 동식. 호민이가 뛰어들어 동식에게 매달리며.
호민 아빠!
동식 (정신이 든듯) 오! 호민이가 다녀 왔구나.
호민 엄만 어디 갔어?
동식 응? 응... 저어기.
호민 금방 올꺼야?
동식 ...오겠지.
아가 전숙이 앉았든 책상 앞. 채 못다 들어 가고 닫긴 하얀 종이가
눈에 띄인다. 호민이 조르르 달려가 그것을 뺏어든다. 괴로운 눈길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동식.
호민 아빠 이거 "아"자지? 나두 이런거 볼줄 알어. 아... 바...
읽으며 동식 앞에 온다. 들여다본 동식 놀라며 얼른 그것을
호민에게서 뺏어든다.
정숙 (소리) 아빠께... 당신을 대할 면목 없어 뵙지 않고
떠납니다.. 당분간 어디 멀리 바다에라두 가서 저의 피곤한
신경을 쉬고 올까 생각하고 있어요. 요 한달 남짓한 사이
저를 휘말고 지나간 폭풍이 저에게 남긴 상처는 너무나도
컸읍니다. 그래도 이제와서 천만다행으로 생각하는 것은
자의건 타의건 간에 최후의 일선에서 당신을 배신하지
않았다는 것 뿐...
여기까지 쓰다만 편지다. 동식의 이그러지는 얼굴에 다시 울리는
소리.
정숙 (소리) 최후의 일선에서 당신을 배신하지 않았다는 것 뿐...
호민이 아빠의 그 얼굴이 무서운듯 숨을 죽이고 응시하고 있다.
(O.L)
#132 정숙의 방
본격적으로 내리는 빗소리. 부부의 침대 위에 호민이 눈물 자국을
남긴채 잠들어 있고.
#133 마당
마당에 쏟아지는 비에 화단의 꽃들이 낙화한다.
#134 응접실
창밖을 내다보며 초조에 싸여 있는 동식의 모습.
#135 집 앞길
우산을 받혀들고 서있는 현자와 미애의 뒷모습. 인적조차 뜸해진
거리. 마구 흐느껴 우는 미애를 달래는 현자의 눈에서도 눈물이.
여기 통금싸이렌이 울려 퍼진다.
(O.L)
#136 응접실
한시 구분을 가리키는 벽시계. 빗소리가 정적을 깨칠뿐. 동식은
지친듯 안락의자에 파묻혀 이마를 고이고 앉아 있다. 탕탕탕! 대문
두드리는 소리.
남자 (소리) 여보세요! 여보세요!
동식 불길한 예감에 후다닥 일어선다.
#137 대문 앞, 안
동식 현관을 달려 나오며.
동식 누구십니까?
남자 (소리) XX서에서 나온 사람입니다.
문을 여는 동식. 백차가 뒤에 있고 순경이 서 있다.
순경 실례합니다. 조동식씹니까?
동식 그렇습니다!
순경 XX공원에 쓰러져 있는 어떤 부인의 손지갑에 댁의
전화요금통지서가 들어 있어서 찾아 왔는데요... 혹시...
동식 (파랗게 질려) 네...
순경 아실만한 분이면 병원으로 가주셔야겠읍니다.
(O.L)
#138 거리
인적이 끊어진 비오는 거리를 질주하는 백차.
#139 병원 입원실 (A)
죽은듯 누워있는 정숙. 비에 젖어 처참한 몰골이다. 의사의
뒤를 이어 동식이 들어 선다. 순경도.
동식 여보!
하고 달려들려는 것을 제지하며.
의사 아직은 의식이 없습니다.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하셨더군요.
정숙을 내려다 보는 동식의 눈에 눈물이 서린다.
순경 그럼 수고하십시요.
동식 죄송합니다 여러가지루 폐를 끼쳐 드려서...
순경 경례하고 나간다.
의사 응급조처는 끝났읍니다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겠죠...
선생께서두 저기서 좀 쉬시는게 좋겠군요.
(빈 침대를 가리킨다.)
동식 네 감사합니다.
의사 깨나시거든 연락해 주십쇼.
의사도 나간다. 동식 조용히 정숙의 머리맡에 앉는다. 파리한 정숙의
손에 에메랄드 반지만이 반짝 빛난다. 동식의 손이 그 손을 꼭
잡는다. 빗소리가 더욱 높아진다.
(O.L)
빗소리가 멎고 어느덧 날이 밝은 차가 새벽 햇살이 스며든다. 동식이
그대로의 자세로 정숙을 들여다 보고 있다. 정숙의 눈살이 슬프게
찌푸러지며.
정숙 ...여보...
동식이 확 달려들며.
동식 여보! 나야!
정숙 살며시 눈을 뜬다. 한참 허공에 촛점을 맞추다가 슬며시 고개를
돌려 동식을 바라본다.
동식 여보! 나를 알겠어?
정숙은 가만히 눈을 감는다. 이윽고 그 눈에서 눈물이 샘솟아 내린다.
동식 왜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했어 응? 여보.
정숙 ......(그냥 눈물만 흐를뿐)
동식 왜 한마디의 변명도 없이 이런 짓을 했냐 말야?
정숙 참았던 설움이 복바쳐 와락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울부짖는다.
정숙 왜... 죽지 않았을까요... 절 왜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았어요?
동식 여보! 애들이 보고 싶지 않우? 어서 정신 채려요 여보!
마냥 울고 있는 정숙.
동식 날이 밝았어! 애들이 기다리구 있는 집에 당신은 돌아가야
한단 말이야.
동식의 손이 정숙의 손을 잡아 살며시 내린다. 그 손에 얼굴을
묻으며.
정숙 여보!
동식의 손이 물결 치는 정숙의 어깨 위에 조용히 얹어진다.
(F.O)
- 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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