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사정 볼 것 없다> (1999)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이명세표 영화’의 방점이 찍힌 영화입니다. 바로 이명세 감독의 첫 번째 액션 영화로서의 자신의 양식으로만 최선을 다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정사정...>의 미학적 완성도는 감독에 대한 신뢰를 주었습니다. ‘박중훈표 코미디’가 관객에게 발휘한 요인도 있었지만, 형식미와 스타일로 밀어붙인 치열함으로 평단과 대중들에게 모두 인정을 받은 영화입니다.
도심 한복판에서 소위 ‘49계단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서부경찰서 강력반엔 비상이 걸립니다. 깡패같은 베테랑 형사인 우 형사(박중훈)와 그의 파트너인 김 형사 등은 주범이 장성민(안성기)이라는 사실을 파악합니다. 그러나 변장에 능한 범인을 검거하기는 힘듭니다. 박중훈이 안성기에게 두들겨 맞는 장면에서 이명세 스타일의 진수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음향과 비주얼로 감독은 배우들을 청춘의 터질 듯한 분노로 서로 뒤엉키게 합니다. 이 영화는 범인을 추적하는 영화입니다. 이 추적에 관한 묘사가 이 영화의 관건입니다.
비지스의 명곡 ‘홀리데이’와 함께 관객들의 뇌리에 박힌 이 영화의 49계단 살인장면은 ’이명세 스타일‘의 정점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샛노랗게 빛나는 은행잎이 뒹구는 오후, 차 안에 창문을 반쯤 내리는 남자가 있습니다. 은행잎이 흩날리는 가운데 ‘홀리데이’ 선율이 흐르고, 계단 위에 있던 유치원 여자 아이가 하늘을 올려다보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정지화면과 빛의 효과를 통해 감각적으로 변화해 가는 날씨, 갑작스런 비를 보며 멍해진 표적 인물에게 다가가는 느린 동작의 살인범, 그리고 반으로 갈라진 우산과 손바닥을 긋는 칼, 이마에 번지는 피를 통해 표현되는 살인 장면은 비장하면서도 우아합니다. 바람의 무게까지 잡아내는 이명세 형식미의 절정, 한국 액션영화사상 가장 화려하고 감성적인 비주얼 터치는 속도를 줄여가는 리듬의 조율에 있습니다. 이 영화는 수많은 한국 형사영화 중 명작으로 손꼽히는 영화입니다. 영화에서 세밀한 움직임까지 놓치지 않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 나타난 이명세 스타일은 유희로서의 영화, 스타일로서의 영화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 DVD 찾아보기:
인정사정 볼것없다 [비디오녹화자료] = Nowhere to hide / Special ed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