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이인구 시인의 네 번째 시집 『달의 빈자리』를 읽다 보면 그가 전생에 「고라파니의 당나귀」였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설산 아래 모든 가여운 것들을 위해 등을 내주며/ …(중략)…/ 불쌍한 것들을 위해 적게 먹은 여물을 서너 배는 되새기며/ …(중략)…/ 말이라곤 밤새 지붕 사이로 쏟아지는 별들과만” 나누며 생을 반추하는 ‘털이 하얗고 눈이 커다란 당나귀’. 이 시집에는 “무딘 칼로 아프게 베어져/ 끝 선 거친 달의 빈자리” , 즉 저마다 하나씩 안고 있고 지고 가야 하는 ‘섞이지 않는 허공’을 터벅터벅 걸어온 하얀 당나귀의 담담하지만 물기 어린 시선이 가득하다.